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몽인 Feb 14. 2024

모순

양귀자

이번 책은 "흡입력 좋은 소설"하면 꼭 리스트에 있는 양귀자 작가님의 '모순'이다.

재밌는 소설의 모든 요소가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개성 있는 인물, 공감 가는 주제, 맛있는 글빨]


약간 인터넷 소설 같다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중간중간 나오는 구절이나 전체적인 작품의 메시지가 마음에 들어서 누군가가 한국 소설책을 읽고 싶어 한다면 추천한다.


* 스포가 등장할 수 있습니다.


그랬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내가 내 삶에 대해 졸렬했다는 것, 나는 이제 인정한다.
지금부터라도 나는 내 생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되어 가는 대로 놓아두지 않고 적절한 순간, 내 삶의 방향키를 과감하게 돌릴 것이다. 인생은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전 생애를 걸고라도 탐구하면서 살아야 하는 무엇이다. 그것이 인생이다."


작품 초반에 주인공이 인생에 관해 갖는 가치는 위와 같다.

나 또한 '그렇지, 인생은 치열하게 탐구하면서 만들어가는 것이지!'라고 여기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모순들에 자주 생각이 멈추곤 했다.

수많은 모순을 맞닥뜨리며 바뀌는 주인공의 인생관에 집중해서 읽으니 더욱 재밌었다.

 


사람들은 작은 상처는 오래 간직하고 큰 은혜는 얼른 망각해 버린다. 상처는 꼭 갚아야 할 빚이라고 생각하고 은혜는 꼭 돌려주지 않아도 될 빚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장부책 계산을 그렇게 한다.


인생의 장부책을 이야기하는 구절에서 내 삶도 돌아보게 만들었다.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는 오래 그리고 깊게 기억하면서 호의, 도움, 은혜는 빨리 잊기 때문이다.

사실 은혜를 꼭 돌려주겠다는 다짐은 지키기 어렵기에 앞으로는 상처라도 빨리 잊겠다고 다짐해 본다.


쓰러지지 못한 대신 어머니가 해야 할 일은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극대화하는 것이었다. 소소한 불행과 대항하여 싸우는 일보다 거대한 불행 앞에서 무릎을 꿇는 일이 훨씬 견디기 쉽다는 것을 어머니는 이미 체득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생애에 되풀이 나타나는 불행들은 모두 그런 방식으로 어머니에게 극복되었다.


주인공 안진진을 중심으로 그녀의 어머니와 이모의 인생이 세세하게 서술된다. 특히 어머니에게 닥친 인생이 안쓰러우면서도 그녀가 억척스럽게 대처해 가는 모습에 동정을 하긴 어려웠다. 먼저 불행을 극대화해 버려 독자에게 안타까움을 느낄 틈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 또한 불행을 극복하는 방법이라면 그녀는 누구보다 불행에 강한 자인 것은 분명했다.



나영규와 만나면 현실이 있고, 김장우와 같이 있으면 몽상이 있었다. 사랑이라는 몽상 속에는 현실을 버리고 달아나고 싶은 아련한 유혹이 담겨있다. 끝까지 달려가고 싶은 무엇, 부딪쳐 깨지더라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무엇, 그렇게 죽어버려도 좋다고 생각하는 장렬한 무엇. 그 무엇으로 나를 데려가려고 하는 힘의 사랑이라면, 선운사 가는 길에서 나는 처음으로 사랑의 손을 잡았다.


연애와 사랑은 혼자서 가능한 게 아니기에 늘 어렵기만 하다.

나에게 있어 딜레마는 [자기 주관 있고 재밌는 사람 VS 잘 맞춰주는 다정한 사람]에서 항상 부딪힌다.

전자는 재미라는 장점과 고집이라는 단점을 가졌고 후자는 다정이라는 장점과 무매력이라는 단점을 가졌다.

나영규와 김장우라는 남성들을 비교하자면 [현실 VS 이상]  [낭만이 없는 자 VS 현실감각이 없는 자]로 이분화할 수 있다.

그 어느 누구도 쉽사리 선택하기 힘들기에 안진진의 결정이 기다려졌다.



어쩌면 나는 이모의 넘쳐나는 낭만에의 동경을 은근히 비난하는 쪽을 더 쉽게 선택하는 부류의 인간일지도 모른다. 이모부 같은 사람을 비난하는 것보다는 이모의 낭만성을 나무라는 것이 내게는 훨씬 쉽다. 그러나 내 어머니보다 이모를 더 사랑하는 이유도 바로 그 낭만성에 있음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사랑을 시작했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미워하게 된다는, 인간의 존재의 한없는 모순.


낭만을 꿈꾸는 이모를 비난하면서 사랑하는 모순.

이모부보단 쉽게 미워하면서 엄마보단 쉽게 사랑해 버리는 모순.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모순은 비밀이다. 나를 지키기 위해 이 모순을 비밀로 두겠다.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하게 보였던 이모의 삶이 스스로에겐 한없는 불행이었다면,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들에게 불행하게 비쳤던 어머니의 삶이 이모에게는 행복이었다면, 남은 것은 어떤 종류의 불행과 행복을 택할 것인지 그것을 결정하는 문제뿐이었다.

나는 내게 없었던 것을 선택한 것이었다. 이전에도 없었고, 김장우와 결혼하면 앞으로도 없을 것이 분명한 그것, 그것을 나는 나영규에게서 구하기로 결심했다. 그것이 이모가 그토록 못 견뎌했던 '무덤 속 같은 평온'이라 해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나는 내게 없었던 것을 선택한 것이었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모든 게 불행일 수 도 없고 그렇다고 모든 게 행복일 수도 없는 우리의 삶에서 수많은 모순을 마주하지만 그렇기에 내 삶이 발전할 것이라는 주인공의 말이 인상 깊었다. 그리고  ‘원래 그래’ ‘다들 그렇대’라는 말에 흔들리지 말고 내가 직접 체험하는 것이 맞다는 확신이 들었다.

물론 너무 뜨거운 불길이라면 적당히 사리며 극한으로 기울지 않도록 잘 타협하며 살아갈 것이다.

나는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깜냥이 있는 건 아니니깐..!



일 년쯤 전, 내가 한 말을 수정한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탐구한 대로, 내가 만들어가는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고 만들어 가는 것이다.

전후만 달라졌을 뿐인데 실존주의 철학 같은 인생관이 탄생했다.


실수하지 않고 후회하지 않으려고 아등바등 노력할 바에는 체험하고 부딪혀 가며 당당히 실수하는 것이 인생을 탐구하는 것에 더 가까울 것이다.


앞으로 마음 놓고 인생의 모순 앞에서 실수해야지.

한번 한 실수는 두 번 다시 안 하고 싶지만 되풀이될 수도 있겠지.

그렇게 살아가면서 탐구하다 보면 내 삶은 발전하겠지!

이전 01화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