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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 뮤익과 도쿄 화장실 청소부

일상의 미학

by 하유미



주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론 뮤익 전시를 보러 아이와 함께 가기로 했다. 학교에 있는 아이는 광주에서, 나는 대구에서 각자 출발해 서울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오가는 기차 편과 숙소까지 예매를 다 마치고 아이에게 단 한 가지, 무료관람 대상자를 증빙할 신분증을 챙겨 오길 신신당부했다.

기차출발 한 시간을 앞두고서야 학교에서 송정역까지 어떻게 이동할지를 전화로 묻는 속 뒤집히는 일 정도야 애교로 여기고 택시를 불러주며 한 번 더 신분증을 언급했다. 미술관에 나타난 아이는 당연히 신분증을 놓고 왔다. 매표소 직원의 따가운 눈총을 견디는 건 내 몫이었다.

관람을 마치고 식당에 마주 앉아 세상 무관심한 표정의 아이를 하릴없이 바라보다가 영화 퍼펙트 데이즈 속 주인공이 떠올라 마음 한구석이 까끄름해졌다.


영화 속 주인공은 도쿄 화장실 청소부이다. 매일 자신의 방에 가지런히 꽂힌 책과 같은 하루를 성실하게 채워간다.

이른 새벽 도로를 청소하는 소리에 일어나 화분에 물을 주고 집 앞 자판기에서 음료를 뽑아 출근을 한다. 일을 마치고 목욕탕에 들른 후 같은 식당에서 똑같은 메뉴의 저녁을 먹고 집에 돌아와 잠들 때까지 식물에 관한 책을 읽는다.

주말이면 청소와 빨래를 하고 공원에서 점심을 먹을 때마다 필름카메라로 찍은 하늘과 나무 사진을 현상한다. 헌 책방에서 책을 골라 같은 요릿집에 들러 감자샐러드와 술 한 잔을 마신다. 그리고 또다시 아침이다.

그의 일상은 시계추처럼 반복되지만 사이사이 작은 변수들이 끼어든다. 그렇다고 그것이 하루를 망칠 정도는 아니다. 그는 삶의 방향이 틀어질 때마다 다시 조정하여 자신의 길 위에 올려놓기를 끊임없이 행한다. 일상이 자신을 치유하도록 내맡기면서.

말수 없는 그가 하루 중 항상 행복한 미소를 짓는 시간은 출근길에 대문을 열고 하늘을 올려다볼 때이다. 영화는 그 미소로 시작해서 그 표정으로 끝이 난다. 출근길에 세심하게 카세트테이프를 골라 튼 음악을 들으며 그는 마지막에 울고 있다. 동시에 웃고 있다. 그 표정이, 여름 햇볕에 잘 널어 말린 행주 같은 일상이 아름다워 가슴이 먹먹했다. 영화제목이 그제야 이해되었다.


그때 아이 생각이 나서 주인공의 일상이 더 감동적으로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사춘기 아이의 요즘 일상은 대충 짜서 싱크대 위에 던져둔 행주 같다. 뭉친 채 젖은 행주는 쉰내를 펄펄 풍긴다. 행주를 사용하고 나서 빨아 짠 뒤 펼쳐서 말리는 행위는 도중에 생략하거나 멈출 수 없는 연결된 한 가지라는 사실을 아이는 이해하지 못한다. 귀찮으면 생략하고 힘들면 포기하기를 밥 먹듯이 하는 바람에 일상의 여기저기에 곰팡이가 피고 있다.


론 뮤익의 작업 과정을 담은 영상을 보았다. 현대 조각의 대표 작가란 타이틀에 걸맞지 않게 그의 작업실은 방문객으로부터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해 섬 한적한 곳에 위치해 있다. 작업 사이 잠시 쉬는 시간이라고는 수영할 때와 새 모이통에 밥을 줄 때뿐 그의 하루는 작업을 위해 오롯이 쓰인다. 그럼에도 30년간 만들어낸 작품이 48점에 불과할 정도로 그의 작업은 정밀하고 느리게 진행된다.


그의 일과는 어쩐지 수도사나 비구승의 하루와 닮았다. 일념 혹은 무상무념에서 오는 반복되는 행동의 경건함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조각을 매만지는 조각가의 세심한 손과 변기를 닦는 청소부의 힘찬 손, 두 손은 일상이라는 범주에서 매일 각자의 예술을 빚어낸다.

아이는 아직 일상이 갖는 힘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것의 무의미의 미학을 이해하려면 삶에 여러 번 생채기가 나야 할 것이다. 누구보다 나를 닮아서 그런 것 같아 안타깝고 한편 미안해진다.


걱정되는 마음에 카톡으로 정서경 작가의 말을 전했다. 사랑하는 이에게 마지막 한 마디를 남길 수 있다면 어떤 말을 하겠느냐는 질문에 작가는 이렇게 답했다. ‘이를 열심히 닦아.’

자신을 돌볼 줄 아는 사람은 일상을 가꿀 수 있고 그렇게 매일이 쌓이면 삶을 살아낼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로.

통찰력 있는 우리 선조들은 일찌감치 일상의 미학을 이해하고서 유익한 말을 후세에 남겼다. ‘발 닦고 잠이나 자라.’

부디 나의 응원이 아이에게 가서 닿기를.

삶을 꿰뚫어 보라. 직시. 아들 너 말이야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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