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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현하기 Aug 20. 2024

이 세상에 태어난 걸 축하해

"올해는 40번째 생일이니까 한달 내내 축하를 받을거야!"


몇 년전 아는 지인이 한 말에 적잖이 놀란 적이 있다.


'생일 축하를 한달이나 받는다고?'



내게 생일은 그다지 의미 있는 날이 아니었다.

유치원에서는 한달에 한번 몰아서 생일파티를 해 주었고, 

집에서는 열흘도 차이나지 않는 아버지 생일날 함께 축하를 하는 일이 많았다.

물론 생일 당일에 미역국은 따로 끓여주셨지만,

온전히 내 생일을 위해 케익에 초를 켜는 일은 드문 일이었다.

방학 내에 생일이 있었고, 외진 곳에 집이 있어 친구들을 불러 파티를 여는 것은 언감생심 바랄 수도 없었다.


도련님 한복을 입고 찍은 동생 돌사진과 달리 내 돌사진은 빨간 추리닝을 입고 있는 사진이다.

나중에 어머니에게 들었을 때, 집안 형편이 어려워 사진찍는 것을 아버지가 반대하셨다고 한다.

빠듯한 살림에 아버지 몰래 어머니가 해 주실 수 있는 최선의 사진이었다.

그럴 수 있었겠다고 생각했다. 


"그 때 네가 생기지 않았으면 아빠랑 이혼했겠지"

"너 태어났을 때, 딸이라고 너네 친가에서는 병원에 오지도 않았어"


이런 말들은 내가 서운해할 틈조차 허락하지 않는 듯 했다. 

원래 그런거라고, 딸들은 다 그런거라고, 여자애니까 그런거라고. 

나조차도 그렇게 여기며 자라왔다. 


학교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온전히 생일을 축하 받는 일들이 생겼다. 

색연필로, 스티커로 유치하게 꾸며 쓴 친구들의 편지들은 성인이 되서도 버리지 못하는 보물들이 되었다.

그날만큼은 뭐든 받아주는 친구들 덕분에 주인공된 듯한 기분에 심취해 보기도 했다. 

호프집에 모여 작은 케익에 초를 꽂고, 가게에서 틀어주는 축하음악에 환호하는 파티는 

청춘이었던 우리에게 술마시고 놀 수 있는 빌미였을 지 모르지만, 

내게는 눈물나게 고마운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어색했었다.

어머니에게도 한 손에 꼽힐만큼 받아본 생일 밥상을 친구에게 받았을 때는 도저히 숟가락을 뜰 수가 없었다.

'고맙다'라는 말보다 더 내 마음을 표현할 단어가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고마운 마음만큼 가슴 속 가득 벅차오르는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그냥 웃고 넘겨버리고 말았다. 그것이 늘 친구들에게 미안했다. 

 


그렇게 20대를 보내고, 사는게 바쁘고 팍팍해지는 30대가 되면서 20대 같이 요란한 축하는 점점 없어졌다. 

그저 시간 맞으면 모여 밥한끼 먹으며 축하하는 거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을 때면 안부전화나 하면 그만이었다. 서로의 사정을 뻔히 알기에, 서로의 마음을 이미 알고 있기에 그걸로도 충분했다. 


그럼에도 생일이 다가오면 마음이 이상했다.

서운함이 아닌 다른 감정이 있었지만,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런 마음도 습관이라고 치부해 버리고 넘기려 했었다. 

생일이 다가오면 일부러 일정을 잡아 일을 했다. 

바쁘게 지나쳐버리고 나면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러다 문득 

'나는 나의 생일을 축하해 준적이 있었나?'

라는 의문이 들었다. 


다른 이들에게 축하를 받으면서도 충족되지 않던 감정들.

어딘지 모르게 불안해지고 초조해지는 마음들.

그저 빨리 '생일'이라는 날이 지나가길 바라는 생각들.


이런 것들의 시작은 나에게서 비롯된 것이었다.

나조차도 축하하지 못하는 나의 생일. 

그 생일을 누구에게 축하받아야 충족될 수 있었을까.


그걸 깨닫고 나자 갑자기 서러워졌다. 

내 자신에게 서운함이 밀려왔다.

이제서야 알아차린 내게 미안해졌다.


늘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에 대한 의미를 찾지 못하는 것이

어린 시절 부모님에게서 비롯된 것이라 치부해 버린 것이 얼마나 어리석었는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결국 나를 온전히 사랑하고 수용할 수 있는 것은 나 밖에 없는데,

그걸 너무 늦게 알아버린 건 아닐까. 


그때부터 생일이 되면 되도록 일정을 잡지 않으려 한다.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려 노력한다.

나에게만 집중하고, 스스로에게 충분히 축하를 보내려 한다.

그 동안 소홀했던 시간을 모두다 보상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앞으로 다가올 또 다른 생일들은 모두 축하하고 축복하리라.


곧 다가올 그 날에는 소리내어 스스로에게 말해줘야 겠다. 

이 세상에 태어난 걸 축하해. 

나로 태어나 줘서 고마워. 

나에게 네 존재는 그 자체로도 행복이야. 

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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