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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흐려지고 남은 건 기억뿐이라지만

나의 어제에 대해 말하자면

by ㄱㄷㅇ

아주 오랜만에 눈이 아닌 비가 옵니다. 이런 날에는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만 있고 싶어요. 그렇지만 동시에 무언가라도 해야만 한다는 강박이 또 곁을 맴돌아서, 기어코 카페에 와 앉았습니다.


저의 어제에 대해서 말하자면, 꽤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났습니다. 친구 한 명의 집들이를 위해서요. 저는 그 친구가 이사를 할 때 이사를 도와주었는데요. 이삿짐을 옮겨주던 사장님, 청소를 해주던 분들에게 친구 없이 집주인처럼 인사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날 친구가 이사하는 집을 보면서, 스무 살, 그러니까 아무것도 없는 학생이었던 시절부터 친구가 지냈던 집들이 생각났고, 조금씩, 그렇지만 단단하게 나아지는 친구의 삶을 보면서 조금의 질투(?)와 뿌듯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느 친구보다 고생했던 아이라 지금의 모습이 더 좋아 보이는 것 같기도 해요.


오랜만에 간 친구의 집은 훨씬 잘 꾸며져 있어서 다음에 제가 이사를 하게 된다면 꼭 인테리어를 해달라고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저는 친구들과 오랜만에 시끄러운 하루를 보냈고,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은 가볍게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친구들을 보면 저도 친구들처럼 잘 지내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가 있어요. (물론 가끔 만나야 그렇고, 자주 만나면 지칩니다.) 그래서 오는 한 주는 조금 더 힘내서 나아가보려 합니다. 독자님들도 오는 한 주 잘 지내시길 바라겠습니다. :)




비극을 맞이하던 순간이 창에 넘실거리는 건

슬픔이 잔뜩 묻은 안개가 피어있기 때문입니다

비치는 풍경은 그때를 되풀이하고

옅어졌다고 생각했던 상처가 쓴 기억을 일으켜요

어떻게든 나아가려고 하는 나에게 언제든지 돌아오라고 말을 걸고 있고요


나는 아직 이곳에 있는데도.


다만, 그래왔듯이 잘 살아내고 있습니다

언제 무너질까 염려하는 대신

오늘 하루도 안녕했다는 인사로 잠에 들고

먼 훗날까지 기대할 수 있게 되었어요


시간은 흐려지고 남은 건 기억뿐이라지만


언젠가, 어느 날에

문득

볕이 드는 날에 당신을 생각하겠습니다


나는 잘 살아내고 있으니

당신도 잘 지내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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