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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dia Youn Feb 25. 2022

나는 방수가 안되니 눈물에 빠뜨리지 말아 줘

난 방수도 안 되는 주제에 스스로 눈물에 기어 들어간 거겠지

 당신은 도대체 알 수 없는 사람이구나. 오늘도 당신을 생각하면 머리가 아파와. 언젠가부터 시작된 두통은 아마도 당신을 만난 이후에 심해진 것 같아.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슬퍼서 울었던 날을 기억해? 당신과의 길지 않은 만남 동안 나는 몇 번을 슬퍼서 울었어. 어느 날은 심장이 너무 아픈 느낌이 들어서 가슴께에 샤워기로 뜨거운 물을 틀고 오래오래 서있던 적도 있어.



 

 당신과의 관계는 내가 어디까지 모든 걸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인지 알아보는 이해하기 힘든 그림 같아. 시계가 거꾸로 흐르고 지구에서 본 적 없었던 생명체가 지나다니고 인간들은 모두 흰 덮개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그림. 내 모든 가치관을 내려놓고 새로 마주하는 엉뚱한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는 당혹스러움. 그 괴랄함이 몹시 끌렸다면 난 방수도 안 되는 주제에 스스로 눈물에 기어 들어간 거겠지.


 가끔씩 나와 소름이 돋을 정도로 비슷한 당신의 모습들이 느껴져. 이해하기 힘든 당신은 역시 이해하기 힘든 나 자신을 닮아 이리도 어려운 걸까. 내가 누구에게도 꺼내지 않았던 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당신이 정확히 화두로 잡는 순간 나는 느꼈어. 당신은 나와 같은 사람이구나. 나를 만나왔던 사람들은 나에게 이런 감정을 가졌겠구나.




  당신과 함께하면 내가 지구 밖으로 벗어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당신은 항상 눈앞에 닥친 현실이나 우리가 볼 수 있는 것들보다는 이 차원을 넘어선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거든. 어쩌면 지구와 이 세계를 벗어나 보고 싶다는 욕망이 나를 당신에게로 이끈 걸지도. 나는 꿈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이야. 현실이 아무리 괴로워도 꿈을 꿀 수 있다면 괴로움이 뿌예지기도 하거든. 당신과는 현실의 모든 것을 뭉개고 지구 밖으로 붕 떠오를 수 있어.


 이 세상의 많은 것들이 나를 지구로 땅으로 끌어내리려 내 발목에 바위를 달아. 그 모든 것에 점점 지쳐갈 때 내 발목의 바위를 부수고 나를 우주선에 태우는 당신이 참 매력적이었어. 당신과 이야기할 때면 현실의 사사로운 문제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 보여.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볼 수 있다면 보이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거든.



 

 그래, 당신은 아무래도 지구 스타일이 아닌가 봐. 그냥 보통의 사람들처럼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건 당신에게 너무 따분한 거니? 당신은 언제든 지루한 지구를 떠나 훌쩍 다른 세계로 떠날 것만 같아. 아마도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당신과 조금은 비슷해 보이는 내가 재밌어 보여서 우주선을 빌려준 거겠지. 나는 내 발목의 바위가 무거워질 때마다 당신을 찾고 있어. 당신은 당신의 존재가 지구에서 너무 가벼워져 사라질까 봐 나를 찾고 있는 거겠지.


 당신은 나를 평생 잊지 못할 거라고 하더라. 아마도 내가 순순히 당신을 따라 이곳저곳을 함께 떠다녔기 때문이겠지? 나는 우주가 보고 싶어 당신과 함께했지만 당신과 함께하는 동안 지구를 바라보면서 괴로웠어. 발목의 바위가 짐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그 바위 덕분에 중력을 거스르지 않고 살 수 있었던 걸까. 반복되는 무중력에 현기증이 나려 해.


 나는 방수가 안되니 눈물에 빠뜨리지 말아 줘. 더 이상 어떤 작은 바위도 달려고 하지 않을게. 언제 이곳을 떠난다 해도 이해할게. 우는 것도 지겨웠을 때, 내가 도저히 당신에게는 가벼운 바위도 달 수 없음을 느꼈을 때부터 당신과의 관계에 대한 거의 모든 욕심을 버렸거든. 그저 당신이 나와 마지막 비행을 할 때 이번이 마지막이라고는 말해주기를 바랄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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