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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환 Oct 27. 2024

산비탈 마을에서의 일지

재난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 - 1

1.

하늘에서 내려다본 아래는 온통 황금빛이었다. 나는 에어버스 A320기 좌석에 앉아 사하라 사막 위를 날아가는 참이었다. 모래바람이 만들어낸 경이로운 사구의 물결이 나의 발아래로 흘러갔다. 바람에 따라 쉴 새 없이 모습을 바꾸는 모래 구름 위를 날아가는 기분이란, 설렌다는 말로는 어쩐지 충분치 않은 것 같았다. 적절한 표현을 떠올리려 창밖의 풍경에 나의 신경을 집중했다. 그러나 별 소득 없이 한참을 감상만 했다. 그 풍경이 다 사라지기 전, 좌석 발치에 묻어두었던 디지털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찰칵찰칵 경쾌한 셔터음이 날 때마다, 바람결에 흩날리는 실크 스커트처럼 부드러운 사구의 곡선이 뷰파인더에 담겼다. 바디 후면에 부착된 조작 휠을 시계방향으로 돌리면서 촬영된 사진들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살랑살랑 유혹하는 모양새가 겉으론 순해 보여도 속은 사납기 그지없을 터. 사막은 멀리서 보기엔 아름답지만, 어떤 지점에 이르면 더는 다가갈 수 없다. 한없이 메말라 있는 진짜 모습은 부드러운 모래 속에 숨겨져 있다. 그리고 또... 사막은 강우량이 모자라 식물이 살기에는 매우 열악한 곳이라고, 과학 교과서에도 나오는, 누구나 아는 내용만 생각났다. 스틸 사진을 연달아 이어 붙이니 꼭 플립 북처럼 보였다. 나는 안경을 이마 위로 쓸어올리고 미간에 힘을 주어 뷰파인더에 갇힌 사구의 모습을 자세히 관찰했다.


2.

개인적으로 아프리카 대륙은 처음이었다. 어떤 나라든 처음 갈 때는 궁금한 것이 많았다. 마치 여러 작가의 단편 소설을 엮은 책을 읽을 때, 작품 하나를 끝내고 다음 작품을 읽기 위해 책장을 넘기는 것처럼 새로운 나라에 도착하면 지금까지의 경험은 리셋되고, 완전히 새로운 설렘으로 입국했다. 하지만 만약 처음 가는 나라가 참사 현장이라면, 새로운 설렘이란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다만, 검은 옷을 입은 여자는 결혼한 사람이니 절대로 말을 걸어서는 안 된다는, 그들의 전통은 새로 알고 가야 한다.


3.

마라케시 메나라 공항엔 전 세계에서 몰려든 취재진으로 북적였다. 입국 심사대 앞에 줄을 섰다.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서 시간이 오래 걸렸다. 수하물을 찾은 다음, 보안 검색을 한 번 더 받았다. 그 과정에서 촬영용 드론을 압수해 갔다. 항변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무섭게 노려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군주는 그러라고 그들에게 제복을 입혀준 것이다. 캐나다에서 온 카메라맨이 나를 보고 알은체하며 입을 삐쭉였다. 그도 나와 같은 신세였다. 공항 청사를 나서자, 사막의 열기가 온몸을 끈적하게 핥고 지나갔다. 우리는 서둘러 현장으로 달려갔다.


4.

2023년 9월. 모로코 남서쪽 마라케시 인근에 진도 6.8 규모의 강진이 발생했다. 관측 이래 최대 규모였다. 진앙이 아틀라스산맥에서 시작돼서 산간 마을이 피해를 크게 입었다. 국제 사회가 앞다퉈 지원 의사를 밝혔는데도, 모로코 정부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한꺼번에 많은 나라가 들어오면 혼란이 가중될 것이고 오히려 구조에 역효과가 날 것이라는 공식 발표가 있었다. 참으로 한가롭다고 생각했다. 3천 명에 육박하는 사람이 건물 더미에 깔렸는데 말이다. 그들의 왕은 누구를 위해 왕좌에 앉아 있는지 묻고 싶었다.


5.

산비탈 길 위를 달렸다. 지진으로 도로가 붕괴하거나 차단된 곳이 많아 가다 서기를 반복해야 했다. 커다란 나무판자를 이어 붙여 복구한 다리는 위험천만해 보였다. 또 한 번 지진이 찾아와 흔들린다면 모조리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멀리서 구급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내달리는 소리를 들었다. 다시 길이 이어지면서 고립됐던 산간 마을에도 구호의 손길이 닿고 있다는 뜻이다. 누군가는 죽지 않고 아직 살아있다는 뜻이다. 사이렌 소리가 그토록 반가울 수 없었다.


6.

진앙으로부터 20킬로미터 떨어진 산간 마을에 도착했다. 험준한 지형에 기대어 드넓게 자리한 마을, 산세를 따라 저 멀리 까지 황톳빛 부락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사막의 고요함은 이제 아득한 것이 되었다. 마을 어귀에 모인 사람들은 쉴 새 없이 떠들고, 때로는 웃기도 하고, 이따금 목청이 터져라 드잡이를 했다. 마을 어디에도 본래 모습을 유지한 건물은 없었다. 발 닿는 모든 곳이 폐허였다. 하늘에서 보았던 사구의 아름다움은 역시 가까이 다가서니 사납기 그지없었다. 우리는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작은 언덕을 오르자 훼손된 모스크가 나타났다. 부서진 건물 더미 위에 러그를 깔고 기도하는 남자들을 만났다. 그들의 기도는 어느 때보다 절실하고 간절했을 것이다. 거기서 조금 머물렀다. 그리고서 방금 기도를 마친 남자를 따라가 대화를 시도했다. 그의 이름은 모함메드였다.


7.

모함메드가 우리를 초대했다. 난민촌 텐트 내부를 보여주기로 한 것이다. 그를 따라가는 길, 톡 건들면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로운 벽 아래에 소녀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나를 보자, 어떻게 알아봤는지 한국말로 인사를 건넸다. 나도 화답했다. “안녕하세요!” 소녀들이 까르르 웃기 시작했다. 영락없는 십대 아이들이었다. 낯선 이방인을 발견한 남자아이들은 카메라 앞에서 팔짝팔짝 뛰어다녔다. 주검이 실려 나가는 끔찍한 상황 속에도 아이들은 웃을 수 있다. 그들도 안다. 즐거워서 웃는 게 아니라 웃으니까 즐거운 거라는 것을.

난민촌은 마을 속의 마을처럼 하나의 커다란 부락을 형성해 있었다. 추가 붕괴 위험이 높아서 모두가 거리 생활을 해야 한다고 했다. 모함메드의 초대에 감사를 표하고 싶어서 설탕과 휴지를 선물로 가져갔다. 텐트 안은 생각보다 정갈했다. 모함메드가 우리를 간이 의자에 앉히더니 손잡이와 주동이가 뾰족한 모로코식 전통 주전자 ‘브리크’에 민트잎과 각설탕을 듬뿍 넣고 끓인 ‘모로칸 민트차’를 대접했다. 모로코 말로 ‘아티이’라고 불리는 이 전통차는 환대의 상징이라고 했다. 차는 맛과 향이 풍부했다.


8.

모함메드가 이야기를 시작됐다. 한밤중에 시작된 지진으로, 거대한 마을이 20초만에 사라졌다. 그로 인해 그는 아내와 아이 둘을 잃었다. 하늘의 별이 된 한 아이는 생후 2개월 된 아들이었다. 모함메드는 그 시각 마라케시에서 일을 하고 있어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는 가족들을 구조하기 위해 이틀 동안 땅을 파헤쳤다. 결국 아이를 찾아냈지만 이미 숨진 상태였다. 그렇게 담담하게 자신의 비극을 전하면서도, 그는 울지 않았다. 슬픔을 삭이고 있었다. 왜 울지 않느냐고 묻자, 그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마을 전체 주민의 5분의 1이 목숨을 잃었어. 우리는 지금 죽은 자들을 위해서라도 울면 안돼. 왜냐하면 그들은 지금도 무덤에서 고통받고 있기 때문이야.”

“산간 지역이라 밤이 되면 기온이 많이 떨어져서 걱정돼. 곧 비 소식도 있던데 그러고 나면 추위가 빨리 찾아올 거야. 잘 버텨야지.”


9.

나는 아라베스크 찻잔에 남은 차를 마저 마셨다. 차는 식어 있었다. 모함메드가 빈 잔을 다시 따뜻한 차로 채워주었다. 사하라에서 불어오는 모래 먼지가 부옇게 일더니 태양을 가려버렸다. 아니 내 눈물을 가려버렸다.

모함메드가 돌아가는 우리에게 말했다.

“멀리까지 와줘서 고마워. 이 어려움을 세상에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겐 큰 도움이 돼. 돌아가는 길,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그는 끝내 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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