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그림자놀이 1부

3. 길들이기

by 운정




지이이잉,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운영하고 있는 카페 오전 근무 직원인 해랑이었다.

카페는 2명의 직원이 오전 9시 오픈하고 오후 3시까지, 그리고 오후 3시부터 밤 9시까지 교대 근무하고 있었다.


“사장님, 오늘 제가 오픈 못할 것 같아요. 어제 술 먹고 잤는데 몸이 안 좋아요. 오늘 오픈 부탁드려요. 11시까지는 갈게요.”


“네, 알겠어요.”


이번에도 나는 정작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했다.

그녀는 한 달에 두어 번 정도는 이런 부탁을 내게 했다. 언제부턴가 내 시간이나 상황 물어보지도 않고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이 통보했다.


‘안 되겠는데요. 이렇게 갑자기 통보하면 어떻게 합니까?라고 말했어야 했는데.'


가슴에 통증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해랑은 전문대 중퇴하고 주로 카페에서만 8년 가까이 일했다. 나의 사업장에 온 것은 5개월 전이었다.

9시쯤 도착하려면 서둘러야 했다. 카페 주변에는 성형외과, 피부과, 안과 등 병원들이 많아 점심시간 전후로 손님이 몰려오기 때문에 오전 10시에서 2시까지 가장 바쁜 시간이었다. 낮 근무자는 9시 오픈하고 에스프레소 기계 예열하고 카페 창을 열어 환기하고 재료 준비하면서 손님을 맞이해야 했기 때문에 손이 빠르고 숙련된 직원이 필요했다.

그래서 오전 출근 직원은 경력직으로 뽑았고 월급도 오후 출근 직원보다 더 챙겨주었다.


가슴 명치끝이 짜릿해오고 숨이 가빠 왔다. 갑자기 오금이 저리고 요의를 느껴 욕실에 달려갔다. 욕조에 물을 받아놨으나 한가하게 목욕할 시간이 없었다. 세수만 하고 기계적으로 순서에 맞춰 화장품을 뿌리고 찍어 바르고 두드리고 화장을 마친 후, 베이지 긴팔 원피스와 초콜릿색 카디건을 걸치고 정신없이 뛰다시피 걸어갔다.


문득 학학 거리며 빠른 걸음 재촉하듯 걷는 내가 길 잘 들여진 강아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헛웃음이 났다.

어느덧, 이 직원은 나를 길들였다. 그는 부탁하면 반사적이며 즉각적으로 순응하는 나를 이미 간파했다.

언제 어느 때 부탁해도 대기조처럼 행동하는 나를 그는 충분히 이용했다.


카페는 아파트에서 걸어서 15분 거리 가로수길에 있었다. 나는 거의 매일 오후12시경에 집을 나서 걸어서 카페에 출근해 바쁜 직원을 돕거나 창고정리를 하기도 했다. 오후 3시에 다른 직원이 오면 재료와 내일 주문할 것을 확인하고 저녁 청소부탁하고 오후 4시쯤 퇴근하곤 했다.


10시가 되자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11시 좀 넘었을 때 직원인 해랑이 출근했다. 역시나 에이스답게 해랑은 재빠른 눈스케치와 능숙한 손놀림으로 바로 일을 시작했다. 그녀가 오면 나는 일을 손에서 놓을 수 있었다. 며칠 카페에 나와보지 못했더니 창고에 치워야 할 것들이 많아 오랜만에 정리를 했다. 매장에 다시 돌아오니 테이크아웃해 가려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사이에 남편이 직원들과 커피를 마시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가 재미나게 얘기하는지 직원들이 저마다 입을 막으며 웃고 있었다. 오전 학회세미나를 마치고 온다더니 일찍 왔는지 직원들과 점심식사를 함께 한 모양이었다. 남편은 종종 점심식사 후 직원들과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곤 했다.


“어, 있었어? 아, 창고에 있었구나.”


남편이 아는 척을 했다.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고개를 돌려 직원들과 얘기를 끌어갔다.

손을 씻고 앞치마를 벗어 개어놓고 해랑에게 간다는 눈짓만 하고 평소보다 빨리 카페를 나왔다.



“나, 미국에 가서 예솔이랑 예진이 내가 데리고 살까?"


“거기 우리 엄마 계시는데, 뭐 하러. 그리고 장모님이 예진이 보낸 것도 못마땅해하시는데 예솔이까지 데리고 가면, 아휴, 어떡하라고, 여기서 예솔이나 잘 키워."


남편은 엄마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말이나 행동을 절대 하지 않았다. 엄마와 꿍짝이 잘 맞기도 했고 예의상 비위를 잘 맞추는 것 같았다.


“정 심심하면 카페하나 해보든가, 직원 두고. 내가 차려줄게.”


남편은 대학병원에서 교수로 근무한 지 10년쯤 되던 해에 엄마 이름의 건물에 병원을 냈다.

엄마는 ‘사위도 자식인데 무슨 월세냐 ‘ 하며 그냥 사용하라고 했다.

강남의 노른자땅 건물 2층에 개원을 하자, 그의 동료 또는 동기들이 너도나도 그 건물에 개원하고 싶어 했다.

7층짜리 이 오래된 건물에 남편의 개원을 앞두고 엄마는 본격적으로 건물 리모델링을 시작했다.

점점 병원들이 하나둘씩 입주하면서 2층부터 6층까지 병원으로 꽉 채워졌다. 7층은 휴게실과 공용주방을 설치해 입주자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물론 엄마는 공동운영비 명목으로 관리비에 포함시켰다.


카페는 1층에 있었다. 예전에 식당이었는데 엄마는 건물을 리모델링하면서 식당을 내보내고 카페로 세를 놓을 생각이었다. 남편은 나에게 소일거리라도 해보라며 유명 브랜드 가맹비와 설비 및 인테리어비용을 대주겠다고 했다. 남편은 언제나 대안이 있었고 뭔가 궁리를 통해 문제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사람이었다.

예진이를 미국으로 보내고 멍한 상태로 하루하루 보내다 어느 날 새벽 내가 손목을 그어 자해사건을 일으키자 남편은 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엄마와 머리를 맞대어 제안을 한 것이었다.


누군가의 제안과 생각에 별 토를 달지 않는 게 익숙한 나는 별 생각 없이 '그렇게 해볼게요' 하고 카페를 시작하게 되었다. 위생교육을 받고 남편의 회계담당 사무원에게 세금 관련 설명을 들었다. 오픈 준비하는 1달 동안 몸 여기저기 쑤시기도 했지만 무리 없이 진행되었다. 카페 설비 기구와 준비된 재료로 커피, 음료를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쉬웠다. 카페 직원을 채용하며 음료 만드는 것을 시범을 보이면 직원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어머, 사모님, 진짜 음료 쉽게 잘 만드신다. 카페 첨 하시는 거 맞아요? 어쩜 이렇게 잘하세요?"


나는 집에서 음식을 만들거나 카페에서 음료를 만들 때에 간을 보거나 시식을 하지 않았다. 레시피대로 만드는데 집중해서 그런 것 같기도 했다. 내 혀에 완성품이 아닌 음식이 닿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나는 음식을 먹기 전, 먼저 그릇의 크기와 모양을 감상하듯이 바라본다. 음식의 용량이 적당히 담겨있는 것을 상상한다. 먹기 전 먼저 냄새를 음미하고 혀에 첫맛이 닿는 그 순간을 즐긴다. 그리고 한 가지 음식을 많이 먹지 않는다. 조금씩 음미하면 그 음식의 고유한 재료와 양념이 어우러진 맛을 느낄 수 있다. 재료와 양념의 비율이 어긋나 있으면 단박에 혀가 알아차리고 목구멍이 닫힌다. 그리고 침이 고이지 않아 입맛이 떨어진다.


내가 나에 대해 알게 된 사실 하나가 있다.

내 영혼이 죽지 않고 살아남아 있는 이유,

나의 혀는 이 세상 어떤 말에도, 어떤 맛에도 길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의 혀는 언제나 처음인양 처음처럼 느끼기를 원했고 결코 길들여지길 원치 않았다.

생각을 모아 말을 하거나 음식의 맛을 보거나, 그 전의 것을 기억하지 않는 혀를 가지고 있었다.

결코 길들여지지 않는 나의 혀.


그때 지우로부터 도망친 그때부터 나는 불안했다. 나를 드러내게 될까봐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침묵을 선택했다. 나에게 생경한 세상이 늘 계속되어 내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했다.

토를 달지 않으니 내 주변의 사람들은 나를 참 길들이기 쉬운 사람이라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 오히려 나는 사람들을 길들이고 있었다.

그들이 나의 울타리를 넘어오는 일이 없어야 했다. 나를 몰라야 했다.

순응하는 사람이란 인상을 주면 사람들은 경계심을 풀고 자신의 보따리를 풀어댄다.

그것이 얼마나 사람을 무방비하게 만드는지 안다.

나는 말이 없는 순한 양처럼 사람들에게 길들여지는 척했다.

그렇게 나는 사람들을 길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길들였다.

나는 악몽이 시작된 그 곳에 아무도 다가오지 못하도록 꽁꽁 감춰둬야 했다.

나조차도 접근금지 구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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