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울이 되었던 날

여행은 일상을 위로한다.

by 피카타임

위로를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결국 난 다른 사람이 될 거라 생각한다.
사람은 저마다 동전 같은 인생을 부여받았다.
한 면의 감사거리와 한 면의 고난 거리를 동시에 움켜 들고 살아가고 있다.
고난을 감사로 바꾸는 중간단계에 위로라는 장치가 있는 듯하다.
따뜻한 위로의 성질이, 고난을 해결하게 하는 뽀빠이의 시금치는 아니지만 고난으로부터 마음의 고통을 경감시켜주는 주사 전 사탕은 충분히 되고도 남한다.
그러니 위로를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이 훨씬 더 잘살게 될 거라 생각한다.

나에게 여행은 일종의 '위로'이다.
여행이 '재충전'이란 말에는 크게 공감이 되지 않는다. 여행을 했다고 배터리가 충전되듯 당장 힘이 펄펄 나는 건 절대 아니었다. 나에게 여행은 오히려 '소진'이다.
여독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육체적으로는 힘이 드는 일이고, 돌아온 일상은 미뤄둔 숙제들이 쌓여있고, 여행비도 늘 만만치 않게 빠져나간다.
그럼에도 여행 후에 (때로는) 지긋지긋하던 그 일상이 또 살아지는 건 여행을 통해 느끼고 본 모든 것들에서 삶의 위로를 받았기 때문이다.

오래전 동생이 회사일로 많이 힘들어하던 때가 있었다. 동생은 크게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난 동생을 위한 여행을 계획했고, 실행했다.
그 여행에서 우린 동시에 인생에 베스트 컷을 만났다. 필리핀 우기의 바다.
바다에 꽉 들어찬 물이 느리고 큰 파도를 만들어 우리 앞으로 쏟아질 듯 달려든다.
바닷물에 정신을 빼앗긴 우리는 감탄사와 신음만 뱉으며 모래사장을 한참 걷다가 털썩 주저앉아 또 그렇게 오랜 시간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곳은 거대한 바다와 그 위를 덮고 있는 태양빛만 있는 것 같았다.
사람은 아무것도 아닌 듯 너무나 보잘것없어 보였고 심지어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바다로 걸어 들어가 사라진 대도 부서지는 물방울 하나와 다를 바가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연의 작디작은 일부분이 되어 해변에 오래도록 앉아있는 동안 마음이 변하는 게 느껴졌다.
마음속 동전이 다른 면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냥 아무것도 아니다. 그저 하나씩 해내면 될 일들... 동생을 바라보니 나와 같은 표정이다.

여행 후 오랫동안 그 바다 사진을 보면 그날의 파도 소리와 함께 생생히 그 바다가 떠오른다.
그러면 어느덧 난 또 아주 작은 존재가 되어있다. 더불어 나를 둘러싼 모든 게 다 작아져있다.

살아가는 동안 떠올릴 때마다 가슴 뛰는 기억들을 하나씩 추가해 가는 것, 참 잘한 일이다.
여행은 내가 나를 위하며 살아가는 방법이다.
어렸을 때는 이기적이고 교만한 자기애였다면 지금은 그에 비해 훨씬 성숙한 자기애를 가지게 된 것 같다.

아, 또 하나. 동생과 며칠을 심하게 다툰 어느 날 그 바다가 떠오르니 갑자기 측은해지며 마음이 풀린다.
그날 우리 존재가 같이 물방울이 되어서 그런거니.

그때 네가 많이 힘들었지...지금 너의 고민이 그때와 다른것이란게 감사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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