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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선 Jan 04. 2021

안 경 (2)

.서로에게'꽃'이 되고 '무엇'이 되기를.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도.

'꽃'이 되고 '꽃'이 되어주지 않아도.

서로에게 '무엇'이 되지 않아도.

그러지 않아도, 않아도 되는 이것들이 나에게 평안을 준다 말한다.

그러면서도 넌 참 이기적이구나 어리석구나, 하는 생각을 또 어쩔 수 없이하며

왜 난 도로 안경을 써야 하나 머뭇댔을까. 




흐릿한 눈으로 세상을 보고 사람을 보며 떠들기를, 겉이 중요한 게 아니라 겉을 담고 있는 속이 중요한 거라고, 그러니 속을 보는 좋은 눈만 있으면 된다고 말한다. 내 눈 위에 걸쳐진 이 만져지는 안경으로는 사람이건 세상이건 그 안까지 들여다볼 수는 없으니. 

확신에 차 떠드는 널 보면 얼핏 그럴듯해 보이지만, 네 속을 들여다보면 아무것도 없이 텅텅 비어, 조그만 것에도 놀라 바람이 휭휭 부는, 춥고, 약한 속이 보인다. 그런 속을 가지고 있는 네가 어떻게, 좋은 눈을 가지고 사람을 보고 세상을 본다 말할 수 있었을까. 

바람 부는 네 속을 들킬까 두려워 그랬나.

아니면 넌... 네 속이 어떤지도 모르고, 강한 줄 여겨야 했기에 더 세상과 사람을 똑바로 볼 수 없었나.

환한 눈으로 버스정류장 소년을 본 그날.

그가 날 똑바로 쳐다보던,

날 알아차린 것 같은 그 눈을 보고 두려웠던 것처럼.

사실은,

바람이 부는 마음이 많이도 외롭고 추워 가까이 마주 보고는, 지금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아픈지 또 얼마나 기쁜지 설레는지 봐주었으면 하는 누군가가 있기를 간절히 바랬다. 그러면서도 혹시 그 얼굴에서 거절을 볼까, 귀찮아하는 마음을 볼까 두려워, 기어이 안경을 벗고 마는 것이다. 

그 작은, 안경 쓸 용기를 가지질 못한다. 추운 속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

.

.

어른이 되고 용기는 더 이상 필요치 않은지 추운 속이 괜찮아진 건지 안경을 쓰고 사람을 본다.

환한 눈으로 사람을 보려 하는데 잘 보이지가 않는다. 

환한 눈으로 세상을 보려 하는데 세상도 잘 보이지 않는다. 

내 속이, 내 마음이 굳어졌다. 아무리 잘 보이는 안경을 써도 온전히 볼 수가 없다.

밝은 눈을 가지고 내 앞의 사람을 보아도 그 위에 나의 생각과 판단과 선입견이 어느새 마구 덧칠해져, 온전한 그는 간데없고 내 생각으로 만들어 놓은 사람만 보인다. 추운 속이 들킬까 안경 쓸 용기를 가지지 못했던 어린 나는 내 생각과 판단으로 가득 찬, 방어심 많은 어른이 된 거다. 

그 방어가 용기를 가려버렸고 여전히 속은 따뜻하지 않다.

스스로 만들어 놓은 눈과 마음에 사람을 맞춰 놓고, 그 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좋지 않은 사람으로 벌써 단정을 짓고는 멀어질 궁리를 시작한다. 그러면서도 웃고 예의를 차리며 속으로는 그가 얼마나 별로인 인간인지에 대해 조롱을 한다.

집에 돌아와, 판단을 할 이도, 싫지만 예의를 차릴 이도 없는 방에서 날 본다. 참 별로라는 생각이 든다. 집에 돌아와 신발을 벗기 전까지만 해도 얼마나 머릿속으로 그 사람을 세상에서 가장 예의 없고 이상한 인간으로 만들어 버렸는지. 생각해 보면 그가 너에게 그만큼의 나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그냥 조금 네 기준에 벗어난 것뿐인 것을. 

안경을 쓰고 거울에 뚜렷이 보이는 널 보며 묻는다. 

네 마음이 들킬까 두려워 사람들을 자세히 본 적이나 있나. 그들이 말할 때, 네 생각을 보태지 않고 귀 기울여 들어준 적이 있나? 그들의 기쁨에 웃음이 절로 나 기뻐한 적이 있었나? 그들의 슬픔에 대한 공감은 얼만큼이었을까?

가까이 있는 내 얼굴에서 그들은 또 얼마나 많은 거절과 조롱과 연민을 보았을까? 그렇게 난 좋은 사람들을 아름다운 사람들을, 수도 없이 많이 놓쳤겠지.

사실 두려운 마음이었다고, 당신들을 잃을까. 

내 마음에 들어온 당신에게 혹 상처를 입힐까 두려웠다고.

용기가 없어 못난 사람은 이렇다고 이제와 변명할 수도 없지만,  더 이상 좋은 사람들을 아름다운 사람들을 놓칠 순 없다 생각했다. 


나는 여전히 굳어있고, 여전히 뾰족하고 여전히 어둡기도 하다.

하지만 더 이상,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만져지는 안경은 필요 없다.

환한 마음을 가지고 사람을 보아야 한다는 거.

굳어져 있는 마음이 아닌 부드러운 마음으로 사람을 보듬을 줄 알아야 한다는 거.

뾰족한 마음이 아닌 둥글한 마음으로, 뾰족한 사람도 들어와 조금이라도 둥근 시간을 가질 수 있게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걸.

조금은 알 것 같다. 어릴 때 그렇게 떠들던, 좋은 속을 알아보는 '눈'이 아니라 내 '속'을 먼저 그리 만들어야 한다는 걸.

지금 내 곁에 있는 아름다운 좋은 사람들 덕분에.

날 떠나지 않고 사랑해주는 이들 덕분에 난 전보다, 아주 조금 나은, 속을 가지게 되었다. 


'이름'을 불러주고

'꽃'이 되고 '꽃'이 되어주며

서로에게 '무엇'이 되어주는.

'의미'도 '개입'도 두려워하던 나는 이제 서로에게 '무엇'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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