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도망치기
보이지 않고 표현되지 않는 마음의 모습을 담아보려고 합니다. 나의 모습이기도 하고 누군가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매주 2편씩 업로드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림자놀이는 총 3부로 엮어질 예정이며 각 부에 10화이며 총 30화로 구성했습니다.
1. 도망치기
“검사결과로는 우울과 불안증상 수치가 높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어떤 불편함이 있나요?.”
“가슴에 통증이 가끔 있고 머릿속이 아무 생각이 안 나고 멍해지는 일이 있어요. 잠을 잘 못 자고요”
차마 자해까지 한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한 달 전, 잠 한숨을 자지 못하고 뜬 눈으로 지새우다 욕실에서 제모칼로 손목 안쪽 윗부분을 조금씩 긋고 있었다. 새벽 4시, 남편이 일어나려면 2시간은 지나야 하니 마음 놓고 욕실 바닥에 주저앉아 통증에 집중했다.
가슴 저 깊숙한, 어딘지 모를 깊은 곳에서부터 '찌르르' 전율이 올라왔다. 전기 감전되는 느낌이 이런걸까?
저절로 신음소리가 났다. 조금더 손목에 힘을 모았다. 온몸을 바닥에 내리꽂는 날카로움이 나를 아득히 먼 지하 어두운 곳으로 순식간에 잡아끌어내렸다. 안도의 한숨이 깊게 쉬어졌다. 그때,
욕실문이 벌컥 열렸다.
남편의 경멸의 눈초리가 내 손목에 날아와 꽂혔다.
제모칼을 낚아채고 나를 뒤에서 안아 들어 올려 끌어다 방안 침대 위에 내동댕이 쳤다. 나는 곧바로 튕기듯이 일어나 침대에 걸터 곧추 앉았다.
“요즘 약을 안 먹고 있어? 언제부터 다시 시작한 거야?”
약상자를 찾아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나의 손목에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아주는 그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나는 이미 평온을 되찾은 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올해 들어 처음이에요, 1년 동안 안 그랬어요."
나는 초등이처럼 고분고분하게 말하며 고개를 떨궜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드레스룸으로 가 옷을 갈아입고 등을 보이며 말했다.
"병원 가봐, 약 다시 먹고."
곧 현관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가슴에 얹어놓은 듯한 무거운 돌덩이가 움직이면서 온몸을 헤집고 다녔다. 숨이 제대로 안 쉬어지고 어딘가 마취된 것처럼 감각이 사라지며 눈앞이 뿌예지면서 멍해졌다. 그러다 가뿐 숨을 몰아쉬면 언제부터 숨을 안 쉬었는지, 아니 언제 숨을 쉰 적이 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가만히 있으면 가슴에 얹힌 돌덩이가 여전히 무겁긴 하지만 움직임이 줄어든다. 견딜 만큼, 그리고 숨 쉴 만큼 잠잠해졌다.
가만히 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져 요즘은 3일 이상 지속되어 3일 전 일어난 일이 마치 꿈을 꾼 것처럼 남아있곤 했다.
처음 나에게 우울증을 진단한 사람은 남편이었다.
제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눈에 핏발이 서린 채로 6살 난 어린 딸을 극도의 분노상태에서 등과 뺨을 때리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 뒤로 남편은 나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는 내가 정신의학과에서 치료받기를 권유했다. 조용한 성격인것은 알고 있었지만 최근 몇년간 필요한 말 이외에는 입을 떼지 않고 소리 내어 웃지 않는 나의 모습에서 우울감이 느껴진다고 했다. 어떤 날엔 깊게 내려 앉은 시선과 몸짓에서 과민한 불안증이 보인다고 했다. 점점 미간에 세세한 주름이 지고 더 말이 없어지고 눈을 마주하지 않으며 저체중으로 보이는 모습에 걱정이 된다고 했다. 의사로서 알고 있던 지식을 총동원해 나를 우울증으로 진단하고 설득했지만 나는 병원에 가지 않았다. 그때는 우울증 뒤로 숨는 것이 비겁하게 느껴졌다. 마음이 병들어서 아이를 때렸다고 변명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아이에게 너무 미안한 일이라 생각했다.
엄마는 내가 첫애를 낳자, 하루가 멀다 하고 과일이나 고기를 들고 집으로 왔다. 주말이면 뭐 만들어 놨다, 뭐 사놨다 하며 아이를 데리고 오라고 하여 심지어 엄마집에서 재우고 월요일 아침 일찍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는 일도 잦았다. 나는 엄마가 사준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고 엄마는 같은 아파트 앞동에 살고 있었다. 나는 딸이 5살이 되어 학교 병설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하자, 주말에만 엄마집으로 아이를 보내겠다고 했다. 그래도 엄마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엄마의 목소리는 매일매일 내 귀에 화살처럼 꽂혀왔다.
"내가 너를 위해서 예진이를 데려오라 하지, 네가 힘들까 봐, 몸도 약한 애가 얼마나 힘들까 하고, 누가 손주 예뻐서 봐주겠다고 하겠니? 다 너를 위해서야."
그때 왜 그렇게 딸에게 화를 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못했다.
'엄마가 스트레스가 쌓여서 그랬어.'
'말도 안 돼, 아이가 이해할 수 있겠어?'
'엄마가 무조건 미안해.'
‘진정성이 없잖아.'
아이는 어미인 내게 다정했다. 딸의 시선은 언제나 나를 향해 있었다. 그리고 나의 아이는 알고 있었다.
어미가 무력하다는 것을. 아이는 어미에게 어떤 어리광도 어떤 떼도 쓰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고분고분했고 깊은 눈을 하고 어미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속절없이 시간이 흐르기만 할 뿐 나는 나의 행위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아이에게 어떻게 용서를 구해야 할지 몰랐다.
딸이 초등 5학년이 되자, 남편은 미국에 사는 시부모님 댁에 보내자 했다. 이것은 다 나를 위해서라고 했다. 벌써 3년이 지났다.
그때부터였다. 숨이 안 쉬어질 때가 있었다. 처음에는 숨이 안 쉬어져 손등, 팔목의 살을 꼬집었다.
꼬집어 쥐어 비틀면 숨이 돌아오고 쉬어졌다.
손톱으로 꾹 눌러 긁으면 더 빨리 숨이 돌아왔다. 이것이 자해의 시작이었다.
1년 동안 다니던 병원은 더 이상 가고 싶지 않았다.
강 건너 되도록이면 집에서 먼 곳에 있는 정신건강의학과를 검색하고 3일 후에나 가능하다고 해서 오후 2시 예약을 했다. 막히지 않는 시간대에 차로 40분 거리였다. 처음 방문에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창이 없는 작은 공간에서 여러 개의 설문지를 작성했는데 간호사가 몇 번이나 들락날락거렸다.
겨우 마치고 제출하고 나왔는데 서너 시간이 흘렀다는 것을 차로 돌아와서야 알아차렸다.
두 번째 방문에서 의사는 진단결과지를 보면서 말했다.
“우선 일주일분 약을 드셔보시고 상태를 보면서 조절해 보죠. 다음 주 이 시간에 예약해 드릴까요?”
“네, 그래 주세요.”
차가운 물속으로 온몸이 서서히 가라앉는 듯한 상태가 하루 이틀 지속되다, 갑자기 가느다랗고 질긴 철사줄이 살을 찌르고 뼈를 뚫는다. 머리속 어딘가에서 통증이 일어나 세상을 향해 굳게 잠근 문을 향해 돌진한다.
내 몸속 어디에서 비명 지르듯이 절규가 터진다. 그러나 그 절규는 목구멍에 걸려 나오지 않고 목에 통증을 일으킨다. 그 통증은 한동안 머물러 있다 사라지곤 했다. 며칠 동안 아무 행동도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다.
'이미 너무나 익숙하다 못해 친숙한 이런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약을 먹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피식 웃음이 났다. 몸속 어디선가에서 소리들이 아우성을 쳤다. 진저리가 났다. 갑자기 목구멍으로 역한 냄새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이 지긋지긋한 느낌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그 곳이 어디라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러나 갈 곳을 잃은 눈의 촛점마냥 나는 갈 곳이 없었다. 도망갈 곳은 나의 몸속 어딘가 고통속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