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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dia Youn Feb 25. 2022

당신은 다른 누군가에게 붓을 맡겼을까

누군가에게 물들어 간다는 것

 누군가에게 물들어 간다는 건 참 무섭단 말이야. 게다가 나는 쉽게 물드는 사람이거든. 누군가를 좋아하고 함께하게 되면 금방 물들고 말아. 그저 예쁘게 물들었으면 하는 거지.


 당신은 참 멋진 사람이야. 당신과 함께이고 싶은 나는 열심히 당신의 멋짐에 물들어가려고 노력했어. 멋진 당신에게 나 역시 멋져 보이고 싶었거든. 당신은 내가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나를 떠났지만 나는 아직도 당신에게 참 감사해. 멋진 당신과 함께일 수 있어서 나도 조금은 더 멋있어진 것 같네.



 

 난 아직도 가끔씩 당신과 당신을 만나던 때의 나를 떠올리곤 해. 길가다 우연히 마주한 카페에 왠지 발걸음이 옮겨져 문을 열고 들어가니 생각보다 훨씬 따뜻한 분위기에 오늘은 운이 좋다고 느꼈을 때가 있었어. 실내에 감도는 커피 향이 너무 좋았는데 커피 취향이 확고한 내 입맛에까지 커피가 참 맛있었던 날. 당신을 생각하면 그날이 떠올라. 느닷없이 만나게 된 멋지고도 수수하고 겸손한 당신.


 당신을 만나던 때의 나는 정말 열심히 살았지만 외로웠었어. 바쁜 당신에게 연락을 재촉하기도 싫었고 혼자 온갖 생각을 하면서도 당신에게 굳이 불평을 하고 싶지도 않았거든. 그저 외로워할 시간이 필요해서 당신을 만나게 된 걸까? 가끔은 둘일 때가 혼자일 때보다 더 외롭고 불완전할 때가 있잖아. 혼자일 때는 내가 불완전한지 눈치채기가 힘들어. 내 행복만 생각하면서 살면 되거든. 물론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의지만 있다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웬만한 건 다 하면서 살 수 있잖아. 근데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순간 온전한 타인과 완전히 하나가 되려는 갖은 시도를 하면서 내가 불완전한 사람이라는 걸 눈치채게 돼. 난 나 혼자였을 때보다 당신과 함께일 때 더 외로웠어.


 슬프지만 정말 그랬는걸. 온종일 당신 생각을 하고 연락을 기다리기가 지쳐서 혼자 훌쩍 여행을 떠난 적도 있어. 당신과 함께이면서도 외로웠지만 더 격렬히 혼자이고 싶었던 걸까. 평소에는 잘 가지도 않았던 나 홀로 여행이라니 나도 참 복잡한 마음이었나 봐. 그때의 난 당신을 기다리면서 당신과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동분서주 이것저것을 하려고 노력했었어. 운동도 다니고 책도 더 열심히 읽고 새로운 취미도 가지려고 했었지. 혼자서도 하던 것들이긴 해. 혼자였을 때는 좀 더 느슨하지만 온전히 나를 위했다면, 그때는 한시바삐 당신을 위한 내가 되기 위함이었달까. 하루하루가 뿌듯하고 알찼지만 마음 한 구석에선 항상 눈물을 흘리고 있었어. 가끔씩 난데없이 진짜 눈물이 흐르기도 했고.



 

 그땐 어딘가에 기도도  많이 했었지. 내가 사랑하는 만큼 그도 나를 사랑하게  주세요. 사랑이 노력으로 되는 거였다면 우리는 헤어지지 않았어야 . 나는 끝까지 당신에게 최선을  했어. 마지막까지  진심을 말하면서    당신을 붙잡았고 당신은 대답이 없었지. 말할까 말까  때는 하지 말라는 말이 있잖아. 나는 그때 당신을 붙잡았던  행동에 대해 수십 번은 곱씹어봤어. 당신을 붙잡았던 행동이 옳은 거였을까. 이미 모든 마음과 생각을 정리한 당신에게  진심 따위는 아무 상관도 없는  아니었을까. 빛바랜 관계에 억지로 색칠을 해봤자 무의미한 붓질만 남는  아니었을까.


 최근에 당신 소식을 들었어. 당신이 하던 일에서 엄청나게 좋은 성과를 거뒀다는 소식. 나와 만났을 때도 항상 일 때문에 바쁘더니 이제서라도 좋은 소식을 듣게 되니 참 기뻐. 당신 곁에서 함께 행복한 순간을 나눌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우리 인연은 거기까지가 아닌가 봐. 다른 누군가의 곁에서라도 항상 행복했으면 해. 당신은 내가 더 좋은 색으로 물들도록 붓을 쥐어준 사람이니까 어디서든 좋은 사람을 만나겠지.


 요즘 나는 당신과 정반대의 사람을 만나고 있어. 그래서 요즘 내 모습은 남들이 보기엔 당신과 만나던 전과 같지 않나 봐. 다른 색의 물이 들었나. 난 아직도 칠해 보고 싶은 색들이 많거든. 당신과의 만남이 우아하고 아름답지만 어딘가 외로워 보이는 수채화 풍경이었다면 이번엔 시계가 흐르는 달리의 그림 속이야. 당신은 당신만의 수채화를 함께 그려줄 다른 누군가에게 붓을 맡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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