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그림자놀이 1부

2. 선긋기

by 운정






‘약봉지를 어디다 두지?'


약봉지에 약국 이름 외에는 병명을 알만한 아무런 근거가 없음에도

아들과 남편이 약봉지를 보면 안 된다는 강박으로 허둥대었다.

약봉지 둘 곳을 찾아 서랍장 여기저기 열었다 닫았다 하다 결국 주저앉았다. 눈물이 흘렀다.

어둑해진 방 안에서 창밖을 보니 안개처럼 뿌연 미세먼지 속에서 해무리가 가라앉고 있었다.

기운이 없어서인지, 아님 병을 낫고 싶다는 소망이 작용한 건지 손목을 그을 충동은 일어나지 않았다.


둘째인 열두 살짜리 아들이 올 시간이 돼 가고 있었다.

방과 후 수학학원에서 수업을 마치고 6시면 집에 올 것이다.

황급히 일어나 손에 쥔 약봉지를 주방 서랍장에 넣고 서랍장 문을 탁 닫았다.

그때 도어록소리가 띠띠띠띠 울리며 아이가 들어왔다.

잰 발걸음으로 현관으로 나가 인사하며 신발을 벗는 아들의 가방을 받아 들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늦가을의 냄새가 났다. 아이는 아파트 숲정원을 통과해서 온 모양이다.


“얼른 손 씻고 나와. 밥 먹자. 7시, 알지? 오늘부터 바이올린 새 선생님이 오실 거야.”


대학 다닐 때 활동했던 실내악단 동아리 친구에게 아들의 바이올린 선생님을 구해달라 요청을 했더랬다.


"너도 한두 번 봤을 걸? 그 후밴데… 우리 4학년 초에 신입단원 모집한 적 있었잖아, 그때 신입단원으로 들어왔던… 정지우라고. 아마 그때 우리가 ‘바이올린 정‘이라고 ‘바올정‘이라 불렀지. 그러고 보니 너는 '비올 킴'이었네. 무튼 너는 대학졸업하고 바로 결혼해서 몇 번 못 봤을 거야. 졸업 후 너는 우리 공연에도 안 왔잖니?"


그녀는 내가 결혼을 일찍 해서 뭐가 그리 바쁜지 대학 동아리 후속 모임과 공연에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며 일 년이면 두어 번 연락할 때마다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마르고 말 수 적고 바이올린 잘 켜던… 지우…'


5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시작했는데 예중 2학년 때 아버지 사업이 망해서 일반고로 진학해 컴공으로 대학에 들어온 그였다.


“나도 자세한 건 모르는데 그 친구 어디 대기업 다니다가 갑자기 퇴사하고 오디션보고 안산시향 들어갔다더라고. 중간다리를 놔준 수원시향에 있는 후배에게 들었어. 대단하지 않아? 재능은 어디 안 가나 봐. 암튼 그 친구 실력 하나는 알아주는 것 같으니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잘됐지, 레슨비는 알아서 주라던데, 강남 의사 사모님이 어련히 알아서 하려고.”


그녀는 단 한숨에 속사포로 소개하는 사람이 소개받는 사람에게 전해 줄 정보를 쏟아내주었다. 연락이 뜸하다가도 한번 통화라도 할라치면 절친모드로 바로 전환하여 마치 우리가 거의 매일 만나는 사이처럼 수다를 떨었다. 물론 거의 대부분 그녀가 얘기하는 거지만 나도 싫지는 않음에 응해주는데 전화를 끊고 나면 기운이 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문득 내가 그를 잊고 산다는 것이, 아니 잊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는 바이올린 연습단원으로 들어왔으나 한 달도 되지 않아 메인 바이올린 단원이 되었다.

동아리 특성상 음악대학 전공자들은 실내악단 동아리 회원이 될 수 없었다. 하지만 전공자 수준이었던 그의 실력 덕분에 실내악단 동아리 ‘콰르텟‘의 존재감은 그의 입단 전후로 나뉠 만큼 캠퍼스내외적으로 상승했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에도 음대 입시준비는 안 했지만 그의 재능을 아끼던 서울시향 주자 중 한 명이 레슨을 해주며 꾸준히 연습을 했다고 했다. 단원들의 연주 실력 또한 그의 바이올린 연주 수준에 저절로 맞추는 듯 향상되었다. 나는 비올라주자였는데 비올라는 알토보표를 따른 중간 음자리에 위치하여 바이올린보다 5도 낮은 음역을 가지며 톤이 더 둥글고 깊은 소리가 난다. 바이올린과 첼로의 빈 공간을 채워주는 비올라소리는 어디에서도 튀지 않는 나와 많이 닮은 악기이다. 알토 음역대에 있기 때문에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연주자들 간의 교감이 중요했다.


공연 연습 시간이면 순간순간 그는 나와 자주 눈을 마주쳤다. 그의 눈을 감은 모습을 바라볼 때가 있었는데 숨이 멎을 것처럼 아름다웠다. 바라보라고 하면 몇 시간이고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대학생활에서 실내악단 동아리 '콰르텟' 활동은 나의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추억이었다.

길가에서나 캠퍼스에서 그를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도 아름다운 그의 바이올린 소리는 내 귓가에 들려왔다.

그의 연주 소리를 들으며 비올라 연주를 하면 팔과 손가락이 가벼워져 마치 내 몸이 춤을 추는 듯했다. 봄가을 두 번 학교 강당에서 정기공연을 했는데 나는 동아리 활동한 지 4년이 되어서야 선배단원으로부터 소리가 풍부하고 힘이 좋아졌다는 말을 들었다.


대학신문에는 공연 감상평이 매번 실렸다. 학생, 교수, 관객 누구라도 감상평을 기고할 수 있었다.

유명한 일간지 기자였던 어느 단원아버지가 그가 처음 합류한 공연을 보러 왔다가 기고예정이 없던 공연감상평을 일간 신문에 냈던 일이 있었다. 대학생으로 구성된 비전공자 실내악단이 유명해질 리 만무였는데도 이때부터 '콰르텟'은 대학가에서 뿐만 아니라 음악인들 사이에서 유명세를 탔다. 공연이 있는 날이면 그를 보러 오는 관중이 절반이었다.


어쩌다 보니 그와 나는 잘 붙어 다녔다. 수업중간이든 수업 마친 후든 커피 자판기 앞에서 그를 발견하곤 했다. 하굣길에 우연히 마주치는 날이면 밥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길을 걷다 보면 종로 2가까지 걷곤 했다.

집에 가려면 학교정문 앞에서 종로 가는 아무 버스나 타고 종로 2가에 와서 집 가는 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그와 우연히 만나 걷는 날이면 종로 보신각 정자에 앉아 어두운 밤이 올 때까지 앉아 있다 헤어지곤 했다.

동아리멤버 중 혹자는 '둘이 남매냐'라고 했다. 마르고 핼쑥한 얼굴색이나 표정이 닮은 것도 같기는 했다.


그리고 졸업을 앞두고 마지막 가을공연을 하고 뒤풀이하던 날이었다. 학교 주변 막걸릿집에 모여 다들 왁자지껄 공연 후기 수다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그때, 그가 나에게 눈짓을 하며 밖으로 턱을 향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했다. 공연 연습하다 쉬는 시간이 되면 자판기 커피 한잔씩 뽑아 들고 산책을 했던 터라 우리는 자연스럽게 밖으로 나왔다. 다른 사람보다 그와 얘기를 많이 한 편이었고, 함께 걷고 마주 보며 눈맞춤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았다.


술집 바깥 길에는 은행잎으로 노랗게 덮여있었다. 늦가을 정취 탓일까.

그와 잠시 걷다가 고즈넉한 주택가 언덕진 좁은 골목 계단에 앉아 평소처럼 얘기를 나누었다.

그는 말이 많지 않았지만 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 더 말해줘요, 더 듣고 싶어 ‘라는 듯 눈표정을 보내곤 했는데 그러면 나는 좀 신이 났다.

나의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들은 사람이 그였다는 것은 나중에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서로의 말을 잘 듣기 위해 점점 서로를 끌어당기듯 몸이 가까워졌다.

그의 숨소리, 그리고 '음' 하는 목소리에 이끌려 그를 쳐다보았다.

아련한 눈빛에 홀린 듯한 순간, 그가 나에게 가벼운 입맞춤을 했다. 그리고 싱긋 웃으며,


“키스하고 싶어요.”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그가 두 손으로 내 얼굴을 감싸 안고 다시 한번 키스를 깊게 나누었다.

그의 입에서 사과향기가 났고 입술 살갗의 감촉은 그의 연주소리처럼 감미로웠다.

나의 심장소리에 귀가 다 먹먹해질 지경이었으나 그와의 키스를 멈출 수가 없었다.


어느 순간 갑자기 뒷머리가 쭈뼛하더니 온몸이 굳어지고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순간 사력을 다해 그를 밀치고 나는 도망쳤다.

전력을 다해 큰길로 내려와 택시를 잡아 탔다. 집으로 가는 내내 원인 모를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것은 나에게 첫 키스였다. 그게 다였다.

그 후, 캠퍼스에서 친구와 얘기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몇 번 흘깃 본 적이 있으나 모른 척하고 돌아서 갔다.

가을 공연을 마지막으로 종강 후 맞선을 본 남자와 이듬해 5월 나는 결혼했다.


현관 초인종소리에 정신이 제자리에 돌아왔다.

아이가 먼저 나가 그를 맞이했다.


‘네가 예솔이구나, 만나서 반가워. “


현관에서 거실로 향한 복도 끝 어디쯤 어정쩡하게 서서, ‘팔짱을 낄까, 앞으로 모으는 게 낫나…‘ 하는 사이, 그의 모습이 나타났다. 팔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몰라하는 내 모습에 더 당황스러웠으나,


“정말 오랜만이네, 살아있으니 이렇게 보네.”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 멀리서 하이 톤의 목소리가 내 심장을 타고 목을 넘어 그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의 미소를 머금은 눈가와 꾹 닫은 입가에 세월의 흔적으로 보이는 가느다란 주름이 보였다.


“그동안 잘 지내셨지요? 다른 선배에게 전해 듣고 놀랐지만... 그냥 선배라서 편하게 왔습니다. 아..."

그의 말끝이 흐려지며 눈빛마저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냥'이라는 단어가 머리에서 뱅뱅 돌아가며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편하게 왔다는 것인지, '나'라는'선배'라서 편하다는 것인지, 그리고 내 눈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사그라들고 말끝 힘이 빠져 나가는 듯했다.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되었다.


뭔가 말하려고 입술이 움찔했으나 나는 예의상 안부인사 밖에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 그래… 요. 선생님이라고 불러야겠네.. 요. 지우 선생님.”


“저 쪽 끝방이 연습실이에요.”

아이가 제 선생님이라고 연습실 방으로 안내했다.


방으로 들어와 침대 발치에 있는 의자에 털썩 앉았다. 한숨을 몰아쉬었다. 손과 이마에 식은땀이 나고 몸에 열감이 느껴졌다. 오늘 타온 약봉지를 찾아 작은 알약들을 입에 넣고 침을 모아 삼켰다.

침대에 대충 몸을 구기고 누워있는데 문소리가 나는 듯했다. 다시 조용해지자, 몸이 천천히 바닥에 무게를 실으며 꺼지는 듯하더니 까무룩 잠이 들었다.


방안이 황색 전구조명으로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나는 불을 끄고 잠을 잔 적이 없었다.

‘레슨이 끝났나?'라는 생각과 동시에 침대맡 시계를 보니, 새벽 1시였다.

화들짝 상체를 일으켰지만 침대를 내려올 때는 약기운 탓인지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남편은 학회 참석차 오전 진료 마치고 지방에 갔다가 내일 오후 진료 맞추어 바로 출근한다고 했었다.

아이 방문을 열었더니 쌔근거리는 아이의 숨소리가 들렸다.

몸을 다른 방향으로 고쳐 누우며 뒤척이는 아이에게 이불을 끌어당겨 덮어주고 주방으로 나와 물을 마셨다.


아침이 밝아 올 때까지 눈을 감고 소파에 기대 몸을 구겨 넣고 있었다.

아이가 일어났는지 욕실 물소리가 들렸다. 아이에게 줄 계란 프라이와 토스트, 올리브오일을 뿌린 구운 토마토를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욕조에 뜨거운 물을 틀어놓고 아이와 식탁에 마주 앉았다.

아이는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엄마, 어디 아파? 깨웠는데 안 일어나서.”


“좀 감기기운이 있어서 약 먹었더니 그랬나 봐. 레슨은 잘 받았고?"


“선생님 친절해. 다른 선생님들이 안 가르쳐준 거 가르쳐줬어. 스타카토, 챈 챈 챈, 이렇게 하는 거 재밌어. "


아이는 팔을 들어 활을 줄에 부딪히는 시늉 하며 눈을 히주 그래 하며 활짝 웃었다.

아이가 바이올린 배우는 것을 싫증 내며 안 배우겠다고 고집을 피워 레슨 강사를 바꿔 본 것이었다.


“나 이제 그만할래. 어려워, 못하겠어. 꼭 배워야 돼? 다른 거 할 것도 많은데, 왜 이걸 꼭 배워야 돼?”


며칠 전까지 고집을 피우던 아이였다. 아이가 재미있었다 하니 안심이 되어 다행이다 싶었다.


“엄마, 선생님이 엄마에게 이거 주래. "


그의 명함이었다.


아이 학교 가는 것을 배웅하고 나서야 그의 명함을 찬찬히 보았다.

그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를 떠올려봤지만 눈앞에 까만 점이 점점 커지다 회색빛으로 번지며 마치 그림자처럼 희미한 실루엣만 보이고 뚜렷하게 생각나지 않았다. 한참을 멍하게 앉아 있다 머리를 흔들었다.

앙상한 가지사이로 몇몇 사람틈에 그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나를 쳐다보는 듯하다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눈을 비비고 손가락으로 머리를 빗어 올렸다. 점점 그의 얼굴이 다가왔다.

그와 나사이에 그어진 선이 뚜렷해질수록 그의 얼굴이 점점 선명해졌다.

짧은 곱슬머리를 단정히 자르고 셔츠 맨 윗단추까지 여며 잠근 철벽을 친 듯한 그의 단단한 얼굴에서

그와 나 사이에 분명한 선이 그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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