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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정 Oct 30. 2022

[사회②] 누구를 위한 공정인가?

능력주의의 폭정에서 벗어나기

 Core-MZ 세대(1990-2003년 출생자)는 공정을 떼어놓고 결코 설명할 수 없다. 공정은 한국 사회에서 근 5년간 가장 민감하고 뜨거운 주제이기 때문이다. 2021년 <경향신문> 신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 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로 공정(40.7%)을 꼽은 시민이 가장 많았다. 이외에도 인천국제공항공사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공공 의대 설립에 대한 의대생들의 격한 반발, BTS 병역 특혜 논란 등은 공정 담론이 현 시기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이슈임을 드러낸다.


출처 : 연합뉴스

그러나 지금의 공정은 '허울뿐인 공정'에 불과하다. 불공정 논란에 불을 붙이는 사람들은 해당 사안에서 기득권자이기 때문이다. 인국공 사태에서는 정규직인 사람들, 공공 의대 설립 논쟁에서는 의사가 해당된다. ‘불공정하다’ 라는 프레임이 씌워지는 순간, 세부적인 논의는 이뤄지지 못하며 기존의 불평등한 관계는 정당하다고 여겨진다. 또한 사람들의 감정적 반응을 쉽게 이끌어내기 때문에 기득권층과 다른 입장에 있는 이들은 아예 논의에 참여할 자격조차도 주어지지 않는다. 이를 두고 과연 열린 담론이라고 할 수 있을까?[1]


능력주의의 폭정


불공정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수치화된 성적으로 평가하는 절차적 투명성’을 내세운다. 이와 관련하여 박용호 인천대 교수는 자신의 경험담을 전했다. “젊은 직원들은 인사가 완벽하게 투명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합니다. 가령 최고경영자에게 3배수로 승진 후보자를 올릴 경우, 3배수를 뽑는 과정은 물론이고 최종 승진자도 근속연수·근무평가 등 수치화된 점수가 가장 높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고경영자가 경영철학 등 주관적 요소를 반영해 2·3 순위자를 승진시키는 건 공정하지 못하다고 여기는 겁니다”[2] 이처럼 Core-MZ 세대는 꼭 대학 입시나 공채가 아니더라도, 성적으로 줄 세우기가 사회 전반적인 부분에 적용되어야 한다고 본다.


열심히 일하면 집도 사고 차도 살 수 있던 과거와 지금은 현저히 다르다. ‘부모보다 가난한 첫 세대’인 Core-MZ 세대는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 정유라 부정입학과 조민 입시비리는 능력주의에 불을 붙였다. 그들과 달리 부모 찬스도, 경제력도 없기 때문에 시험으로 공정하게 평가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시험은 한 사람의 자질을 온전히 평가하지 못한다. 또한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공정한 경쟁은 불가능하다. 강남 8 학군에서 어렸을 때부터 개인 과외를 받은 아이와, 농어촌 아이를 두고 같은 조건에서 시작했다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능력주의가 부의 대물림을 공고히 만드는 건 아닐까?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들기


공정하다는 착각’의 저자 마이클 센델은 능력의 폭정과 맞서는 해결책으로 제비뽑기를 제안한다. 일정 관문을 넘는 조건으로만 능력을 보고, 나머지는 운이 결정토록 하는 것이다. 정상에 오른 사람은 오직 자신의 힘만으로 가 아니라 운이 좋았던 것이며, 탈락한 사람이나 자신이나 엇비슷한 가정환경과 천부적 재능, 그리고 도덕적 자격을 갖추고 있음을 분명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3] 하지만 그의 주장은 능력주의를 본질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 오히려 억울함만 가중시킬 뿐이다.


우리는 뚜렷한 불평등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이를 개선하기 위한 구조적 개입이나 경제적 재분배는 그다지 요구하지 않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소의 ‘사회통합 실태 및 국민인식 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의 소득 격차는 너무 크다’는 문항에 동의하는 비율이 매년 조금씩 증가해 2019년에는 86.5%에 이르렀다. 하지만 ‘소득 격차 줄이는 것은 정부의 책임’이라는 문항에 대해서는 2017년에 65%가 동의하다가 2019년에는 57%까지 줄어들었다. 불평등의 문제를 국가가 아닌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이다.


‘개인적 성취’에는 개인의 노력과 재능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구조적 기여가 분명히 존재한다. 부의 재분배와 복지 시스템만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할 수 있다. 위의 그림은 미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밈이다. 우리나라의 ‘공정’은 맨 왼쪽이다. 키가 다른데도 높이가 같은 디딤돌을 줘서, 결국 키가 작은 사람은 경기를 보지 못한다. 그렇다면 키가 작은 사람에게 높은 디딤돌을 주면 될까? 핵심은 장벽 자체를 없애는 것이다. 장벽이 없는 사회, 따라서 개인의 핸디캡이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논의하고 정책으로 실현해야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4]


작년 도쿄 올림픽에서 양궁이 9연패를 달성하며 비리 없이 공정한 경쟁으로 선수를 뽑은 양궁협회가 주목을 받았다. 양궁협회가 실력 있는 선수를 뽑을 수 있던 가장 큰 이유는 현대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이었다. 현대의 지원은 국가의 복지 시스템과 같다. 핸디캡이 가진 사람이 필사적으로 노력해서 올라오도록 하는 게 아니라, 사회가 그들을 붙잡아 올려주는 것. 모두가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사회적 책임을 다 하는 것. 이젠 기울어진 저울에 있는 사람에게 분노를 할 때가 아니라, 국가에 당당하게 요구를 해야 할 시점이다. 이러한 환경이 구축되어야지만 비로소 공정은 닫힌 담론이 아닌, 평등한 사회를 위한 실질적인 원리가 될 수 있다.




<각주>

[1] 김정희원 『공정 이후의 세계』, 창비 2022

[2] 『‘평등’ 사라진 ‘공정과 정의’, 전통 진보를 할퀴다』, 『한겨레』 2021.02.08

[3] 마이클 센델 『공정하다는 착각』 190쪽, 와이즈베리 2020

[4] 『‘공정’은 어떻게 그들의 무기가 되었나』, 『시사IN』 2020.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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