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심줄 사춘기 여고생, 유관순

두루 아는 위인이 아닌, 사람 유관순

by 이제이

우리는 유관순을 '3.1 운동의 소녀 열사'로 외운다.

교과서에 나온 사진,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한 나이 만 17세.

하지만 그 이름을 지나치듯 외우기엔 그녀는 너무나도 뜨겁고 살아 있는 존재였다.



유관순의 뿌리, 그 가족과 교육


유관순은 충청남도 천안 병천면 용두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유중권, 어머니 이소제 모두 기독교 신자였다.

가난하진 않았지만 넉넉하지도 않은 중농층 가정.

그럼에도 딸을 서울 이화학당에 유학 보낼 만큼 교육에 대한 믿음이 컸던 집안이었다.


오빠 유우석, 동생들까지 여럿 둔 6남매 중 둘째 딸.

당시엔 보기 드문 여성 고등교육을 받으며, 신앙과 지성, 자유와 평등에 대한 자의식을 키워갔다.

기독교는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 평등하다”라고 가르쳤고,

이화학당은 여성으로서 깨어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줬다.



유교적 신분제에 대한 내면의 저항


유관순은 명시적으로 "신분제에 반대한다"라고 외친 적은 없었다.

하지만 기독교와 이화학당이 심어준 자아의식,

그리고 당시 조선 사회의 봉건적 유교 질서는

그녀 마음속에서 날카롭게 충돌하고 있었을 것이다.


여성은 말하지 말아야 하고, 참아야 하며, 뒤에 있어야 한다는 질서.

그녀는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불편함과 침묵할 수 없는 감각이 곧, 저항의 씨앗이었다.



독립선언서, 억눌린 진실에 ‘이름’을 붙이다


1919년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던 순간,

유관순은 그 현장에 있었다. 이건 단순한 ‘낭독’이 아니었다.

억눌리고 눌려 있던 진실이 공적으로, 거대한 목소리로 선언된 순간이었다.


그녀는 그 순간, 그 선언을 '읽은 것'이 아니라 '들었다'.

자신을 향한 시대의 부름처럼.

"이건 내 일이야. 내가 해야 할 일이야."

그녀는 뜨겁게 반응했다. 아니, 이미 준비된 마음에 불이 붙은 것뿐이었다.



유관순의 독립은 ‘나라’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독립이란 단지 나라의 일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그것은 '여성으로서의 자기 독립', '내가 나로 설 수 있는 권리'에 대한 외침이기도 했다.


어렸기에 더 열정적일 수 있었고,

사춘기였기에 더 솔직하고 겁 없었으며,

지켜야 할 것이 자기 자신 뿐이었기에

책임에 대한 두려움 없이 더 활활 타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믿었다.

그렇게 해서 나라의 독립을 찾게 된다면, 세상도 바뀔 수 있으리라.

자신처럼 이화학당에서 배운 평등과 자유가 모든 여성에게도 주어질 수 있으리라.

그 희망이야말로, 그녀를 움직이게 한 내면 깊은 동력이었다.



아우내 장터, 행동하는 신념의 시작


이화학당은 3.1 운동 후 일시 휴교됐다.

유관순은 친구들과 함께 고향 병천으로 돌아가

4월 1일,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을 조직한다.

기획하고 사람을 모으고, 태극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더 이상 ‘여고생’이 아닌 ‘행동하는 국민’이었다.


그날의 만세운동은 경찰의 총칼 앞에 짓밟혔고,

그녀의 부모는 현장에서 피살되었다.

유관순은 체포되었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끝내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순국했다.

1920년 9월 28일, 만 17세의 죽음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불꽃이었다


유관순은 단순한 민족운동가가 아니었다.

그녀는 당대 모든 억압받는 존재의 상징이었다.

식민지, 여성, 청소년, 빈자...

그 모든 경계와 고통을 껴안고,

정말로 자신의 몸으로 외친 ‘자기 선언서’였다.


“그날, 유관순은 독립선언서를 읽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명을 들었다.

그리고 그 명령에 평생을 바쳤다.”



끝으로


유관순을 '위인'으로 기억하기보다

‘쇠심줄 같은 사춘기 여고생’으로 기억하면 좋겠다.

말라붙은 정의가 아니라,

뜨겁고 살아 있는 자유의 감정으로.


그렇게 보면, 유관순은

아직도 우리 안의 두려움과 맞서고 있는

오늘의 나와 다르지 않다.



(고지)


※ 이 글은 유관순 열사에 대한 역사적 자료를 바탕으로

조사 및 작가적 해석과 상상력을 더해 구성한

에세이 형식의 글입니다.

역사적 맥락과 감정적 진실을 함께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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