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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Feb 28. 2023

2월을 쿨하게 보내주고 싶다

조성진 / The Handel Project

2월은 애매한 달이다. 다른 달과 달리 30일도 채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겨울과 봄 사이에 끼어 있어 굳이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그냥 무시하고 지나쳐도 괜찮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을 준다. 그러다 보니 '특별히 뭘 한 것도 없는데 벌써 한 달이 다 갔네' 하는 심드렁한 반응부터 나온다.


그런 2월도 오늘이 마지막 날이다. 새해 1월에 세웠던 계획이 헝클어져도 다시 한번 해봐야지, 하는 마음이 맞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나고 말았다. 3월은 왠지 느낌부터 다르다. 뭔가 2월보다는 빡빡할 것 같다. 학생들은 개학이나 개강을 하는 달이니 좋았던 시절은 다 지나갔고, 어른들 역시 뭔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마지노선이 온 것 같아 마음이 조급해진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며칠 전부터 '벌써 2월 말이라니?' 하는 말을 되뇌고 있다. 그 말인즉슨, 삶이 덧없이 흘러가는 것이 안타깝다는, 아니 불편하다는 말이다. 단순히 시간이 흘러가는 것만을 탓하는 것이 아니다.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낸 나 자신에 대한 불편한 심정을 말하고 싶은 거다. 세월이 가는 것도, 그것도 덧없이 흘러가는 것도 모르고 사는 사람들보다야 낫겠지만, 그렇다고 나에 대한 씁쓸하고 불편한 마음까지 지워지지는 않는다.




새해에 세웠던 계획은 나름 거창했지만 쳇바퀴처럼 도는 바쁜 일상 속에서 점점 희미해져 가고, 어느 순간 현실과 타협하면서 적당히 살아가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이번만이 아니었다. 바쁘다는 이유로 모든 것이 용납되었던 때도 있었지만 변명이고 어설픈 위안에 불과했다.


바쁘게 살기는 했지만 '무엇 때문에 바쁜지, 무엇을 위해서 바빠야 했는지' 나는 정확한 답을 찾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을 따라가느라 발걸음은 늘 분주했고, 끊임없이 일어나는 심란한 일들로 일상은 혼란스러웠으며, 여유를 잃어버린 채 하루하루를 버티기에 급급한 날들이었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쁨도 사라지고 감각마저도 무뎌져 나를 나로 받아들이지 못한 순간도 비일비재했다. '아,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든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젊음은 그렇게 소진되고 어느덧 지난 세월만큼 나이가 들었지만 딱히 달라진 게 없다. 새해가 지난 지 며칠 됐다고 너무 심각한 거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3월이 온다고 별로 달라질 것 같지 않다 보니 그 심각함도 심각함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곧 3월, 새달이 시작되면 다시 마음을 다잡고 새롭게 출발하겠다고 각오를 다지는 것은, 혹시 그러면 2월보다는 더 나아질지 모른다는 희망 섞인 기대 때문이다. 새해, 새달, 새로운 하루... 이렇게 '새~'를 붙이는 이유는 그렇게 해서라도 끊임없이 새로워지기 위함이다. 나처럼 말이다.


'잘 가기를. 2023년 2월아, 수고했다. 다시는 오지 않을 너, 2월이여!!' 이렇게 2월의 마지막 날을 쿨하게 보내고 3월을 맞고 싶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래도 한 달 잘 보냈다고, 다음 달에는 좀 더 나은 모습일 거라고 자기 암시를 하다 보면 혹시 아는가. 기분이 한결 나아질지.







* 조성진 ㅡ The Handel Project, IV. Air & 5 Variations "The Harmonious Blacksm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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