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을 핑계로 책임을 놓다.
아이는 평소처럼 어린이집에 갔고,
저는 평소처럼 회사에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할머니로부터 사진 한 장이 도착했습니다.
사진 속 우리 아이는 얼굴과 팔에
선명한 상처가 나 있었습니다.
너무 놀라 사실확인을 위해 원에 연락을 했고,
그제야 아이가 친구에게 긁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퇴근 후,
아이를 씻기며 마주한 상처는
단순한 장난으로 볼 수 없는 깊은 흔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엄마.. 너무 무서워서 말도 못 했어..."
그 말에 제 마음은 무너졌습니다.
그날 어린이집은 하원시간쯤에 일이 일어났다는 이유로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다쳤다는 사실을 할머니가 보내온 사진으로 처음 알게 되었어요.
원을 통해 상대보호자에게 제 연락처를 전해달라 요청했지만,
그 통화는 이 일이 일어난 지 3일이 지나서야 이루어졌습니다.
그동안,
'연락처를 알려줘도 되는지 고민했다'라는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늦어진 통화 가운데
상대보호자는 미안하다고 하며 사과했지만,
그 이후로 아이에게 직접 건넨 말은 없었습니다.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우리 가족을 향한 어떤 손길도 없었습니다.
그저,
"아이들은 화해했어요."
"이 정도면 울거나 소리를 질렀을 텐데요.."
"평소에는 말을 참 잘하는 아이인데 이상하네요"
라는 말이 되돌아올 뿐이었습니다.
그 말들이 오래도록 마음에 맴돌았습니다.
마치 우리 아이의 침묵이
이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말을 하지 않아서 몰랐다는 이유가
누군가의 면책이 되어서는 안 되고,
늦은 대응이 관행처럼 남아서는 안된다고요.
아이의 상처는 조금씩 아물었지만
남겨진 흉터는 아직도 그 자리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날,
아이의 곁을 제대로 지켜준 어른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어른의 역할은
상처를 없던 일로 덮는 것이 아니라,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조금 더 오래,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다시 웃으며 어울렸지만
아이의 마음엔 그날의 기억이 마음속에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그 흔적들을 살피는 일은 어른들이 해아 할 몫이고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끝까지
어른들의 문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