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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S Sep 07. 2024

소멸과 희망

1.6 1.7

1.6

준호는 병원에서 퇴원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의 수명 시계는 이제 거의 마지막을 향해서 가고 있었다. 그가 퇴원을 서둘러 한 이유는 마지막 정리를 위해서였다. 사람은 완벽한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도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악성 종양이 뇌 속에 생길 수 있다. 준호도 그랬다. 급성 뇌종양이 며칠새 생겨서 순식간에 그의 전두엽을 차지해 가고 있었다. 의사는 준호에게 수술을 해 볼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준호는 전두엽의 기능을 일부 상실한 불완전한 인간으로 단 하루라도 존재하는 것에 커다란 불쾌감을 느꼈다. 준호는 스케쥴러에 있는 모든 약속을 취소했다. 그에게 현재 남아 있는 시간은 6개월이었다. 그 이후는 의사도 그도 알 수가 없고 신만이 알 수가 있었다. 만약 그때 준호의 머릿속 종양이 더 자라기를 멈춘다면 또는 아무 이유 없이 크기가 작아지지 거나 사라진다면 죽지 않아도 될 것이다. 준호는 의사가 선고한 6개월이란 시간 이후에도 종양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자신의 모든 흔적을 삭제하고 회사의 모든 권한과 지분은 제이에게 넘길 것으로 유언장을 작성했다. 


급한 정리가 끝난 준호는 다소 희망적인 생각이 들었다. 일단 그는 이성을 갖고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음에 감사했다. 준호는 자신이 죽을 날짜도 지정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중증 환자로 분리되었고 중앙정부의 인구관리국은 그의 주치의를 통해 병의 정확한 상태를 반영하여 언제든지 그의 죽음을 실행할 수 있었다. 준호는 자신이 갖고 있는 유전자 해석 관련 자료와 그의 연구일지를 천천히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가 이제까지 사용한 모든 유전자 해석 노하우는 데이터화되어서 그의 회사 중앙 시스템의 유전자 해석 알고리즘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그리고 그의 회사 사람은 누구든 꺼내서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실마리를 찾을 수 없는 해석이 불가능한 유전자도 있었다. 전 세계에서 하루에도 수백 건씩 일어나는 예측 할 수 없는 여러 가지 돌연변이의 케이스였다. 준호 자신도 그런 케이스에 해당하듯이 그것은 모든 유전자 분야의 학자들의 도전 과제였다. 준호는 그가 도전하고 있던 풀리지 않는 유전자 해석 문제에 대한 지금까지의 연구결과와 자료를 남들도 볼 수 있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준호는 어릴 때부터 친구가 없었다. 조용한 성격이어서 밖에 나가서 노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혼자 방 안에서 동물을 관찰하거나 유전자 분석을 하는 취미를 갖고 있었다. 그러다 중학교 때 유전자 분석 세계대회에 나가서 입상하면서 본격적으로 회사를 만들어 일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혼자 하는 회사였다. 그러다 우연히 생명공학 기업에서 신품종 개발을 의뢰받았다. 준호는 로봇이 할 수 없는 비 프로그램화된 문제 해결 부분을 대처하는 침팬지종을 개발했다. 그때가 21살 때고 회사는 전 세계에서 주목받을 정도로 급속도로 커졌다. 아직도 여러 서비스에 특화된 종류의 침패치종을 계속 개발 중이지만 그가 아니라도 제이라면 회사를 메이저급으로 키울 것이 분명했다. 그는 그가 창업한 회사가 메이저급의 유전자 회사가 되어있다면 자신이 소멸한 뒤에도 허무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머리에 약간의 통증을 느꼈으나 약을 먹지는 않았다. 약을 먹으면 잠이 올 것이고 남은 시간 동안 그는 잠보다는 더 하고 싶은 일이 몇 가지 있었다.


준호는 그의 파일들을 남들이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잘 정리했다. 특별한 설명을 하지 않아도 파일의 이름을 보면 쉽게 어떤 정보가 들었는지 알 수 있도록 했다. 파일들을 모두 클라우드 서버로 옮겼다. 컴퓨터를 끄고 책상 서랍에서 종이와 볼펜을 꺼냈다. 그는 중요한 생각을 정리할 때는 손을 움직여서 적는 고전 적인 방법을 좋아했다. 그는 망설임 없이 그가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적었다. 혹시 그의 전두엽에 이상이 생겨서 기억이 나지 않을지도 모를 때를 미리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자정이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이미 많이 생각을 해 놓았던 일들이어서 적는데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종이를 스케줄러로 스캔해서 그의 스케줄러에 넣었다. 그리고 종이의 원본은 책상 옆의 휴지통에 아무도 볼 수 없도록 태워서 넣었다. 


“이제 좀 더 확실하게 내 계획을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아.” 준호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 올랐다. 준호는 온화하고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시간이 가는 것이 아까운지 옷장을 열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짐을 다 챙기자 집안을 한번 둘러보고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1.7

윤이는 이영의 물음에 답해야 했다. 그가 어떤 대답을 한다고 해도 이영은 쉽게 납득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대답이 어떤지에 따라서 이영은 윤이와 가까운 친구로 지낼 수 있을 것이다. “ 모든 인간의 기록들을 불러내서 실제처럼 볼 수 있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실제와는 다르죠. 저는 실제 존재했던 문화를 직접 보고 싶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어요.” 이영은 술에 취했지만 윤이를 바라보는 눈빛은 아직 날카로웠다. “제 예상이 맞군요. 처음 봤을 때부터 여기 어울리지 않는 인상이었어요. 분명히 당신 부모님은 1급 직업을 가진 사람이고 당신도 최고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1급 직업을 가진 사람이겠죠?” “과거에는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지금은 보시다시피 그냥 바텐더입니다.” 이영은 윤이의 대답에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짐작으로 말했을 뿐인데 윤이가 정말 자신과는 다른 부류의 사람이었다는데 속으로 조금 놀라고 있었다. “얼음물이라도 한잔 마셔보세요. 좀 나아질 거예요.” 윤이는 술에 취해서 거의 엎드리다 시피해서 앉아 있는 이영 앞으로 얼음물 한잔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이영은 빈속에 맥주를 마셔서 그런지 밀려오는 잠에 고개를 떨구고 졸기 시작했다. 그녀가 고개를 떨구자 처음에는 보지 못했던 목 뒤에 있는 바이오칩의 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저걸 읽을 수 만 있다면 그녀의 모든 물리적인 정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윤이에게는 지금 그럴만한 도구가 없었다. 


그때 계단 위쪽에서 쿵쿵거리면서 강 씨가 한 발씩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에이 시팔, 아이고 다리야.” 강 씨는 한 계단 내려올 때마다 무릎에서 느껴지는 통증의 크기만큼 입으로 소리를 질러댔다. 그 소리는 반은 욕이고 반은 신음이었다. 그가 하는 모든 말에는 욕이 앞뒤로 붙어 있었다. 윤이는 그의 소리가 점점 커지자 계단 쪽으로 나왔다. “금방 다녀오셨네요.” 윤이는 계단의 중간쯤에서 난간을 잡고 한 발씩 계단을 내려오는 강 씨에게 인사를 건넸다. “응, 별일 없었지?” “네. 이영 씨가 기다리고 있어요.” 강 씨는 그래도 계단을 올라갈 때보다는 한결 빨리 계단을 내려왔다. 그는 계단을 다 내려오자 숨이 차는지 크게 숨을 내쉬었다. “이영 씨는 맥주 마시다가 저기 카운터 자리에서 졸고 있어요..” 강 씨는 테이블 사이를 육중한 몸으로 비집고 지나갔다. 한쪽 다리는 거의 디디질 못하고 절뚝거리면서 걷는 모습이 테이블 위로 곧 넘어질 것 같이 위태해 보였다. 그러나 그곳은 30년 넘게 그가 지켜온 가게였다. 그는 낡은 나무 테이블 사이를 어기적 거리면서 잘 지나가고 있었다. 병원에서 강 씨가 확인받은 건 아직 몇 년은 더 살 수 있다는 거였고 그것은 자신감에 찬 어기적 거림이었다. 


“왜 남의 영업집에서 자고 있는 거야?” 강 씨의 목소리가 가게 안에서 울렸다. 이영은 뒤에서 들려오는 그의 커다란 소리에 깜짝 놀라서 졸고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오셨군요.” “넌 왜 다시 나타난 거야? 며칠 있다 온다고 하더니 6개월이나 지나서 나타나다니. 나쁜 년.” 강 씨는 육중한 몸을 이영 옆에 있는 카운터 테이블의 의자에 걸쳤다. 윤이는 강 씨와 이영을 마주 보고 카운터 안쪽에 서 있었다. “난 차가운 콜라 한 병 줘봐.” 윤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뒤돌아 서서 냉장고를 열고 차가운 콜라 병을 꺼냈다. 강 씨가 항상 버릇처럼 밖에 나갔다 오면 마시는 것이 달고 차가운 음료였다. 주로 콜라를 마셨지만 어쩔 때는 커피에 설탕을 잔뜩 넣어서 마시기도 했다. 윤이가 콜라를 따서 강 씨 앞으로 내밀었다. 강 씨는 허겁지겁 콜라 병을 받아 들고 입에 들이부었다. 그의 덩치에 비해 콜라병은 몹시 작아 보였다. 윤이는 그 모습을 보고 있었고 그 옆에 있던 이영은 조금 전에 윤이가 가져다준 얼음물 잔을 잡았다. “이영 씨, 잠시만요. 제가 다시 가져다줄게요.” 윤이는 그사이 녹은 물 잔의 얼음물을 비우고 다시 얼음과 물을 채워서 이영 앞에 가져다 놓았다. “크억, 넌 그동안 도대체 어디를 돌아다니다 온 거야? 이야기 좀 해봐.” 강 씨가 콜라를 다 비우고 이영에게 트림을 하면서 질문을 했다. “집에 갔다가 연극공연을 하고 왔어요. 아버지가 이제 마지막이라고 부탁해서 어쩔 수 없었어요.” “돈은 벌었어?” “아니요. 관객도 없고 그나마 보러 오는 사람은 구 시대를 기억하는 동네 노인들 몇몇 밖에 없어요.” 


“그럼 못 온다고 연락을 했어야지. 나는 네가 금방 올 줄 알고 얼마나 기다렸는데. 아참, 근데 술값은 내고 마신 거야?” 강 씨가 윤이를 바라보면서 눈을 치켜뜨며 물었다. “네, 제가 받았어요.” 윤이는 이영이 돈이 없어 보여서 대신 술값을 내주겠다는 생각으로 대답했다. 이영은 윤이의 대답에 어떤 말도 보태지 않았다. “여기 방은 보다시피 윤이가 쓰고 있어. 만약 머물 데가 없어서 왔으면 옆에 주클럽에 가봐. 알잖아. 주사장. 거기 요즘 돈 많이 벌었어.” 그때 이영의 얼굴에 실망감이 스쳐간 것을 윤이는 똑똑이 보았다. “저는 아무 데서나 자도 돼요. 사장님만 괜찮으시면 제방은 이영 씨에게 내드려도 될 것 같아요.” “넌 어디서 자려고? 내가 병원 갔다 온 사이에 둘이 벌써 그렇게 가까워진 거야? 암튼 난 모르겠다. 그냥 너네 둘이 알아서 해. 대신 여기서 몇 시간이라도 일해서 방 쓰는 값을 해야 할 거야. 난 그럼 좀 들어가서 쉬어야겠다. 손님 오면 불러.” 강 씨는 자리에서 몸을 천천히 일으켜서 주방 안쪽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 방은 영업시간 후에는 윤이가 거처로 쓰고 있었지만 영업시간 전에는 강 씨가 틈만 나면 누워 있는 방이었다. 강 씨가 주방뒤쪽으로 사라지자 둘만 남겨진 이영과 윤이는 서로 말이 없었다. 


사실 이영은 강사장의 가게에 다시 올 때 어떤 계획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그저 집에서 나와 생각 나는 곳이 이곳뿐이었다. 여기서 지내지 않아도 중앙정부에 요청하면 집은 무상으로 지원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영은 규칙에 통제되는 것을 싫어했다. 스무 살에 한번 무상지원 집에 살아보고 다시는 그곳에서 살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술 값은 일해서 바로 갚을게요. 그럼 또 봐요.” 이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영 씨, 오늘은 여기 있어요. 갑자기 갈 데도 없을 텐데.” “괜찮아요. 주클럽에 사장님도 잘 알거든요. 돈을 벌려면 여기보다는 주 클럽에 가야 돼요.” 이영은 윤이를 뒤로 하고 출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주클럽은 중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클럽이었다. 거기서 술과 마약이나 섹스에 중독된 사람들을 상대해 주고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많았다. 특히 주클럽은 중독자들을 상대하면서 종업원들도 같이 중독이 되기 때문에 항상 일하는 사람이 부족했다. 이영은 몇 번 사람이 부족할 때 주사장의 부탁으로 주클럽에서 일해 본 적도 있었다. 그때보다 지금은 연극을 하듯이 그곳에서 일을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이영은 술이나 마약을 하기에는 자신은 체력이 부족하지만 돈을 많이 준다면 가끔 섹스 파트너가 되는 일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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