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길에 도착해서 깜짝 놀랐다. 거대한 기차역 건물 위에 '延吉'이라는 중국 이름 옆에 한글로 '연길'이라고 떡하니 붙어 있는 것이 아닌가! 연길은 중국의 55개 소수민족 중 하나이며, 일제 시대에 조선에서 건너간 한민족이 살고 있는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주도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일대에서는 '한국'이라는 단어보다 '조선'이라는 단어를 더 많이 들었다.
"조선에서 왔소?"
"조선 사람이오?"
"조선말로 하시오."
자꾸 듣다 보니 근대로 시간 이동한 느낌...
중국어와 한글이 병용된 간판이 늘어선 풍경과 한국말을 쓰는 상점 주인들, 하물며 버스 기사까지 한국말로 어디 가냐고 물어봐서 오히려 내 쪽에서 당황했다. 아무리 조선족이라도 중국에 사니까 당연히 중국어부터 나올 줄 알았는데... 어쨌든 그 덕분에 윤동주 시인의 모교인 대성중학(현 용정중학)까지 헤매지 않고 찾아갈 수 있었다.
대성중학 안으로 들어가면 오른쪽에 윤동주 기념관이 나온다. 입구에는 '서시'가 새겨진 그의 시비가 있는데, 엊저녁 숙소에서 잠들기 전의 설레는 감정을 서시에서 인용하여 일기장에 적은 문구가 생각났다.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나는 여기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얻어 가게 될까?
'대성중학 옛 터'라는 팻말을 보며 안으로 들어가니 이 홀이 꼭 타임머신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전시실에는 용정이란 지명의 유래와 용정중학교의 역사, 그리고 이 일대의 독립운동에 대한 설명이 본격적으로 나오는데, 그중 가장 안타까우면서도 통쾌했던 건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처단 이유서'였다.
내가 이토를 죽인 이유는 이러하다.
한국의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요,
고종을 폐위시킨 죄요,
을사5조약과 정미7조약을 강제로 체결한 죄요,
무고한 한국인들을 학살한 죄요,
정권을 강제로 빼앗은 죄요,
철도, 광산, 산림, 천택을 강제로 빼앗은 죄요,
제일은행권 지폐를 강제로 사용한 죄요,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킨 죄요,
민족교육을 방해한 죄요,
한국인들의 외국 유학을 금지시킨 죄요,
교과서를 압수하여 불태워 버린 죄요,
한국인이 일본인의 보호를 받고자 한다고 세계에 거짓말을 퍼뜨린 죄요,
현재 한국과 일본 사이에 경쟁이 쉬지 않고 살육이 끊이지 않는데 태평 무사한 것처럼 위로 천황을 속인 죄요,
대륙침략으로 동양 평화를 깨뜨린 죄요,
일본 천황의 아버지 태황제를 죽인 죄이다.
- <안중근 자서전> 중
이 얼마나 통쾌한 외침인가! 허나 이것이 또한 가슴 아픈 이유는 대련에서 여순감옥을 가보지 못한 까닭이라...
마지막 즈음에 오늘의 주인공 윤동주 시인이 등장했다. 윗줄 오른쪽의 까까머리임에도 불구하고 시인에 어울리는 준수한 외모... 예전부터 생각했지만 윤 시인님은 토이의 유희열을 닮은 것도 같았다. 그의 시는 아름다운 시어로 가득하지만, 그 안에는 펜으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저항 의지를 나타내고 있어 만해 한용운의 시와 꽤 비슷한 느낌을 준다. 연배로는 한용운이 40년 위인데, 시가 발표된 시기는 불과 10년 정도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 그에 대한 팬심은 2016년 개봉된 영화 <동주>로 이어져 강하늘의 '자화상'을 무한 반복해서 듣게 했고, 그로부터 1년 후인 2017년 가을 <팬텀싱어 시즌2>에 나온 고우림의 '별 헤는 밤'에서 또 한 번 타올랐다. 음악이라는 것은 정말 세상의 모든 것이 응축된 에너지여서 가만히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덧붙이자면, 사진의 아랫줄 가운데 있는 송몽규라는 인물도 윤동주와 함께 문학 소년으로서 굵직한 활동을 했었다. 다만 그는 윤 시인과 달리 펜뿐만 아니라 몸으로 직접 부딪혀가며 독립운동을 했던 게 차이라면 차이일까. 언뜻 보면 윤 시인보다 더 순하게 보이는 외모인데. 영화 <동주>에서 송몽규 역을 맡은 박정민 배우가 연기를 잘하긴 했지만, 역시 인물은 원조를 따라가지 못하는 아쉬움이 든다.
윤동주 기념관의 끝은 이상설 기념관으로 이어진다. 헤이그 특사 중 1인이었던 이상설의 기념관이 여기 지어진 까닭은 이곳 용정에 민족학교의 시초인 서전서숙(瑞甸書塾)을 설립했기 때문이다. 이를 시작으로 명동학교, 정동학교, 창동학교 등 여러 교육 기관이 생겨났고, 윤동주가 나온 대성중학도 그 민족교육 운동의 일부로 탄생된 곳이다.
대성중학교를 나와 문화로를 따라 걷다가 이상설 선생이 설립한 서전서숙(현 용정실험소학)을 발견했다. 지금은 용정실험소학으로 이름이 변경되었고, 운동장 한쪽에 서전서숙 터를 기념한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학교 맞은편에는 이렇게 근대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극장이 있고, 여기서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용정 지명의 기원이 되는 용두레 우물이 나온다. 1880년에 조선인이 발견하여 우물가에 '용두레'라 새긴 것에서 유래되었는데, 그 수원이 되는 해란강이 이 마을을 지나간다.
용정 시내에서 택시로 이동한 일송정(一松亭)은 비암산 꼭대기에 위치해 있었다. 이 정자는 일제의 수탈을 피해 간도로 이주한 선조들이 향수를 달래고 항일운동을 하며 쉬었던 곳이다. 그 앞에는 이름처럼 소나무가 한 그루 심겨 있고, 정자 안에는 말 달리는 선구자 그림도 그려져 있으며, 일송정에서 내려다본 옛 간도 땅에는 한 줄기 해란강이 흐르고 있었다.
선조들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희생하고 간 이 땅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쓰며 매일 주어지는 하루하루를 너무도 당연하게 살아가는 우리. 못 먹고 못 배운 부모 세대와 달리 배울 수 있는 마음껏 배우고, 할 수 있는 마음껏 누리며 살아왔던 내 지난날을 돌아본다. 자유라는 이름 아래 나에게 다가왔던 모든 환경들을 나는 과연 올바르게 대했던가? 나도 모르게 소중한 인연이나 환경을 놓친 적은 없었는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그 환경이 누군가에게는 누릴 수 없는 사치는 아니었을까? 당신들이 희생하신 젊음을 오늘의 우리는 과연 최선을 다해 살고 있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