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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Mar 23. 2023

진달래꽃

한을 사랑으로 승화시킨 꽃

보통 우리 민족의 정서를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없지만, 굳이 말하자면 한(恨)과 끈기를 간직한 민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한의 정체에 대해서는 뭐라 딱 잘라 표현하기 어렵다. 오천 년 한민족사에서 켜켜이 쌓아 생성된 그 한의 역사를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한은 가장 한국적인 슬픔의 정서로서 한마디로 마음의 '응어리'라고 할 수 있겠다.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푼다'고 말할  때 그 응어리가 바로 한이다. 한과 비슷한 단어에 원(怨)이 있다. 이어령은 한과 원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원은 외부를 향한 분노, 슬픔이므로 풀 수 있고 진혼(鎭魂, repose of souls)을 할 수 있지만, 한은 내부로부터 점점 쌓여가는 것이라 풀기가 힘들다. 원은 외부를 향하고 불과 같이 활활 타오르기 때문에 없어질 수 있지만, 내부에 자리 잡고 있는 한은 사라지기 힘든 성격을 가지고 있다(김형근, 2005). 심지어 죽는 순간까지 그 한의 응어리가 풀리지 않는 탓에 죽은 사람의 넋을 달래 고이 잠들게 하려는 목적으로 진혼굿을 하고 진혼시를 낭독하고, 전쟁 중 사망한 전사자의 영혼을 달래고 명복을 비는 진혼나팔을 분다.  


설명하기 어려운 개념은 상징을 들어 비유를 하면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우리 민족의 한을 상징하는 꽃을 보기로 들어보자. 많은 꽃 중에 우리 민족의 한을 나타내는 데 가장 적절한 꽃이 있을까? 저자는 단연코 진달래꽃을 꼽고 싶다. 왜 하필 진달래꽃일까? 아마도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 때문일 것이다.  



진달래꽃/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소월은 서글픈 이별의 한을 진달래꽃으로 대체한다. 상상해 보자. 사랑하는 연인이 그만 헤어지자고 한다. 이때 연인은 남녀일 수도 있고 조국이나 민족일 수도 있다. 사랑하는 연인과 이별은 언제나 슬프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이별하느냐이다. 시인은 연인과 헤어지면서 특별한 의식을 준비한다. 산천에 널린 진달래꽃을 따다 이별의 길에 뿌리겠다고 한다. 헤어지지 않겠다는 반어적인 은유의 행위다. 그 꽃길을 밟고 지나갈 연인이 있을까 싶다. 걷다가 다시 되돌아올 것이다. 그래도 간다고 하면 고이 보내드리고 눈물조차 흘리지 않을 것이라고 입술을 깨문다. 이러니 우리 민족의 정서로 자리 잡은 한(恨)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서양인들이 소월의 시를 완전히 이해하기란 어렵다고 할 것이다. 소월의 시를 곡을 붙여 부르면 애잔함과 소박함이 함께 묻어난다. '엄마야 누나야', '금잔디'도 그렇다. 의식 있는 시인에게서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암울한 시대에 밝고 즐거운 시어들이 나올 리 없었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한을 대변하는 진달래꽃은 끈기까지 있다. 꽃에게 기대하는 끈기란 무엇일까? 주어진 조건에서 악착같이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뻗어 기필코 꽃을 피우는 근성을 말한다. 산에 가서 진달래가 자리 잡고 있는 터를 자세히 살펴보라. 아득하고 평평한 곳에 자리 잡은 야생의 진달래는 거의 없다. 한결같이 가파르게 경사가 졌거나 주위가 억센 나무들로 둘러싸인 환경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우리 민족의 끈기를 닮았다. 끈기의 한민족이 근대화, 산업화, 민주화를 일궈내고 세계 최빈국에서 원조를 제공하는 공여국이 되었다. 우리 민족의 자긍심이고 저력이다.


진달래꽃은 보릿고개를 넘기는데도 기여했다. 저자를 비롯한 형제들은 뒷산에 올라 진달래꽃을 참 많이도 땄다. 진달래꽃이 지천에 널렸던 시절이었다. 남쪽에선 3월 초부터 피기 시작하는 진달래꽃이 만개하기가 무섭게 따다 그늘진 곳에서 말려 고방의 커다란 항아리에 넣고 술을 담았다. 진달래꽃을 두견화라고 부르니 술은 두견주가 될 것이다. 어디 술뿐이던가. 진달래를 찹쌀가루에 섞어 화전('꽃지지미'라고도 부름)을 부쳐 먹었다.


저자가 진달래꽃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있다. 철없던 시절 진달래꽃을 보기가 무섭게 죄다 따다 술을 담거나 전을 부쳐 먹었던 생각을 하면 요즘엔 진달래꽃을 보기 민망하다. 저자는 산속의 진달래꽃을 보면 마음속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한다. 누군가 진달래꽃을 따거나 나무를 꺾으려고 하면 굳이 말리는 이유다. 꽃은 따거나 꺾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다. '봄'의 동사형은 '보다'라고 하던가. 꽃들이타고난 자연수명을 다하도록 지켜보는 것이다.


진달래꽃의 꽃말은 '사랑의 기쁨'이다. 진달래꽃은 갸녀린 꽃처럼 보여 애수의 상징 같지만, 꽃말은 예상외로 밝고 기쁜 뜻을 담고 있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프랑스 가수 나나 무스꾸리(Nana Mouskouri)가 부른 '사랑의 기쁨'(Plaisir D'amour)을 즐겨 듣는다. '사랑의 기쁨은 한순간이지만, 사랑의 슬픔은 영원하다'는 요지의 노래다. 우리나라 가수 마야가 부른 록스타일의 노래 '진달래꽃'도 좋아한다. 마야의 노래는 이별의 아픔과 슬픔을 빠르고 파워풀한 음색으로 승화시켜 낸다. 진달래꽃을 위한 진혼곡 같다.


하루도 빠짐없이 내리던 서리가 주춤하고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온기가 느껴지는 3월 초 뒷산에 오른다. 누구보다 먼저 진달래꽃과 인사를 나누기 위해서다. 해가 저편으로 넘어가고 땅거미가 지는 시간에 산을 내려오다 보면 마치 홍사초롱에 불을 켠 것처럼 분홍빛 진달래꽃이 이구동성으로 불을 밝힌다. 저자에겐 일 년 열두 달 중 3월이 가장 기다려지고 그 많은 꽃 중에 진달래꽃을 제일 기다린다. 진달래꽃은 저자에게 한을 기쁨으로 승화시켜 주는 꽃이요 사랑의 기쁨과 슬픔은 서로 맞닿아 있음을  깨닫게 해 준 고마운 꽃이다.


김형근. (2005). 사이언스타임스. 세기의 대담, 야마오리 데스오 vs 이어령. 3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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