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부. 18장. 내가 깊은 기쁨을 느낄 때

by 김영웅

1부. 18장. 내가 깊은 기쁨을 느낄 때


동수는 최근 유경과 효영과 함께 한 나날들을 돌아봤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어떤 감동이 밀려왔는데, 동수는 그걸 한 단어로 압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기쁨이었다. 동수는 이 감동을 기념하고 싶어 글을 쓰기로 했다. 가끔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봇물 터지듯 글들이 쏟아져 나올 때가 있다. 동수가 겪고 있는 상황이 바로 그랬다. 한 시간 만에 글을 완성하고 손 본 뒤 단톡방에 너희들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과 함께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film-102681_1280.jpg?type=w773

사람이 살아날 때


잘 울지 않는 내가 눈물을 참을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런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나는 가슴 저 깊숙한 곳에서 솟구쳐 오르는 뜨거운 눈물을 어떻게 처리할지 몰라 당혹스러워한다. 그건 바로 사람이 살아날 때다. 사람에게 구원이 임할 때다. 내가 깊은 기쁨을 느끼는 순간이고, 내가 살아있는 이유, 살아야 할 이유를 다시 발견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사람은 저마다 빛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사람 자체가 하나의 빛일지도 모른다. 스스로는 모를 수 있어도 누군가는 반드시 알아볼 수 있는 생명의 빛이다. 이 빛은 무한과 영원으로부터 왔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에 제한된 사람이 유한한 몸을 가지고 있을 때에만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유한한 몸을 가지고 있지만 무한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까닭, 시간에 제한되어 있지만 영원을 꿈꿀 수 있는 까닭은 내재된 빛이 있기 때문이다. 그 빛은 살리는 힘이 있다. 어두움을 물리치고 한 영혼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길 수 있다. 그 힘만이 어두움에 빠진 사람을 살릴 수 있다.

hands-5216585_1280.jpg?type=w773

그러나 우리는 저 문장들을 '어두움에 빠진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시간은 제한되어 있다'라고 읽을 필요가 있다. 그러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흘러간 시간보다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지금 내가 허투루 보내고 있는 시간들을 돌이켜보게 된다. 해야만 할 일들을 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반복해서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시간 밖 영원의 눈을 통해 시간에 제한된 나와 타자와 세상을 비로소 객관적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눈이 깊어지는 순간이다. 이 순간은 누군가에겐 다시 태어나는 순간으로 기록되기도 한다.


그렇게 눈이 깊어진 사람이 바라보는 시선은 거짓이 없고 겸손하여 모든 거짓을 관통하고 모든 교만을 꿰뚫는다. 무엇보다 복잡하지 않고 단순해진다. 백발의 노인도 가질 수 있는 순수한 아이의 눈이다. 나는 이를 지혜라고 부른다. 이 지혜자에게 스스로의 유익은 더 이상 인생의 목적이 아니다. 어두움에 빛이 임하는지, 사망이 생명으로 옮겨지는지, 죽었던 사람이 되살아나게 되는지에 모든 삶의 목적과 방향이 정해진다. 기쁨도 이러한 것들이 성취될 때 선물처럼 찾아든다. 기쁨은 빛의 전도사가 되어 누릴 수 있는 하나의 특권인 것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내 안의 빛을 자꾸만 잊어버린다. 그 빛을 잃지 않아 다행이라 여기면서도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처럼 잊어버릴 때마다 나는 기쁨을 상실한 사람이 되어 공허하고 혼돈된 상태로 치닫게 된다. 그러다가도 예기치 않게 찾아오는 순간들이 있어 나는 다시 기쁨을 회복하면서 내 안의 빛을 자각하게 된다. 바로 사람이 살아날 때다. 사람에게 구원이 임할 때다. 내가 깊은 기쁨을 회복하는 순간이고, 내가 살아있는 이유, 살아야 할 이유를 다시 발견하는 순간이다. 누군가로부터의 빛이 나와 다른 누군가에게 흘러 들어가는 광경. 어두웠던 영혼이 함박웃음으로 밝게 피어나는 광경.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그 광경들. 내 가슴을 다시 뛰게 한다. 그리고 조용히 다짐하게 된다. 나는 평생 이 기쁨의 전도사가 되기로. 누군가에게 빛을 전해주어 그 사람이 살아날 수 있도록 돕기로. 그래서 그 사람도 빛을 인지하고 제2의 전도사가 될 수 있도록 돕기로. 그 깊은 기쁨을 가능한 자주 느낄 수 있는 너와 내가 되기로.


유경, 효영, 동수, 단 세 명이 모인 글쓰다짓다 글쓰기 모임은 6개월간 적지 않은 변화를 일으켰다. 세상은 그대로였지만 그 세상의 일부인 셋의 눈과 마음과 생각이 달라진 것이었다. 그러자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글쓰기 하나만으로 이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에 모두 놀라워했다. 다음 달엔 기념이나 하자며 동수가 단톡방에 제안을 했다. 우리 시간 내서 어디론가 멀리 떠나서 당일치기로 바람 좀 쐬자. 어때? 유경은 아이들을 챙겨야 한다는 생각에 살짝 부담을 느꼈지만, 당일치기라는 단어에 꽂혀 좋아요를 눌렀다. 그때 효영이 댓글을 달았다. 이제 글쓰다짓다 2학기가 시작되는 거냐? 동수는 효영의 댓글에 움찔했다. 속을 들킨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랬다. 동수는 2학기 글쓰다짓다를 조금은 다른 형식으로 시작하고 싶었다.

onion-2013174_1280.jpg?type=w773

1학기가 나를 찾고 성찰하는 시간이었다면, 2학기는 눈을 외부로 돌려 타자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1학기 내내 스스로를 돌아봤고 각자의 삶에서 변화를 경험했기 때문에 그 시선의 변화는 분명 좋은 글로 열매 맺힐 거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또한 2학기에는 문학과 철학을 함께 읽어나가며 글쓰기 재료가 바닥나지 않도록 조율할 작정이었다. 문학이 사유와 경험의 풍성함을 더한다면, 철학은 그 풍성함 이면에 숨어 있는 어떤 원리 혹은 관점을 갖게 해 주어 깊이를 더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셋은 각자가 다른 생각을 했지만, 모두 2학기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17화1부. 17장. 내가 가장 모순을 느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