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음악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영수 Nov 07. 2022

우리의 서글픈 한계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 숲의 정령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단편 <숲의 정령>에는 떠난 사람에 대한 그리운 심정을 이렇게 표현한다.


“너도 애타게 그리워한다는 거 알아. 

하지만 네 애달픔은 내 마음에 비하면, 

태풍같이 휘몰아치는 격정적인 나의 비통함에 비하면, 

잠자는 사람의 고른 숨결에 불과할걸.”

너무 그리워서 애달픔을 넘어 비통함까지 느꼈다니, 그때 비통함은 나라는 존재를 총체적으로 흔드는 괴로움이었을 것이다. 그리운 마음을 이 글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제대로 그리워하기 위해선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기억해야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기억도 하나둘씩 희미해진다. 기억에서 사라졌다면 그리움 역시 서투를 수밖에. 그 시절의 나의 첫사랑이 서툴렀던 것처럼. 세월이 주는 아쉬움은 바로 그것이다. 점점 누군가를 잊어버리는 것, 누군가에게 잊힌 존재가 되는 것이다. 잃는 것보다 더 힘든 건 잊히는 것이다. 

지난 주말, 오랜만에 집 근처를 거닐며 음악을 들었다. 그날 들었던 곡은 딜런 콘리크(Dylan Conrique)의 'Birthday Cake' 그녀는 이제는 세상에 없는 친구의 어머니에 관한 추억을 이 곡에 담았다고 한다. 그래서 영상에서 그녀가 눈물을 비췄는지도. 


그녀는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2004년생이니 아직 18세에 불과하지만, 앞날이 기대되는 아티스트다. 


나는 첫 번째 영상보다는 두 번째 영상이 더 좋았다. 라이브다 보니 보컬이 다소 흔들렸지만, 그게 오히려 더 자연스러웠다. 그녀가 직접 연주하는 피아노와 중간중간 등장하는 바이올린이 뒷받침해 주는 배경음도 좋았다. 무더운 여름, 새로 열린 광화문광장에서 들었던 호소력 짙은 그녀의 목소리가 가슴에 오래 남았다. 

"나는 그렇게 잃어버리는 데 천재였다. 중요한 점은, 잃어버리더라도 무엇을 언제 어떻게 잃어버렸는지는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제대로 그리워할 수 있으니까. 그리하여 나는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데에도 그렇듯 서툴렀는지 모르겠다. 나는 첫사랑인 연우를 그냥 그 자리에 놔두었어야 했다.


그리움이란 어차피 약간의 억울함을 품고 있는 감정이므로, 마치 그리움은 키 작은 미남과 같아서 우리는 그 서글픈 한계를 따뜻이 인정해 줘야 하는 것이다."


<이지민 _ 청춘극한기>

매거진의 이전글 잠 못 이루는 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