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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루츠캔디 May 01. 2024

캐나다에 내가 있는데 마치 없는 느낌, 무력감을 맛보다

엄친딸의 고질병 인자 칭찬, 강제 디톡스 후 비로소 내가 되다.

그럼 캐네디언과의 관계는요? Sophie Wan의 소설에서 첫 줄에 묘사된, 바퀴벌레의 삶이 나의 것 보다 낫다, 라고 말할 수준은 아니지만, 이민 후 나의 삶의 비참함에 연속이었던 날 들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저의 꼼꼼하고 섬세한 성격이 (나쁘게 말하면, 까탈스럽고 뭐든 오랫동안 충분한 시간을 들여 최대한 소화하고자하는) 큰 몫을 하겠고, 또 없이도 아무 지장이 없는 사회에  편입된 이민자라는 나의 입장인이 또 다른 주요 변인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검은머리 캐네디언들은 어떠냐? 성인이 되어 이민 온 너와 입장이 같냐? 라고 누가 물으면 그 부분은 다음화나 다음다음에 차근히 설명하겠습니다.



한국에서 나는 맏딸로 성장했습니다. 86년 여자 범띠, 전통적인 여성성과 다소 먼 우리는 용감하고, 정의로우며 그에 비해 순수하고, 책임감이 강합니다. 약자를 언제나 구원해야 직성이 풀리고, 주변사람들을 내 목숨처럼 아끼는 사람들. 약삭빠르지 못하고, 고지식해서 맡은 바 최선을 다해야만하는. 게다가 나는 호랭이에 더해 여자뿐인 자매안에서 언니로서 동생을 항상 책임지는 위치에 있던 사람. 밖에 나가서는 친구나 동료, 선후배들을 챙겨 좋은 동료, 언니, 믿음직한 후배, 반장, 회장, 누구나 세 손가락에 꼽는 단짝친구로서의 역할을 하며 나의 존재감을 확인했던 사람입니다.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선의를 베풀고 스스로 만족하는 사람.


관계속에서 나를 확인하며, 가족을 비롯한 주변사람들에게 항상 인정받으며 사는 것이 습관이 되어, 무의식적으로 이 곳에서도 노력의 댓가로서 당연히 사회적 수용과 인정, 호감, 호의, 더 나아가서는 존경이 따라올거라 생각하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한국사람들이 제일 싫어하고 경계하는 대상을 요즘말로 나르시시스트라고 합니다. 사람을 그 자체의 목적으로서가 아닌 자신을 위한 수단과 도구로 활용하는 사람, 내 필요에 맞는 사람을 선택해 쓰고 버리는 문화는 원래 식민지를 침략하고 개척하던 자들의 전통적 문화입니다. 캐나다에 먼저 정착한 유로피안들의 사고방식 측면에서 볼 때, 나라는 사람은 일반적인 기준에서 새로운 사회에서 없어도 그만 있어도 그만인 사람으로 자꾸만 읽혀집니다.


실제 삶의 한 걸음 두 걸음 다가가 경험을 통해 부딫혀본 결과, 매사 나의 노력의 양이 무색하게 실전에서는 원어민이 절대 유리할 수 밖에 없으며, 겉으로 보여지는 면을 통해서도 밖에 나가면 유럽출신 백인과 나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의 미묘하지만 절대적인 차이를 벤쿠버에서나 토론토에서나 에드먼튼에서나 위니펙에서나 퀘백에서나 어디서든 느낍니다. 한국에서는 내가 운이 좋아서였는지 심지어는 별 노력이나 협동의 의지를 보여주기전에도 나에게 호의적인 여자와 남자들에 둘러쌓여있었는데,  나 외에도 현지 로컬 대학에서 무수히 많은 극동아시아인 서남아시아인, 유럽인, 아프리카 출신인 등 각계 인간 집단을 보며 느낀 바, 이 곳에서 내가 속한 극동아시안은 대중이 걸그룹을 보는 시각처럼 성적대상으로 읽히는 것 이외에는, 그렇게 모든 사람들에게 선망받아 은연중에 자신들의 리더 또는 대표가 되어줬으면 하고 생각되어지거나 만인의 인기를 얻는 인종은 아니라는 것을 느낍니다.  설사, 상황에 따라 실력을 보여서라든지 어떤이유에서든지 평가우위에 놓이면, 평가기준을 의심받는일이 다반사이며, 나 라는 사람이 인기있는 인종의 사람들보다 잘 해내는 꼴에 대해 따가운 사회적 견제를 감당하는 것이 힘이 듭니다.


언니, 대학다니는 아들이 항상 소심하고 친구없어서 걱정이라고 했지? 언니 아들만의 일이 아니야, 대다수의 아시안애들이 친구없이 혼자 다녀, 엄마가 한국애들하고 어울리지 말라는데 그럼 어울릴 애들이 없어. 한국애들 비롯한 동양애들하고 어울려다니면 그나마 다행이야. 애가 왜 혼자 다니는줄 알아? 애들 사이에도 하이어라키가 있어, 절대 아이 개인의 영어실력이나 사회성 문제가 아니야, 혼자서 아니면 몇몇이서 뭉쳐도 절대 바꿀 수 없는 고질적인 사회적 문제가 있어. 차라리 혼자 다니는게 낫다고 판가름한 아이의 심정은 오죽하겠어? 그리고 그 하이어라키는 어른들 세계인 사회생활에도 똑같이 적용돼. 어째 지들 부모나 할머니 할아버지나 애들이나 하나도 변한게 없냐, 지금이 2024년인데.




영어를 잘하면 되잖아, 니가 성격이 더 열려있으면 되잖아


그럼요. 맞아요. 영어를 원어민 뺨치게 잘해서 내가 상황을 호의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고, 모든 사람에게 차별없는 열린 태도를 보이는 것에 숙달되면, 사람들의 나에 대한 대우는 지금보다는 좀 더 나아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꼭 나를 바꾸면서까지 사회속에 동화되어야만 하는건가요? 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부정하면서까지 타인을 매사 설득하며 살아야하는거죠?






"학업 또는 기술, 영어 능력을 열심히 갈고 닦아 적당한 위치에 캐나다 사회인으로서 살포시 자리매김하면 된다"라는 단순한 결론은 제게는 너무 나도 자기중심적이고 순진한 생각이라 여겨집니다. 나를 제외한 박진감 넘치는 사회적 역동은 깡그리 무시하겠다는 전제가 있기때문이죠.


상황은 코비드 전과 후로 나뉩니다.

코비드 후에 내가 살고 있는 위니펙을 비롯한 몇몇 대도시들에는 아시안 혐오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것으로 대표될 수 있는 개스 스테이션이나 그로서리에 방화범죄가 늘 성행하는 것을 봐서는 그 비즈니스가 위치해있는 곳은 시골이나 도시나 할 것 없이 어디든 구분없이 성행입니다. 비즈니스 불태워 버리기, 살고 있는 집에 불내기...

토론토로 대표되는 자동차 도난사건은 어떻구요? 중국이나 한국 사람들이 주로 모는 자동차를 타겟으로 유리를 부셔 차를 도난하는 일들이 적지 않게 넘칩니다. 아시안 여자들이 길가를 지나다니면 함부로 때려버리는 일도, 상처입고 퉁퉁부은 얼굴 사진이 인터넷에 떠도는 일도 한동안 비일비재했습니다.


플라잉몽키, 이 미디어와 대중매체들 때문입니다. 미디어가 코비드 출산지를 중국으로 확정하고 퍼뜨려놓은 덕에 중국사람 그리고 그들과 똑같이 생긴 한국인인 우리들이 스케이프고트가 되어 사회적 불만을 모두 뒤집어 쓴 채 감당하는 삶을 살았던 코비드 창궐시기를 지난 몇 년간 지냈습니다.


물론 지역사회 곳곳에서는 아시안 혐오범죄를 금지한다는 푯말을 걸고, 협동할 것을 주장하는 위니펙이지만 우리는 지구촌 곳곳의 뉴스를 언제 어디서든 편안한 시간에 스마트폰을 통해 접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원래 인종차별에 심했던 유럽 뿐만아니라 북미, 남미, 그리고 서남아시아의 사람들 까지도 한 목소리로 아시안을 따돌리는데 솔직히 정신적 타격이 작지 않습니다.


뉴스에 나오는 범죄라는 사실은 일반화할 수 없다라고 말하는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내 옆에서 누구보다도 성실히 일하고, 가족을 위해, 지역사회를 위해 열심히 비즈니스를 운영하셨던 내 부모님과도 별로 다르지 않은 한국인의 피해를 가까이서 직간접적으로 경험해보시면 그건 나와 별개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내가 아는 사람이 당한 일에 경악을 금치 못하는 것은 당연하며, 내  손안에 언제나 들어와 있는 스마트폰으로 전달되는 나라안팎소식또한 사람들은 실감나게 접하고 감정이입 하게 합니다.


수업시간에 사람많은 대강당에서 이 곳 저 곳 또는 옆 사람 기침소리나 재채기 소리만 들어도 코비드라는 단어와 아시안혐오 현상이 제 스스로 연상될 정도입니다. 


중국발인지 뭔지 사실, 진실은 대중들에게 중요한 바가 아닙니다. 도무지 실체를 알수 없어 드는 감정인 불안의 원인을  추정해 대상을 정해 떠미는 대중 마녀사냥이 사회적불안을 잠재우기위한 전략으로서 그만입니다. 생각없는 대중은 사회적 불만을 스케이프코트를 만들어 떠밀어버리는, 일종의 마녀사냥이라는 메인스트림의 정치적 전략을 알리 없습니다. 일단 비난의 대상이 나 또는 내가 속한 집단이 아니면 그만이고, 불안을 해소하기위해 더욱 비난을 가속화합니다. 의도를 갖고 미디어질하는 정치가들보다 무식해서 미디어에 세뇌되고 쉽게 동조하는 대중들이 더 꼴보기 싫습니다.


문제는 내가 속한 사회는 소수의 엘리트가 아닌 대중으로 구성되는 사회라는 것입니다.


코비드 전 열심히 영어공부하던 나는 어디갔나요.

이걸 특정인종 기피증이라 해야하나요, 사회 혐오증이라고 해야하나요. 내 나라 내 언어가 떡하니 세상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아름다운 언어 중 하나로 존재하고 있는데, 일부러 나와 같은 사람들을 조지려 하는 사회의 언어인 영어를 연습하고 잘해야하고, 또 그 실력을 갖고 평가받아야한다는 사실이 고깝게 느껴집니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야지 새끼들이 지들 언어로 말을 해줘도 못알아듣는척하는데 굳이 완벽한 문장을 구사하려고 하루 몇십시간씩 나 자신을 고통속에 몰아넣었던 내 스스로가 가여워져 듣는사람이 알아듣든 말든 일부러 엿같이 말하고 다니고, 대답도 안하고, 그들의 말을 씹어버리기도 했습니다. 열심히 공부한 만큼 반항심 또한 심하게 들어서인지 한 이삼년은 함구증을 앓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인생 참 공평하죠.

누군 영어가 천천히 늘어 고민이지만 저 같은 사람들은 급속도로 허겁지겁 태풍치듯, 바다에 휩쓸리듯 언어가 늘었던 만큼 뒤늦게 정신이 들며, "나는 누구, 여긴 어디? 현타가 오고, 반항심이 터져 주둥이를 닫아버린 채로 몇 년을 버티기도 하니까요.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건 언어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내게 주어지는 자극 처리 방식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와 같은 사람들은 짧은 시간안에 어느 정도 지정된 공간안에서 내게 주어지는 자극의 종류와 양, 강도를 일단 매우 빠르게 받아들이고 보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언어가 천천히 느는것 뿐 아니라  모든 외부 자극에 있어서도 한번에 하나를 처리하며, 종국에 가서야 "아, 그때는 네가 무슨말인지 동의하지 못했는데, 이제 알 것 같다" 라고 합니다. 저와 같은 사람은 그래서 초반에 많은 사람들의 동의를 얻지는 못하지만, 종합적 의사결정을 짧은 기간안에 내리는 것에 유리한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야 비로소 대부분의 사람들의 동의를 얻게 됩니다. 당신의 자극처리 스타일은 어떤가요?



내가 처한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추론과 달리, 정작 영어가 아니라는 걸 내 작동하는 머리가 이미 알아버렸거든요.  영어로 잘 씨불여봤자 엔트리가 아닌 저들 좋을 중간관리자로 뽑혀 신나게 피 빨리고, 제 발로 지쳐 나가게 할 것을요. 기존세력이 튼튼한 진입장벽을 만들어 철옹성을 뚫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죠. 인종, 종교, 성별, 문화 다 제끼고 내가 내 자리를 방어하는 것은 원래 인간 본능입니다. 그런 바닥에서 뭐하러 싼 값에 일을 잘 해줘야합니까?


그런데도 내가 부족직군에 속해서라도 이 사회에 수용되어야한다구요?




어디든 안그럴까요? 한국에서도 아무리 예쁨받는 직원이라도 나가면 대체할 사람이 줄을 서는데 하물며 캐나다에서 태어나 교육받은 사람들도 일하고 싶다고 줄줄이들 곧게 서 있는데, 이들 입장에서도 굳이 언어면에서도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고, 문화적으로도 상당히 이질적인 나를 꼭 자신들의 친구로서 동료로서 옆에 두어야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부족직군안에서 직업을 고르는 것만이 내가 이 곳 캐나다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그 외의 직업은 쳐다도 보지 않았던 시각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모르던 긴 시간이 존재합니다만,  그러나 부족직군은 부족 직군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반드시 존재하며, 나조차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그들 중 한명이기에 특별한 적성이나 취미가 있지 않는 한, 부족직군안에 속해서 버텨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나는 이래뵈도 자기객관화가 꽤 잘 되는 사람입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사탕을 달콤하다 느끼고, 운동을 열심히해도 나의 체력은 남의 것과 마찬가지로 한계를 갖고 있으며, 똥은 더럽다고 느끼는 상당히 평범한 사람입니다. 나보다 똑똑한 사람, 문제해결력이 뛰어난 사람은 세상에 넘치고 넘칩니다. 식물이라면 잔디이고, 동물이라면 캐나다에 흔해빠진 사슴이 바로 나 입니다. 그런 내가 남들 모두 어렵고 힘들어 기피하는 부족직군에서 철갑을 두른듯 오랜기간 기쁜맘으로 버틸 수 있다고 보증할 수 없습니다.


내 나라 한국이 그렇다고 먹고 살기 힘들거나, 살기 불편한 나라도 아니고, 나 또는 남편에 대한 임금을 비롯한 사회적 대우가 형편없었던 것도 아니고, 속된말로 우리가 빚을 잔뜩지고 도망다니는 입장도 아닌데요.



이대로는 내가 죽게 생겼으니, 생각의 틀을 고쳐 먹기 시작하게 됩니다. 


사회적 관계망안에서 나의 가치를 확인하던 자세를 벗자. 북미에서 나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잘한다 대단하다 칭찬받고 인정받고 존경받기는 틀려먹은 몸이니, 이왕 이렇게 된거... "사회적" 인정, "사회적" 이름값, "사회적" 존경과 존중 등에서 나의 가치를 확인받던 습관을 벗고, "사회적"이 아닌 바로,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자. 누가 뭐라든 내 인생을 살자! 칭찬에 중독된 나 자신에 칭찬 디톡스를 실천하고, 비난을 받을지언정 내 삶을 살자



그렇지 않으면 아무 의미 없는 사회에 살고 있으니까...


그럼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뭘까?



지나가다가도 폭행당하고, 열심히 운영하던 비즈니스도 혐오감정으로 불태워지는, 졸라구린 대우 속 캐나다에서의 동양인으로서, 나는 남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 노력봉사로 행복을 느끼고 보람느끼는 일 따위를 목표로 삼던 나의 한국에서의 직업선택과 가치관을 철저히 철회하게 되었으니 내가 캐나다에 혹시 고마워해야하는건가요?이게 남들이 해방, 해방 떠드는 그것 인가요.


86년 범띠고 나발이고, 그러고보니 저는 원래부터도 누가 인정해줄 때야 비로소 선의를 베푸는 사람이었나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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