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미국 작가 볼턴 홀은 저서 『3에이커와 자유』(THREE ACRES AND LIBERTY)에서 고용주에게서 벗어나 자유로운 인생을 살자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고 한다. 그는 먼저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해야만 하는 상황의 어색함을 이야기한 뒤, 독자에게 사무실이나 공장을 떠나 미국 중부에서 농지 3에이커(약 1만2,140㎡=3,672평)를 적당한 가격에 사라고 권했다. 이 정도 면적이면 금세 4인 가족이 먹고 살만한 농작물을 재배하고 소박하지만 편안한 집을 유지할 수 있으니, 아첨과 협상으로 동료나 상사와 어쩔 수 없이 어울려 살아가는 생활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했다. 작가 알랭 드 보통은 저서 『불안』에서 『3에이커와 자유』의 교훈을 “행복한 삶을 영위하려면 고용주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자신을 위해, 자신만의 속도로, 자신의 행복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런데, 2019년 현재를 사는 우리들에게 직장을 나와 3에이커의 땅에 농사지어 먹고 살자고 하는 건 다소 비현실적인 얘기다. 그럼 대체 얼마면 된다는 걸까? 나의 경우에는 그동안의 투자 결과로 약 150만 원의 지속적인 월 고정수입을 확보한 후 회사를 탈출했다. 150만 원은 나와 고양이 두 마리의 생활비, 건강보험과 국민연금 등 각종 공과금을 다 내고도 약간 저축을 할 수 있는 금액이다. 빚도 없다. 그러니 더 이상 취업하지 않고 놀고먹더라도 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 하지만 내가 150만 원으로 회사를 탈출했다고 해서 누구나 1인당 월 150만 원이면 되는 건 아니다.
그럼 대체 기준을 어떻게 잡으면 되는데? 흥미롭게도 이에 대한 연구결과가 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바로 ‘투자자산의 4%’다. 국내 재무설계 업계에서 이 ‘4% 룰’로 가장 많이 알려진 스토리는 윌리엄 벤젠이라는 미국의 재무관리사가 고안했다는 설이다. 벤젠은 20여 년 전에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활동하던 중 금융시장 데이터를 분석해서 4% 룰을 도출했다고 한다. 퇴직 첫해 노후 자산의 4%를 인출액으로 잡은 뒤, 이듬해부터는 이 인출액에 물가 상승률을 감안해 매년 꾸준히 인출을 하는 방식이다. 벤젠의 연구 결과, 퇴직 당시 노후자산을 미국 주식과 국채에 50%씩 투자하는 포트폴리오를 기준으로 인출률을 계산하면 ‘최악의 경우’에는 33년이면 노후 자산이 소진됐지만 대체로는 50년 이상 원금이 훼손되지 않고 버텨냈다고 한다.
이 4% 룰을 증명하는 학술적인 연구결과도 있다. 벤젠의 연구가 나온 시기와 거의 비슷한 1998년에 발표된 것으로, 미국 트리니티 대학교 경영학과 교수(필립 L.쿨리, 칼 M.허바드, 대니얼 T.왈츠) 3명이 연구했다. 트리니티 대학 교수진은 1926년부터 2009년까지 다양한 월별 포트폴리오 자산 배분 및 금액 인출을 가정해 성공적인 퇴직 포트폴리오를 도출했는데, 이 연구 제목은 ‘포트폴리오 성공비율:선 긋는 지점(Portfolio Success Rates: Where to Draw the Line)’으로, 미국 재무설계학회 홈페이지(www.onefpa.org)에 들어가 보면 영문요약본을 볼 수 있다.
이 연구에서도 주식과 채권에 각각 50%씩 투자한 원금을 인출비율을 자산의 4%로 유지하고 30년 동안 꾸준히 이를 인출할 경우 전체 기간 중 96%인 28.8년 동안 자산이 한 푼도 줄어들지 않았다. 즉, 투자 자산에서 4% 정도를 인출한 금액으로 매년 살아갈 수 있다면 약 30년 간 원금 훼손 없이 생활비 조달 걱정을 하지 않고도 살 수 있다는 얘기다. 만일 같은 조건에서 자금을 이 비율보다 적게 빼내거나, 비율은 4%로 유지하더라도 주식비중을 더 늘려 전체 투자수익률을 높이면 30년보다 더 오랫동안 원금 훼손을 피할 수 있다. 인출률을 1~3%로 낮추면 빠져나가는 금액이 줄어들고, 인출률을 4%로 유지하더라도 주식투자 비율을 60~80%로 높이고 채권투자 비율은 20~40%로 낮추면 투자에 따른 기대수익률은 더 높아질 수 있다. 만일 원금 규모가 크다면 인출률을 더욱 낮출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원금 규모가 크면 적게 인출해도 생활비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문득 궁금해져서 내 현재 고정수입과 투자자산이 이 4% 룰에 맞는지 한번 계산해봤다. 현재 내 자산에서 거주중인 집의 전세보증금을 제외하고 월세와 이자수입을 만드는 데 투입된 자산을 합하면 약 4억 5,000만 원인데, 이 금액의 4%는 1,800만 원이다(4억 5,000만 원×4%=1,800만 원). 이 1,800만 원은 연간 생활비예산 총액이니까 이를 12개월로 나누면 월 생활비예산이 나온다. 계산해보니, 대박! 소오름! 말문이 턱 막혔다. 150만 원이 나왔기 때문이다(1,800만 원÷12개월=150만 원).
2018년 1월에 내가 회사를 그만둘 때 월세 등으로 월수입 150만 원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회사 탈출을 감행했던 것인데, 이 금액에는 대단히 합리적인 근거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내 투자자산은 주식과 채권에 5대 5로 투자된 게 아니고 수익형 부동산에서 월세를 받는 구조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건물에 감가상각이 이뤄진다는 점을 감안해야 하긴 하지만, 투자원금 대비 연간 인출률이라는 큰 틀에서 보자면 어느 정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투자 가능한 자산의 4%를 계산한 금액으로 생활이 충분히 유지된다면, 당신의 회사 탈출은 더 이상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