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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선 Sep 03. 2020

운다고 달라질 거 하나도 없어.


어려서부터 경진은 눈물이 나기도 전에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아빠가 술을 마시고 온 저녁이면, 소리 지르며 싸우는 엄마 아빠가 무서워.

그러다가도 결국은, 힘없이 쓰러지던 아빠와 우는 엄마가 불쌍해 눈물이 나오려 할 때.


어린아이가 한밤중, 엄마 아빠의 싸움을 보며 할 일이라곤 우는 일 밖에 없을 것을.

그래서 눈물이 나올라 치면 옆에서 한마디 없이 지켜보던 할머니에게서,

소란스러운 소리를 듣고 말리던 동네 아줌마 아저씨들에게서 경진이 항상 듣곤 하던 말이었다.

어른들은 어떻게 그렇게들 잘 아는지, 참다 참다 정말 눈물이 밖으로 나오려 할 때, 그럴 때,

들리던...작고... 낮은 목소리들.



목구멍까지 차올랐던 눈물은 어딜 보아도 위로받지 못할 걸 알고는, 눈치 있게 금방 아래로 식어져 버렸다.

한 번 꿀꺽, 침을 삼키듯 눈물을 삼킨다.

자꾸 올라오려는 눈물을 막느라 경진은 몇 번을 삼켜야 했다.

목이 타오르는 듯 뜨끔하고 한동안은 목구멍이 얼얼할 정도다. 경진의 어린 목구멍이 감당하기에는 제법 큰 울음들이었나 보다.

울지도 못하는 경진은 그렇다고 엄마 아빠가 싸우는, 그러다 우는 어른의 모습을, 동그란 눈을 뜨고 가만히  볼 용기는 없었다.

사실 경진에겐 싸우는 모습보다 엄마 아빠의 우는 모습이 더 슬펐고 무서웠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지... 경진은 그들을 위로해 줄 수는 없겠구나 하는 단념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다가가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웃어준다고 해서 달아날 눈물이 아닌 걸 알았다.


계속 엄마 아빠를 볼 수는 없어 경진은 주위를 둘러본다. 동네 사람들은 한 마디씩들을 하느라 여기저기 시끄럽고, 아까부터 남동생은 동네가 떠나가라 울고 있다.

울지도 못하고 아무 말도 못 하는 사람은 경진 말고는 없었다. 금세 또 서러워 졌지만 목구멍이 또 아플까 울고 싶지 않아, 괜히 동생을 한 번 꼬집어 본다.

동생은 더 크게 울기 시작하고 할머니는 그런 동생이 가여운지 어깨를 감싸며, 오늘은 할머니 방에 들어가 자자며 데리고 들어간다.


꼬집은 나를 봤을 텐데. 그럼 혼이라도 내지. 동생을 왜 꼬집냐며, 나도 한 번 세게 꼬집어주지. 그러면 왜 꼬집냐고 나도 울을 텐데. 할머니가 봤으면서.

어린 경진은 중얼댄다.



그때 울었어야 했는데.

지금껏 그렇게 내몰린 눈물이, 마음속 깊이 차곡차곡 우물을 만들고 그 우물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꿀꺽꿀꺽 잘도 삼켰지.

어른들이 잘못했다. 어른들이 틀렸다. 운다고 달라질게 없다니.

그때, 기어이, 입을 크게 벌리고 아이처럼 울어야 했다.

엄마 아빠가 울어도, 그 옆에 주저앉아 또 울어대야 했다.

할머니에게 왜 나는 방에 데려가지 않냐며 동생을 몇 번이나 아프게 꼬집으며 울어야 했다.

어른들이 잘못했다. 어른들이 틀렸다.


언제부턴가 울음이 나와버렸다. 말 그대로 나와버렸다.

목구멍을 타고 막을 시간도 없이, 나와 버린 그것은 '울음' 이었다.

친구들과 밥을 먹다가 , 아이에게 노래를 불러주다가 남편과 산책을 하다가도 나와버린다.

입을 틀어막는다. 울음이 올라오며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해, 놀라 입을 틀어막는다.

어린날의 경진처럼 주위를 둘러본다.

친구들은 편안하고 아이는 웃어주고 남편은 상냥하다.

어디를 보아도 경진은 지금, 평안히, 울 일이 없는 세상을 살고 있다.

그런데... 이 울음들은 어디서 나왔나.


경진은 밥을 먹다 레스토랑의 화장실에 들어가 입을 틀어막으며, 그래도 비집고 나오는 울음을 울어야 했다.

아이는 웃어주는데 남편은 상냥한데 울음이 자꾸 나오는게 미안해, 낮이고 밤이고 크지도 않은 집에서 울 공간을 찾아 몇 분간 울음을 쏟아내야 했다. 친구들도 어린아이도 남편도 아무도 울지 말라고 시끄럽다고 할 사람은 없었다. 편안하고 웃어주고 상냥한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경진은 들킬까 벌떡 일어나 잠깐 홀리듯 울 공간을 찾아 헤맨다. 다녀오면 두 눈은 빨개져 부어 있고 입은 틀어 막느라 주변도 벌개져 있으면서 말이다. 사람들이 말한다. 그냥 울라고. 괜찮다고.

경진은 말한다. 알고 있다고. 당신들은 나에게 울지 말라고 울어 좋을거 하나 없다 말하던 그때 그  어른들이 아니니까.


경진은 알았다. 이 울음들이 옛날 어린 경진이 울어주지 못한 울음이란 걸. 그걸 알고나니 울어줘야 할 것 같았다. 토해내 받아줘야 할 것 같았다

나와버린 울음이 맘놓고 울 공간을 마련해주고 편안히 나오게 해주고 싶었다.

우물을 파고 파다 더이상 팔 곳이 없어져 나왔니.

아니면 어린 경진이 이제 조금 편한 세상에 사는 걸 보니 눈치껏 사라져 줬던 것들이 지금은 나와도 되겠구나 싶어 나와 버렸니

어떤 식으로던 언젠가는 나올 것들이었나 보다. 나 자신도 잊어버린 채 잘만 살아오고 있었는데 아마 안에서는 곪고 곪은 것들이 나오겠다 아우성들을 치고 있었구나.

경진은 또 어떻게 살아야 하나 생각을 한다. 다시 주변을 둘러본다.

이런 세상이라면 내가 한 번 마음놓고 울어도 되겠구나 생각한다. 그래서 내 안의 곪고 문드러진 것들이 없어질 수 있다면. 깨끗해질 수 있다면 울어줄 테다.

편하고 웃어주며 상냥한 이 세상에서 말이다.


그래. 이제 울어줄게.

울 수 있어. 나와도 돼.

미안했어 정말.

눈물인지 어린 날의 나에게 인지 말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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