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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영의 추억(1)

풋내기 교사의 첫 야영

by 솔아

부모가 된 후, 나와 남편은 주말이 되면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캠핑을 떠난다. 가깝게는 동네 뒷산에서부터 멀리는 강원도 산자락까지. 꾸역꾸역 테트리스하듯 욱여넣은 짐들 덕에 구겨지듯 한쪽 구석에 불편하게 앉아 먼 길을 가야 할 때면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게 무슨 사서 고생인가.'


야영장에서도 불편함은 줄지어 기다린다. 딱딱한 바닥에선 한기가 올라오고, 어떻게 누워도 몸 이쪽저쪽이 배겨 잠이 들기도 힘들다. 잘 씻지도 못해 머리카락과 옷자락마다 배인 매캐한 숯 냄새는 집에 돌아와서도 며칠을 따라다니는 듯하다.

우리는 이 '사서 고생'을 자진해서 7년 동안 이어오고 있다. 온 산을 뒤져 예쁜 돌멩이를 주워오고, 흙투성이가 되어 뛰어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이 모든 불편함을 봄눈 녹듯 녹인다. 이제는 느긋하게 앉아 산바람을 맞으며 책도 읽고, 산새들의 울음도, 풀벌레 소리도 즐길 줄 아는 '프로 캠퍼'가 되었다. 아이들이 잠든 밤이면 남편과 나는 나란히 앉아 타닥타닥 타들어 가는 장작불을 바라보며 '불멍'을 한다. 가끔은 남편과 앉아 오래간만에 아이들 얘기가 아닌 사는 이야기도 나누어 본다. 바쁘게 살아온 하루하루를 느리게 되감아 보는 여유를 선물 받는다.


유독 길었던 2025년 추석 연휴, 우리는 밀양으로 떠났다. 폭포수를 앞에 두고 뚝딱뚝딱 텐트를 치는 아빠를 돕겠다고 나서는 두 딸들을 보는데,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다. 풋내기 선생님과 새내기 중학교 생활을 함께 한 나의 첫 제자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한 나의 '첫 캠핑'.

갓 발령받은 새내기 선생님 시절 때다. 그때만 해도 아이들이 직접 텐트를 치고, 밥도 해 먹는 진짜 이름 그대로 '야영'을 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풋내기 시절, 1박 2일 동안 여행을 간다는 설렘에 나도 아이들도 함께 들떴다. 야영 날이 다가올수록 동학년 선생님들의 한숨은 깊어져 갔지만, 뭣도 모르는 하룻강아지인 나는 모든 게 그저 신기하고 즐거웠다. 선생님들이 왜 그렇게 걱정을 하나 의아할 지경이었다.


훈련받는 아이들 틈에 끼여 함께 등반도 하고, 밥 짓는 아이들 사이를 누비며 요리에 '요'자도 모르면서 훈수를 두고 삼겹살을 두어 개씩 얻어먹으며 룰루랄라 신나게 야영을 즐겼다. 캠프 파이어를 가운데 두고 촛불을 밝히며 노래를 부르던 밤, 다소 오글거리는 사회자의 멘트에도 철부지 선생님은 어느새 열네 살 사춘기 소녀가 되어 함께 눈물을 흘리며 첫 야영의 낭만에 흠뻑 취했더랬다.


언제나 그렇듯, 사건은 마음이 가장 느슨한 순간에 찾아오기 마련. 이제 텐트를 모두 걷어내고 버스만 타면 되었다. 지난밤의 여운이 남은 아쉬운 마음을 텐트와 함께 착착 접어 넣으며,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는 잔소리하고 있을 때.


"선생님!"


멀리서 급하게 나를 찾는 아이들의 목소리. 등골이 서늘하다. 불길한 예감은 항상 빗나가는 법이 없다.


"선생님, 'ㄱ'이 망치질하다가 자기 손을 내리쳤어요!"


머릿속이 하얘졌다. 뭐라고? 망치질을? 저기, 얘야, 내가 제대로 들은 거 맞니? 지금은 텐트를 치는 게 아니라 걷고 있는데, 망치질을 했다고? 상황이 퍼뜩 이해되지 않았다. 일단 다친 아이를 향해 냅다 뛰었다. 'ㄱ'은 아픈 손을 부여잡고 데굴데굴 구르고, 주위로 학생들이 빙 둘러싸고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ㄱ'의 엄지손가락은 정말 만화처럼 부풀어 올라 있고, 안 그래도 까만 얼굴은 눈물 콧물 아픔이 범벅이 되어 더 새카매 보였다. 초보 선생님은 아이들처럼 어떻게 해야 하나 발을 동동 구르는 것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동료 선생님들 덕에 응급처치를 마친 'ㄱ'은 병원으로 향했고, 눈물 범벅이 된건 이번엔 'ㄱ'이 아니라 아직 앳된 담임이었다.


'ㄱ'은 우리 반 공식 말썽꾸러기였다. 쉬는 시간마다 복도를 전력으로 뛰어다니다 불려 와 야단을 맞고 있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고, 온 얼굴과 무릎에는 상처와 흉터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롭게 생겼다. 함께 살고 있는 할머니의 증언에 의하면 'ㄱ'은 초등학생 때부터 각종 사건 사고를 일으켜 애간장을 녹였다고. 웬일로 요즘 좀 조용히 잘 지내나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부리나케 달려온 할머니는 역시나 이런 일을 한두 번 겪어본 솜씨가 아닌 듯, 안절부절못하고 서 있는 한참 어린 담임에게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죄송하다' 하셨다. 담임은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죄로 함께 고개를 숙이며, '제가 죄송합니다'반복했다. 누가 누가 더 미안한가를 다투던 '죄송 배틀'은 진료를 마치고 나온 'ㄱ' 덕분에 끝이 났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ㄱ'의 말에 따르면, 땅에는 텐트를 칠 때 박아두었던 말뚝이 여기저기 놓여있었고, 마침 심심해진 'ㄱ'은 근처에 놓인 공구상자에서 망치를 꺼내 말뚝을 다시 맨땅에 박기 시작했다고. 그러다 헛손질을 했고, 그 결과가 지금 엄지 손가락에 두른 저 깁스였다. 이제 아픔은 가셨는지 천진난만하게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ㄱ'을 보자, 할머니와 담임의 입에서 동시에 한숨이 새어 나왔다. 심심해서 망치라니.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열네 살 소년을 앞에 두고, 정말 그들의 머리를 열어 뇌를 들여다보고 싶은 스물네 살의 철없던 선생님은 울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ㄱ'도 이제 어른이 되었을테고, 어쩌면 자신을 꼭 닮은 아이를 키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가 크면, 그 아이 손을 잡고 캠핑을 가면서 그 옛날 중학생 시절의 철없던 장난을 떠올리며 웃음 지을까? 지금 'ㄱ'의 나이보다도 어렸던 그때 담임 선생님의 속이 시커멓게 다 타버렸다는 걸 이제는 알아줄까? 캠핑장에 들어서면 마음 한쪽이 간질거리면서도 심장이 방망이질을 시작하는건 그날의 기억때문일테다.


그때의 일을 떠올리면 아직도 심장이 철렁하고 마음이 쪼그라든다. 어쩌면 교사의 하루하루란 그런 야영날의 반복일지도 모르겠다. 사춘기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상은 항상 나의 추측을 비웃고 예상을 뒤엎어 버린다. 아이들의 행동을 예측한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리 눈에는 '왜 저럴까' 싶은 그 엉뚱함 속에서 사실 학생들은 나름 열심히 성장 중이다. 머릿속은 한창 공사중일 나이인데, 좀 엉뚱하면 어때. 어른들이 그러면서 크는 거랬다. 시키는 대로 말 잘 들으면 그게 어른이지, 앤가? '애'니까 '애'답게 크고 있는 거다. (대신 다치지만 말아다오. 제발!)

나 역시 함께 단단해진다. 그날 나는 마음 속 '중학생을 다룰 때 주의사항'의 첫 번째 칸을 채워넣었다.

'어떠한 순간에도 방심은 금물. 꺼진 불도 다시 보자! 말썽꾸러기에게서는 눈을 떼면 안 된다. 조용하면 사고를 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보니 청소년이 아니라 아기를 돌볼 때 주의사항과 흡사하다는 생각도 든다.)

엉뚱함이 넘쳐 무모함이 되는 건 막아야 겠기에. 그렇게 '중학생 다루는 방법'을 하나하나 터득해 나가는 선생님은 이제 아이들과 캠핑을 나서면, 텐트를 걷을 때마다 말뚝을 재빨리 수거해서 아이들 손이 닿지 않도록 해야 안심이 된다. 또 다른 'ㄱ'이 생기지 않도록.

그리고 그 단단해진 나날들 덕에 나는 또 다른 '야영'을 준비할 수 있 되었다. 앞으로 닥칠 수많은 '야영'의 날들을 무사히 보내고, 우리가 웃으며 함께 자랄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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