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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영진 Nov 17. 2019

여행을 마무리하는 의례

반년 동안의 여정을 기리는 특별한 의식

왓 우몽, 치앙마이, 태국




의례는 경험을 강화한다


치앙마이 생활의 중간 지점에서 현지의 예술 공간 한 곳으로부터 전시회 개최를 요청받은 적이 있었다. 상호 간의 합이 어떨지 판단이 서지 않아 공간의 성격과 운영 방향에 대해 묻자 커뮤니티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현지의 예술가 공동체가 운영에 참여하고 있고, 지역 발전을 위해 문화예술 행사도 활발하게 가동하고 있다는 설명. 뜻있는 공간인 듯 보여 긍정적인 의사를 밝혔다. 


이후 협업 공간으로 나가는 길이나 주 5일제 여행의 휴일에 잠깐씩 스튜디오에 들러 근황을 주고받거나 전시회 개최를 논의했다. 그러는 사이 스튜디오를 출입하는 현지 예술가들과 친분이 생기기 시작했다. 새로이 마주치는 지역 예술가들이 환영의 인사를 계속해서 건네 왔다. 그들의 초대로 이따금 지역에서 벌어지는 예술 행사들을 방문해 즐거운 시간도 보냈다. 기대 이상의 호의가 의욕을 북돋웠다. 


그러던 중 난데없이 슬럼프가 찾아왔다. 마음도 덩달아 흔들리기 시작했다. 전시회를 준비하려면 한 달 정도는 고생을 각오해야 했다. 이번 여행의 핵심 과제인 사진 정리와 글 작업에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 더욱이 전시회 개최는 예정에 전혀 없던 일이었다. 스튜디오 측의 호의는 고마웠지만 예술 행사 하나로 내 인생이 갑자기 달라질 것 같지도 않았다. 회의감이 점점 커졌다. 


그렇지만 표현은 예술가의 본령이었다. 작품을 들고 나와 대외에 공개한다는 것은 예술가에게 자존의 증명이자 존재의 선언과 같은 일. 인생의 한 과정을 마무리하면서 그다음 단계로 돌입하게 해 주는 의례이기도 했다. 돌아보면 모든 전시회의 끝은 좋았다. 고생스럽기는 했지만 내면이 활성화되면서 자긍심이 되살아났다. 삶의 의지도 다시 샘솟았다. 상황에 떠밀려 의무방어하듯 연 행사도 마찬가지였다. 준비 과정에서 퉁명스러웠던 마음이 작품 공개와 함께 활짝 열리곤 했다. 


오락가락하는 마음을 추스르며 준비 작업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전시 주제 선정이었다. 고민의 과정에 돌입했다. 가장 능숙한 사진 영역은 세계 여행, 가장 최근에 했던 작업은 숲 보호를 주제로 한 ‘I am a forest’ 프로젝트. ‘세계 여행’과 ‘숲’, 이 두 개의 주제를 두고 한참 동안 저울질을 했다. 


‘세계 여행’은 작업은 용이한 대신 주제 의식이 분명치 않으면 형식적인 전시로 그칠 가능성이 있었다. 전시회의 외양만 그럴싸할 뿐 사진의 나열에 불과한 것이다. ‘숲’의 경우, ‘I am a forest’ 프로젝트의 무거운 여운을 어느 정도 감당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즐겁고 보람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작업의 공익적인 성격에 부담을 느끼며 진행한 작업이었다. 예술의 문법으로 공익적인 색채를 최대한 지워보려 했지만 프로젝트의 초점이 사회 문제에 맞춰져 있는 탓에 순수 예술로 승화시키기에는 무리가 많이 따랐다. 참여자나 감상자들이 사회를 향한 각자의 욕망을 나에게 혹은 작업에 투사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마음만 앞세운 공덕심으로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게 얼마나 위험한 행위인지를 절감했다. 다음번에는 정의니 평화니 하는 거창한 말은 집어치우고, 내 안의 진실을 전시회에 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마음은 그랬지만 ‘I am a forest’ 작업의 여운이 미처 가시지 않은 상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 와중에 주제 선정과 관련해 스튜디오 측의 요청을 전달받았다. 커뮤니티 기반의 공간이니 지역민과 현지 예술가 공동체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방향으로 행사가 기획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개인적인 상념 위에 '공동체'라는 화두까지 얹히다 보니 머릿속이 더욱 어지러워졌다. 기나긴 고민이 이어졌다. 


최종적으로 확정한 전시 타이틀은 <Forest Odyssey: Solitude and Solidarity>. 각성한 개인이 모여야 견고한 공동체가 이루어진다는 자각을 반영했다. 지난 반년 간 여행길 위에서 겪고 느낀 바를 함축한 말이기도 했다. 또한 스스로를 향한 다짐이자 타인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였다. 각성한 존재로 거듭나기 위해 개인이 거쳐야 하는 다양한 국면들을 숲과 나무의 생애를 빌려 이야기하면 어떨까 싶었다. 전시의 당위성을 스스로에게 묻고, 주제를 도출해 구체적인 내용으로 발전시키는 데만 3주를 썼으니 나름대로는 꽤 진지하게 고민한 셈이었다.  


스튜디오 측에 주제와 전개 방향을 알리자 환영한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스튜디오의 운영 취지와도 일치해 아주 만족스럽다는 의견이었다. 곧바로 전시 일정을 조율했다. 양측에서 사전에 잡혀 있던 스케줄을 제외하니 전시가 가능한 시기는 귀국 바로 전 주밖에 없었다. 주말 오후에 오프닝 이벤트로 전시의 서막을 연 후, 귀국 전날까지 약 10일간 전시회를 개최하는 일정으로 기간 협의를 마무리 지었다.  


준비 작업을 시작했다. 스튜디오 측의 협력은 전폭적이었다. 자질구레한 개입 없이 모든 결정을 나에게 일임했고, 필요한 사항이 있을 때는 스튜디오 대표와 관계자들이 적극적으로 지원 사격을 했다. 그 와중에도 슬럼프가 생활을 흔들어 댔지만 약속에 차질을 빚지 않도록 마음을 다했다. 만사가 귀찮은 상태에서도 억지로 몸을 일으켜 전시회를 준비했다.  


전시장에 내걸 작품은 아시아, 남미, 유럽에서 찍은 총 32점의 사진들. 선정 작업을 마무리한 후, 인화를 하고, 촬영 정보를 정리하고, 설치용 재료를 구입했다. 이후 작품들을 스튜디오로 들고 가 설치 작업을 시작했다. 같은 날, 한반도에서는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공동체를 주제로 삼은 이번 전시와 맥락이 맞닿는 사건인지라 기분이 묘해졌다.  


전시장은 예상보다 많은 이들로 북적였다. 현지 예술가들은 물론, 예술 애호가와 여행자와 지역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이 운집해 전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가장 인상적인 방문객은 동네 주민들이었다. 동네 할머니, 아줌마, 아저씨가 깨끗이 세탁한 옷을 차려 입고 전시장으로 찾아왔다. 천진난만한 동네 아이들도 전시장을 학교 운동장처럼 드나들었다. 


행사의 서막은 워크샵으로 열었다.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함께 준비해 주면 좋겠다는 스튜디오 측의 부탁이 있었다. 일반 관람객, 동네 할머니,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이 워크샵에 참여해 골목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다음은 작가 소개. 육성으로 가벼운 인사 정도만 전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갑작스레 등장한 마이크가 사회자의 손을 거쳐 내 앞에 도달했다. 논의 사항에는 없었던 작가와의 대화였다. 스튜디오 측이 사회자 겸 통역자로 초대한 현지 미대 교수의 질문은 진지하고 날카로웠다. 핵심을 찌르는 물음들이어서 한참 동안 진땀을 빼야 했지만 전시의 의미를 다 같이 고민해 볼 수 있어서 오히려 좋았다.


사전 프로그램들이 마무리되고 드디어 전시장의 문이 열렸다. 같은 시각 스튜디오의 마당에서 디제잉 공연도 시작되었다. 현지에서 활동 중인 디제이 2명이 행사에 힘을 보태 주기 위해 공연을 준비했다. 전시장은 관람객들의 목소리로 떠들썩했다. 한참 동안 이리저리 불려 다니며 감사 인사를 전하고 질문에 답변하기를 반복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그래도 마음은 뿌듯했다. 잠시 숨을 돌리려 나온 마당에서는 관람을 마친 방문객들이 다과를 즐기고 있었다. 그들의 어깨 위로 디제잉 음악이 기분 좋인 무늬를 그리며 흘러 다녔다. 반년 간의 고독 여행을 마무리하는 장면 치고는 그리 나쁘지 않은 듯했다.




# 경험을 무의식과 이어주는 의례

치앙마이 전시회는 이번 여행에서 경험하고 깨달은 바를 압축할 수 있는 귀중한 자리였다. 당시에도 그런 생각으로 전시회를 준비했는데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의 여운은 더욱 크다. 경험과 각성을 한때의 현상으로만 두지 않고 전시회를 통해 가시화할 수 있었기에 반년 간의 여정을 내면 깊숙이 흡수할 수 있었다. 내 안에서 벌어진 정신적인 현상들을 현실 세계에서 구체화하는 기회이자 앞으로의 성장 방향을 새기는 하나의 의례였다고 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 중요했던 부분은 전시회를 통해 표현의 욕구를 마음껏 발산했다는 점이다. 자기의 표현이 삶의 본령이라는 점에서 치앙마이 전시회는 실존을 증명하는 상징적 의례였던 셈이다. 전시회를 치르지 않고 귀국했다면 여행에서 느끼고 깨달은 것들 중 일부는 머릿속의 현상으로만 남았을 것 같다. 의식적으로 치르는 의례는 내면세계에 상당한 자극을 가한다. 의식 세계에서의 경험을 무의식에 이어줌으로써 변화를 유도해 낸다. 의례라는 행위가 거추장스러워 보일지도 모르겠다. 마음만 있으면 되지 싶을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결과에는 분명한 차이가 발생한다. 여행의 마무리 지점에서, 일상의 특별한 국면에서 자신만의 의례를 해 보는 건 어떨까 싶다. 규모나 모양새보다는 의식적인 마음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좋을 듯하다.


# 참고

https://brunch.co.kr/@youngjincha/60



      

차영진출간작가


      유럽을 여행하는 정석 따윈 없다저자작가, 사진가, 여행가, 자유기고가, 이따금 행위예술가. 예술과 여행의 눈으로 삶을 독해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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