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봄이 길게 느껴지는 건 어째서일까요. 지난해까지는 분명 봄의 온기를 느낄 새도 없이
여름의 열기가 느껴졌던 것 같은데, 올해는 꽤 긴 시간 동안 봄의 온기가 마음을 일렁이게 합니다.
꽃잎이 사라진 곳을 새파란 초록잎이 채우고 있어요. 저는 지금의 나뭇잎을 좋아합니다.
생기가 넘치는 잎들 사이로 햇빛이 비칠 때면 속절없이 그 사이를 바라보게 돼요.
퍽 아름답다고 생각하면서요.
지금이 지나면 금세 뜨거워질 나날을 견뎌야 함을 알기 때문인지, 더욱 소중하게 바라보곤 합니다.
연휴의 끝이던 날이었습니다. 평상시라면 집에서 가만히, 침대에 기대어 있었을 테지만
그날은 유독 날이 좋아 거리를 걷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집을 나섰어요. 잠시 전에 일했던 카페에 들렀고, 그곳에서 오랜만에 아는 얼굴들을 마주했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잠시 앉아 그곳에 풍경을 바라보았습니다.
문득, 제가 담겨있던 곳이 조금씩 낯설어지는 과정을 겪으며 어느샌가 멀어질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잠시 서운한 마음에 빠졌던 것 같기도 합니다.
반가운 사람과 짧게 이야기를 나눈 후에 광화문에 있는 교보문고로 향했습니다. 꼭 이즈음 교보문고를 갔던 기억이 있어요. 어째서인진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몇 권의 책을 구매하고 집으로 향하는데 그대로 집으로 돌아가기엔 날이 너무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무작정 걷게 되었습니다. 이쪽으로 가면 작은 공원이 나오지, 하고 걷고. 저 방향으로 가면 그 가게가 나오는데, 하고 걷고. 어떤 기억이 묻어 있는 장소를 따라 걷다 보니 종로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 행복하다고 느끼던 순간의 흔적을 찾아 떠난 짧은 여행이 된 셈입니다.
가장 찬란한 순간만을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삶의 궤도에서 발견하는 것들은 대부분 부정한 것들이라
그림자와도 같은 것을 지니는 건 스스로를 옥죄는 일이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을 순간의 존재로 인지할 것이다,라고,
인간은 망각하는 동물이기에 이 또한 퍽 쉬운 일이 될 것을 확신했다
그랬어야 했다.
몇 번의 눈이 쌓이고 녹았다
한 해의 첫눈과 끝 눈은 함께하지 않았다
해는 바뀌었고
첫눈이 끝으로
끝눈이 처음으로 돌아왔다
돌아가는 시곗바늘 같이
시곗바늘은 본연의 자리로 오는 것과 같이
그랬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