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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영진 Nov 17. 2019

사회적 자아를 잠재울 시간

이제부터 나 자신에게 집중하기로 한다

5인방 중 한 명인 스웨덴 복지사 요아킴, 우붓, 발리, 인도네시아




아무리 훌륭한 일도 감당하기 벅차면 중단하는 게 옳다


외출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같은 숙소에 머물고 있는 여행자 하나가 말을 건네 왔다. 다른 여행자들과 함께 브런치를 먹으러 가려는 참인데 함께 가지 않겠느냐는 것. 어차피 식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외출 준비를 마무리 짓고 밖으로 나서자 여행자 한 무리가 나를 반겼다. 스페인, 프랑스, 스웨덴, 말레이시아 등에서 온 5명의 배낭여행자들이었다. 오전에 일제히 안면을 트면서 브런치를 명목으로 의기투합한 모양이었다.  


뒷골목에 줄지어 선 식당들을 훑어 내리다가 인상 좋은 주인이 운영하는 한 식당의 마당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사당, 석상, 돌탑에 이르기까지 마당을 빼곡히 채운 힌두의 문화유산들이 경건한 느낌을 자아냈다. 별생각 없이 식사 해결을 위해 따라나선 길이었으나 브런치의 분위기는 의외로 활기찼다. 전통 요리와 건강식이 번갈아 놓인 탁자 위에서 유쾌한 대화가 자주 오갔다. 다들 목소리도 밝고, 사고방식도 건강한 듯 보여 함께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따로 계획한 일정이 있어서 브런치 직후 5인방과 작별을 고해야 했지만 유익한 하루를 기원하는 기분이 산뜻했다.  


다음날의 브런치는 5인방 중 한 명인 스페인 여행자 안토니와 함께 들었다. 마침 주 5일제 여행의 휴일이었는데 안토니도 이후 일정을 잡아 두지 않았다기에 오후 일정까지 함께하기로 했다. 목적지는 우붓마켓, 왕궁 등의 읍내 볼거리와 숙소에서 추천해 준 우붓 외곽의 예술시장. 안토니를 뒷좌석에 실은 스쿠터는 혼자서 타고 다닐 때보다 속도가 더뎠지만 안토니의 성격이 워낙 쾌활하고 낙천적이어서 온종일 웃음꽃이 끊이질 않았다.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 복귀한 직후, 안토니가 다른 친구들에게서 메시지를 수신했다는 사실을 알려왔다. 5인방의 일원인 모로코계 프랑스인인 수미야가 인근의 바에서 벨리댄스 공연을 한다는 소식. 모두가 수미야의 공연을 보기 위해 그곳에 모여 있으니 어서 오라는 전갈이었다. 안토니와 함께 도착한 바에는 동서양 여행자들이 느긋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얼마 후 연주자들이 저마다의 악기를 들고 무대에 올랐다. 튜닝을 마친 그들이 악기를 튕기기 시작했고, 벨리댄스 복장으로 등장한 수미야가 그들의 연주에 맞춰 춤을 췄다. 혼신의 힘이 깃든 수미야의 춤사위가 밤공기를 뜨겁게 달궜다. 


공연이 끝나면 곧바로 숙소로 복귀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숙소로 돌아갈 채비를 하는 나를 5인방이 붙들었다. 혼자 보낼 순 없다고 말하는 목소리들에서 일종의 연대감이 느껴졌다. 인연을 맺은 지 며칠 되지는 않았지만 여행에서 맺은 우정이라 다들 서로를 각별하게 여기는 듯했다. 그 마음 씀씀이가 고마워 못 이기는 척하면서 그들을 따라나섰다. 


온몸을 타투로 도배한 스웨덴 출신의 복지사 요아킴의 안내로 도착한 곳은 읍내 외곽에 숨어 있는 허름한 선술집이었다. 아편 소굴을 방불케 하는 어둡고 침침한 실내 분위기로 미루어 히피들의 아지트인 듯했다. 무대 위에서는 현지 밴드가 야성적인 기운을 내뿜으며 연주를 펼치고 있었다. 공연에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요아킴이 현지 전통술 아락을 병째로 주문했다. 곧이어 아락이 일행들의 위장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밴드 보컬이 맹수처럼 포효할 때마다 공간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뜨겁고 끈적끈적한 목소리들이 머리 위로 자주 떠돌아다녔다. 


다음날 오전에도 다 같이 브런치를 들었다. 곧 다른 지역으로 떠날 친구들이 있어서 마지막 브런치가 될 거라는 누군가의 귀띔이 있었다. 장소는 첫날 함께 갔던 아름다운 힌두식 마당이 있는 그 식당이었다. 친분이 두터워진 때문인지 브런치의 분위기는 전보다 더욱 활기찼다. 쉴 새 없이 터지는 기발한 농담들 사이로 여행을 떠나오게 된 사연들도 툭툭 튀어나왔다. 이날이 되어서야 비로소 알게 된 사실인데 그들은 친절하고 유쾌하기만 한 게 아니라 사회 참여의 노력도 각별했다. 일부는 여행의 시간을 아껴 지역의 유기견 센터에 봉사활동을 하러 다녀왔고, 또 누군가는 아궁 화산 분화로 피해를 입은 지역 난민을 돕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실천적인 그 모습들이 마음을 계속 건드려왔다. 그들에게 사진 프로젝트 참여를 청해 보기로 마음 먹었다. 


앞선 여행지인 극동유럽에서 ‘숲’을 주제로 한 사진 프로젝트를 6개월 반 가량 진행했다. 평창동계올림픽 당국이 500년 된 정선 가리왕산 숲의 원시림 5만 그루를 벌목하는 사태에 초점을 맞춘 ‘I am a forest’라는 프로젝트였다. 길 위에서 만난 현지인과 여행자들이 ‘I am a forest’라는 문구를 자필로 적어 피케팅 퍼포먼스를 펼치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 작업으로, 우리는 자연의 일부임을 퍼포먼스 당사자와 인터넷으로 사진을 접하는 이들 모두에게 상기시키면서 참여자들의 연대를 숲의 형상으로 구현해 나갔다. 참여자들에게 한국에 돌아가면 문제의 장소인 강원도의 숲 지대에서 사진과 자필 서명으로 전시회를 열겠다는 약속도 했다. 


포부는 다부졌지만 지속성 있게 밀어붙이기는 쉽지 않았다. 프로젝트에 진정성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매 순간 집중해야 했다. 상대가 누가 되었든 관계에 최선을 다했고, 프로젝트와 맞닿을 만한 흐름이 생겼을 때라야 참여를 청했다. 그래야만 애정을 담아 셔터를 누를 수 있었다. 더러는 거절을 당하면서 인간 세계에 대한 실망감을 느끼기도 했고, 여행 일정이 분주한 구간에서는 과부하에 걸리기도 했다. 그래도 끝까지 집중력을 발휘한 덕분에 40여 개국 출신 115명이 함께하는 인간 숲을 만들어냈다. 4세부터 60대까지, 투병 중인 현지인부터 2m 5cm의 장신 여행자까지, 무정부주의자 커플부터 나이 차 25세가량의 부부까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이 동참했다. 대학생, 관광 인력거 기사, 사무원, 지질학 연구원, 요리사, 빈민가 아동들, 문화예술공간 운영자, 관광 안내소 직원, 가판대 판매원, 예술가에 이르기까지 참여자들의 면면도 다양했다.  


귀국 후에는 동료 예술가들과 함께 예술 축제를 열면서 'I am a forest' 프로젝트 참여자들의 사진과 자필 서명도 행사에서 전시했다. 빛깔이 고운 강원도의 어느 자작나무 숲이었다. 폴란드 현지에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나에게 잠자리까지 제공한 친구 하나가 행사에 힘을 보태겠다며 자비를 들여 자신의 사진과 현지 예술가들의 작품을 들고 내한하기도 했다. 그가 폴란드에서 준비해 온 전시물들 옆에 ‘I am a forest’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나란히 걸었다. 축제 장소 확보부터 전시 준비까지 어려운 일이 많았지만 치열한 노력 끝에 참여자들과의 약속을 무사히 완수했다. 축제는 끝이 났지만 우리 사회에 여전히 유효한 프로젝트라는 생각이었기에 행사가 끝난 후에도 국내에서 작업을 계속 진행했다. 그러한 흐름 속에서 발리에 왔다.  


식사의 끝자락에서 5인방에게 프로젝트 참여를 청했다. 프로젝트의 취지와 방향성을 설명하자 고맙게도 모두가 흔쾌히 참여 의사를 밝혔다. 브런치 직후 다른 일정이 있는 프랑스 여행자 자스민(다음날 촬영함)을 제외하고는 모두 바로 촬영이 가능하다기에 숙소 앞 공설운동장으로 이동해 촬영을 시작했다. 작업의 분위기는 아주 활기찼다. 각자의 개성을 고려해 한 명씩 개인 촬영을 한 후 모처럼 단체 컷도 찍었다. 배경은 공설 운동장 한쪽 벽에 적힌 '100% Love is the Goal’이라는 문장이었다. 재기발랄한 안토니가 아이디어를 냈고, 내가 2인 1조로 두 개의 큰 따옴표를 앞뒤로 만들어 문장을 강조하자는 의견을 보탰다. 네 사람의 열정이 다시금 공설운동장을 뜨겁게 달궜다. 


셔터를 누르면서도 이날이 프로젝트의 마지막 촬영이 될 줄은 전혀 몰랐다. 완전한 종료라기보다는 적정한 시기가 다시 올 때까지 잠정 중단하는 방식에 가까웠지만 어쨌거나 프로젝트에 안녕을 고하게 되었다. 고독 여행이라는 새로운 경험의 서막이 열리기 직전이었다. 



I am a forest’ 프로젝트 촬영 결과 모음

https://brunch.co.kr/@youngjincha/60




# 페르소나의 과잉 팽창

후에 돌아보니 이 시기에 나는 고독으로의 돌입을 준비하고 있었다. 외부 일에 현혹되는 현상을 정리하고, 나 자신을 진지하게 파들어가기로 마음을 다지는 중이었다. 그러자면 외부와의 접촉이 깊은 행위나 작업들을 정돈해야 했는데 사회참여의 의무감 때문에 선뜻 프로젝트를 중단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프로젝트는 소기의 성과를 이미 달성한 상태였고, 더 이상 진행하기에 벅찬 느낌도 컸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이 여행에서 내가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인지를 고민한 끝에 결국 프로젝트를 잠정적으로 중단하기로 마음먹었다. 프로젝트를 계속 이어나갔다면 사회적 인격(페르소나)이 과잉 팽창하면서 사회의 요구에 과도하게 부응하는 쪽으로 삶이 흘러갔을 가능성이 높다. 당연히 나 자신에게는 그만큼 소홀해졌을 텐데, 지나친 희생을 스스로 자처하면서도 그런 줄 몰랐을 게다. 건강하게 형성된 페르소나는 사회 적응을 돕지만 과잉 팽창하면 삶의 주도권을 페르소나에게 빼앗기게 된다. 나 자신이 아닌 외부의 요구에 부응하는 삶을 살게 된다는 얘기다. 자연인으로서의 삶을 적극적으로 누리고자 하는 여행에서는 더더욱 자신에게 충실할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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