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음이란 둔한 칼로 조각을 시도했지, 규격품을 만들기 위해서
20대 끼지는 진자 내 몸에 대해서 잘 몰랐다.
순진하게 살을 어쨌든 계속 빼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살이 빠졌을 때의 모습이 진짜 어떨지도 몰랐다.
실제로 내 골격이나 내 신체의 장점과 단점을 알 지도 못했고
그저 ‘예뻐져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이 내 욕망인 줄 알았고
외모로 바로 태도가 달라져버리는 경험 또한 충분히해봤다.
결코 어렸을 때 부터 나는 미디어가 만들어놓은 사랑을 받는 여자 주인공같이
가련하고 청순한 스타일이 아니었다. 톰보이였고 오빠가 입던 청바지를 물려입던 여자 아이였다.
레이스 양말을 신은 적도 요구한 적도 엄마가 사준 적도 없었다.
엄마의 내가 더 크기 전에 입히고 싶었던 겨울 모직 체크 핫팬츠(보단 조금 긴 기장)을
매우 거부했던 기억은 있다.
이런 내 스타일을 고수하면서도 머리가 칠흙처럼길고 얼굴이 하얗고
곧 쓰러질 것 같이 작고 예쁘고 가녀린 여자는 내게 ‘아 진짜 저런 모습이
여자구나. ‘ 아니면 ‘저런 모습을 사람들이 여성스럽다고 하고 또 남자들이 좋아하는 구나.’ 라고 생각했다.
살은 쪘다가도 빠졌고 빠졌다가도 다시 쪘다. 지금의 나로써는 그때의 모습이
예쁘게 보인다. 지금에 비한다면 말랐거나 정말로 보기 좋았거나.
지금 ‘내 이름은 김삼순’이란 드라마를 보면 파티쉐인 김삼순이 엄청
뚱뚱해서 다이어트 실패하는 여자로 나오는데다 그 역할을 한 김 선아 배우는
살을 많이 찌웠다고 했는데 전혀 뚱뚱해보이지 않는다. 유튜브에 댓글들도 그런 댓글이다. 여자 30살ㅇ이면
곧 인생이 끝나는 것처럼 구박받는 전문직의 ‘김삼순’이 지금의 나보다는
훨씬 당당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고 있고 주체적이고 목표가 있는 여성이다.
구박받아야 할 캐릭터가 아닌 것처럼 보이는데 그녀는 구박받고 마르고
잘 꾸미는 언니가 다이어트를 한다고 하자 있는 것들이 더한다면서
마른 것들은 다 어디 쳐 매달아놨으면 좋겠다고 투덜거리며 고추에 고추장을 찍어 먹는다.
삼순이에게 너무 빠져버렸지만 삼순이의 서른살 꿈은 이름을 바꾸는 거였고
나는 서른이 너무도 큰 나이라는 두려움에 그 전에 한껏 여자다운 옷을 입으려면
옷에 나를 끼어 맞추더라도 내 몸을 깎아 내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다.
한 달을 퇴근 후 유산소운동과 식사조절만으로 4kg을 감량했다. 하지만 매일이
하기싫음과의 싸움이었고 매일의 생활은 재미를 잃어갔다. 그리고 그 때쯤 인사도 않았던 트레이너들이 무료 오리엔테이션을 열면서 상담을 시작했고 돈만 밝히면서 미남도 아니었지만 훈남이나 한남동 아니었던 한 트레이너는 살이 쪄서 자존감이 하락한 여성들은 관심만으로도 꼬실 수 있다는 듯 이상한 영업전략을 펴던 트레이너를 거치고, 살과의 전쟁이라면 버핏 운동을 시키면서 땀을 뻘뻘 흘리는 나에게
‘그게 힘들어요?’ 라는 힐난을 주던 무례한 트레이너를 거쳐 결국 개인 트레이닝의 카드를 긁게 한 트레이너가 나타났다. 어찌됐든 그 트레이너는 내가 살을 너무도 빼고 실어한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았다.
하지만 운동만으로 빠질 살도 아니었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음식 조절을 하기란 또 수많은 트집과 간식을 주고 안 먹으면 안되는 그 당시의 직장 문화에서 나는 참 불편하고도 참견을 많이 받으며 노력을 했다.
바나나, 채소, 닭가슴살, 두유 등으로 식사를 바꿨다. 모든 내 입에 들어가는 것은 트레이너에게 톡으로 사진을 찍어 보내야 했고 아침 공복 유산소 운동도 하라고 했지만 하지 못하는 날이 많아 스트레스만 더 쌓였다.
저녁엔 퇴근 후 바나나 하나나 삼각 김밥, 두유 정도를 먹으며 유산소를 하다 너무도 힘든 근육운동을 하게
되었다. 티셔츠를 두 세 번을 갈아입어야 할 정도로 운동을 했고 큰 금액으로 카드를 한 세번 쯤 긁자 3kg가 빠졌다.
퍼스널 트레이닝을 한 지 3개월 후의 몸무게와 6개월 후의 몸무게는 별 차이가 없었다. 똑같았다.
난 그 숫자가 너무도 싫었다. 트레이너는 근육이 붙으면 무게가 더 나가도 바지사이즈는 더 줄어들 수 있다,
원래 내 체력이 좋았고 예전에 어렸을 때 수영선수를 해봤고 또 유산소운동만으로 살을 뺀 경험이 종종 있었기때문에 결과가 드라마틱하지는 않다고 얘기했다. 다 맞는 얘기였지만 난 내 몸이 무슨 인터넷 쇼핑몰이나
마네킹의 마른 몸은 되지 않아도 조금은 비슷하게라도 될 줄 알았나보다.
어리석은 이야기지만 그렇게 되지 않으면 ‘예쁜 애들’이라고 소위 불리는 그 테두리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렇게 되면 위아래로 훑어보며 무시하는 시선과 조롱으로 자신들의 미모와 명품들이 한껏 치켜세우던 대학 동기들이나 백화점 화장실에서 지나쳤던 그런 여자들에게 영원히 무시받으며 살아갈 것만 같았다.
참 어리석은 생각이다. 하지만 내 속엔 그들이 치장하고 다니는 패션을 좋아하지도 않고 드라마에 나올 여배우를 꿈꾸지도 않았는데 왜 그런 모순된 생각과 욕망이 오랫동안 꿈틀대고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다이어트를 알았다. 10살이 되기도 전이었다. 그리고 오빠는 많이 먹어도 되지만 나는 안됐고 또 그 만큼까지 먹을 수도 없었다. 오랜만에 친척들을 만날 일이 있으면 외모이야기와 살 이야기로 내 분노지수와 수치심은 얼마나 올라갈까, 일주일 전부터 잠이 안왔다.
참 안타까운 인생이다.
자, 그럼 그럼 외부의 평가와 외부의 말들과 그런 것들은 일단 놔두고 내 내부의 목소리는 어떠하였는가.
어쩌다 한 번 가본 백화점에서 어찌됐든 사이즈가 줄어드니 55라고 하는 사이즈의 옷을 매장 언니가 입히려고 했다. 나는 안 들어갈 것 같다고 했는데 아니라면서 굳이 입혔다. 아주 잘 맞지는 않는 것 같지만 속에 입은 옷때문이라며 백화점의 포토샵이 저절로되는 거울에 나를 비춰진다.
근데 그 시절 내 목표만큼 체중감량을 거두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내 몸의 원래 골격이나 뼈대, 그리고 근육운동의 효과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체중감량 자체가 다가 아니라는 사실도. 그리고 결국 내 몸이 가장 편한 어느 상태의 몸을 만들고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하지만 그 땐 너무 많이 운동을 했다. 유혹을 못 참고 빵 한조각이라도 먹으면 그 칼로리보다 더 넘게 러닝머신을 해야 그나마 제로라는 생각에 처참해졌고 무언가를 먹을 때, 이 한 봉지의 간식이 너무도 괴로운 스쾃을 백번 이상을 하게 해야 한다는 강박에 빠졌다.
그래서 가끔은 스트레스로 폭발하여 내가 좋아하는 초코 과자 큰 상자를 한 번에 뜯어 다 먹어버린 적도 있고 직장에서 어쩔 수 없이 먹게 된 고기를 집에 와서 토하기도 했다. 다음 날 토하느라 무리한 목 근육과 갈비뼈 쪽이 너무도 아팠다.
헬스장에서는 나랑 같이 운동을 하던 친구와 나를 운동부로 착각하기도 했다.
한동안 반항하며 헬스장을 멀리했을 때는 인사도 한 번 안했던 사람들이 ‘머리 길고 노랗고 안뚱뚱한데 엄청 열심히 하시는 분 (그 때의 나의 인상학의와 그가 본 나의 인상?)‘ 왜 요즘 안나오냐고 트레이너에게 묻기도
했다.
트레이너는 나중에 ‘넌 평생 운동해야될 팔자다.’ 라고 같이 계속 운동하자고 했다.
싫어하면서도 하라고 하면 죽을 상을 쓰면서도 해내고 또 잘 해내는 이 어정쩡한 인간이 안타까우면서도
어쩌면 절대 사회적 ‘날씬함’에는 절대 들어갈 수 없는 이 인간에게 할 수 있는 말이 별로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그 때의 엄청난 성과는 ‘나도 다리가 얇아질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예전보다는.
그리고 근육 량이 늘어나면서 겨울에도 버틸 수 있는 힘이 더 생겼고 근육통으로 매일 힘들어 하면서도
직장 생활 이외의 공부나 독서, 글쓰기도 할 수 있는 근성을 좀 더 늘려줬다.
그리고 겨울에도 발이 시려워지지 않는 놀라운 경험을 하기도 했고 변비도 없어졌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내가 일주일에 5, 6 일은 준비 시간과 샤워시간까지 합쳐서 3, 4 시간을 헬스장에서
보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일주일이라도 쉬면 6개월 동안 뼈깎아 만든 체중은 아주 쉽게 올라왔다.
근육운동의 고통, 식이 조절의 고통의 크기보다 감량의 크기가 너무도 작았기에 나는 가슴 속에 불만이 쌓였다. 헬스 라는 운동에도 더 이상 흥미를 느낄 수 없었고 주위 사람들이 뒤태가 난리가 났다, 얼굴이 없어지려고 한다, 다리가 진짜 얇다, 이런 말에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즉, 한 마디로 행복하지 않았다.
이 때의 경험은 나에게 큰 교훈을 주었다.
몸은 사람마다 다르게 생겼고 내가 편하고 안정감있게 느끼는 체중이 있으며
그 체중의 숫자가 내 평생의 절반을 수치심을 주는 숫자라 하더라도 당당해야 하며
연예인처럼 마른 몸은 모두 허상이라는 것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리고 나는 나의 몸의 개성과 특성을 전혀 이해하거나 받아들이지 않았고
모두 부정한다는 태도로 무딘 조각칼과 깎아내려했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옷도 아닌, 말도 아닌 규격에 맞추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