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해본 적이 있니? 사랑이 뭔지 알기라도 하니?" 누가 이렇게 묻는다면 나는 자신 있게 그렇다고 말할 수 없다. 사랑이 무엇인지(아니, 더 정확히는 어떤 감정이 사랑이라 칭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진심을 다한 사랑이라 할 수 있는지, 부끄러운 일이지만 여전히 잘 모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기울였던 순간이 있었다 해도, 그때 내가 정말 그 사람을 '사랑'했는지 ㅡ 자신이 없다.
사랑은 무엇일까? 그저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일까, 아니면 말로는 닿을 수 없는 어떤 깊이이고 넓이인가. 사랑은 설명하기 어렵고, 좋아하는 감정 또는 진전된 호감과 그 경계가 모호하다. 가까이 있을 때는 분명해 보이지만, 돌아서면 안개처럼 희미하게 흩어져 버리는 것이 사랑이라는 감정이다.
사랑은 둘만이 나누는 아주 조용한 언어 같다. 그 언어는 함께한 기억 위에, 말보다 더 많은 침묵 위에 차곡차곡 쌓인다. 그래서 두 사람의 관계를 벗어나면, 그 감정은 더 이상 똑같은 무게로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사랑의 한가운데에 있을 때조차, 서로의 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한다. 그래서 언어로 늘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느냐고. 나를 정말 사랑하느냐고.
헤어지면 문득 그 사람이 보고 싶고, 떨어져 있으면 함께 있고 싶고,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일렁이는 것. 하루의 시작과 끝에 그 사람을 떠올리는 것. 불쑥 찾아오는 그리움 속에서 비로소 알게 되는 것. 사랑은, 그 사람이 없을 때 비로소 뚜렷해진다.
사랑은 상대의 부재를 통해, 그리고 더 많은 시간의 축적을 통해 마음 깊은 곳에서 확인되는 애틋한 감정이다. 즉, 사랑의 감정은 부재를 통해 증명되는 것이다. 하여, 부재를 전제로 하는 '그리움' 역시 사랑의 또 다른 형태이고, 그 부재의 시간들을 지배하는 그 그리움을 통해 상대를 향한 마음이 더 깊어진다.
상대와 떨어져 있는 동안, 그(녀)의 일상이 궁금하고, 내 생각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진다. 만나는 것보다 오히려 이런 순간들이 나를 그녀에게 더 붙잡아 두는 것이다. 사랑이 깊어지는 건, 역설적이게도 이런 순간들이다. 사랑은 홀로 남겨졌을 때, (그것이 일시적인 떨어짐이든, 영원한 이별이든), 더 진실해진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에서 주인공 뫼르소가 아랍인을 살해한 혐의로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비로소 여자친구 마리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확인했듯이. 그렇게, 우리는 사랑하는 이가 떠난 뒤에야 비로소 사랑이 어떤 감정인지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