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론
"니 말듣고 투자했는데, 다 망했으니 책임져!"
"당신믿고 소송맡겼는데 결과가 이게 뭐요?"
"설명듣고 샀는데, 아무 효과가 없잖아! 이거 사기 아니야!"
"고객이 마음에 들때까지 교환해 줘야지, 이거 뭐 이래, 사장 어딨어!"
돈을 지불하는 사람, 권력을 가진 사람은 확실히 '갑'이다. 서비스라는 명목 하에 끊임없는 봉사와 헌신, 희생은 너무나 지속된다. 마케팅 차원에서 고객과의 마찰과 다툼, 충돌, 트러블은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참고 또 인내하게 된다. 아니 그렇게 해야만 한다.
하지만, 도대체 언제까지 억지같은 요구와 주장, 고집스러운 독단적인 주장을 "네에~ 고객님" 하면서 인내해야 하는 것일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참는다. 하지만, 그 부당함과 비논리성에 대해 정확한 재판을 한다면 억울함을 당한 '을'의 승리로 결론날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강자의 논리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을'의 정당한 하소연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제품에는 무상보증기간, AS기간이라는 것이 있다. 그리고, 명시적으로 언제까지 서비스한다는 것이 기록되어 있다. 그 기간이 지나고 나면, 더 이상 당신에게는 공짜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고, 그것은 정당한 것임을 인정받는다.
'을'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친절을 베푼다. 베푼다기 보다는 친절을 짜낸다. 하지만, 인내와 한계의 극에 달했을 때, 확 쏘아 부칠 것인지, 또 다시 참을 것인지는 선택의 문제이다. 지혜롭게 '갑'을 깔 수 있는 묘안이 있다면 그렇게 실행하고 싶다.
그런 일은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벌어지는 일이다. '을'은 '갑'이 될 때도 있지만, 어딘가, 어느 순간에서는 '을'이다. '을'의 '갑'에 대한 친절은 진심이 아니다. 삶의 방편일 뿐이다.
언제까지 친절해야 하는지는 인내의 길이에 의존한다. 참을 수 없다면 친절함을 중단해야 한다. 그것이 '을'의건강과 장수에 도움이 된다. 그리고 어쩌면 그런 '갑'의 못된 습관이 고쳐질 수도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