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의 그레고리 잠자
그레고리 잠자는 어느 날 곤충이 된 채로 깨어난다. 집안의 자랑이었고 집안의 가장이었던
보험 회사 직원인 잠자는 일어나라는 엄마의 말에 대답 조차할 수 없었고 기차를 타고
회사로 갈 수 있는 시간을 계산한다. 소위 아침에 깨서 몇 분을 더 자면 어떻게 될까를
생각하고 5분, 3분 , 2분 씩 알람을 맞춰 놓는 내 모습같다. 그러나 힘겨운 시간 끝에
잠자는 겨우 출근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누워 있는다. 방 안에서 잠자는 가족들의 걱정과
호들갑스러운 어머니의 목소리, 다소 화난 목소리의 아버지, 걱정하는 여동생의 모습을
듣는다. 이 모습도 우리 집 같은데, 여느 집 또한 그럴 것이다.
우리 엄마 아빠는 일찍 주무시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아침에 대화를 나누시는 편이다.
이런 점이 참 좋지만 청소년 기에는 들리는 말 소리에 깨면 주로 오빠와 나를 어떻게
키울까 란 걱정 때문이었겠지만 주로 내게는 내 뒷담화로 들리는 목소리에 잠을 깨곤 했다.
직접적인 잔소리를 대신 했을 수도 있겠지만 아침이 유독 힘든 나에겐 ‘아, 인생이란 이렇게
고통스러운 것이구나.’라는 생각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잠자는 가족의 자랑이자 버팀목이었다. 잠자 덕분에 가족은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루 아침에 이유도 자신의 실수도 없이 사람이 아닌 존재가 되어 버렸다. 아무짝에 쓸모도 없는.
이 단편 소설에서는 맨 처음이 충격적이고 점점 인간성을 잃어가는 큰 곤충이 된 잠자와
그의 쓸모없음이 가족의 수치가 되고 골칫거리가 되고 마침내는 아들이 아니게 되어
맞은 썩은 사과에 서서히 죽어가는 잠자. 그리고 그의 죽음과 더불어 그 가족은 이제 어른이 된
여동생에게 미래를 희망하며 소풍을 떠난다. 그리 복잡하지 않은 이야기지만 현대인에게
큰 공감을 산 현대적 어두운 판타지랄까.
나 또한 이 단편을 두 번 이상 읽은 것 같은데 배경이 현대 인데도 아름다운 판타지가 아니라
인간의 존재의 상실을 곤충이 되는 판타지라서 강력히 끌린 것 같다. 왜곡해서 공감하자면
취업에 실패하고 자꾸 20 대에 방황을 했던 내 자신이 쓸모 없는 잉여인간이 되었고 그렇다고
성실히 일해서 제 나이에 자리 잡고 결혼하고 아이를 갖는 것에 대해서 말만 들어도 신물이 났던
덕에 매우 부모님께는 실망스럽고 내 자신에게도 실망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물론 그런 시간이
좋았던 부분도 한 가지는 있었는데 주위의 기대에 나도 모르게 내 자신을 채찍질하지는 않는
자유를 얻었던 점이 있었다.
물론 이 20대의 방황은 반은 내 탓도 있었지만 반은 인간의 가치가 종이컵처럼 쓰고 버리는
노동체계로의 변환의 사회탓도 있는 것 같다.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경제가 힘들어 지니 청년들의
일자리 자체가 없는 환경을 안타까워하는 시선도 생겼고 일과 돈만이 전부가 아닌 것에 대한
인식도 늘었지만. 경제적 주체가 되지 못한다는 개인의 체념과 된다하더라도 평범하게 어른들이
말하는 생을 산다는 것이 너무도 어려운 일이 되어 버렸다.
언제든 ‘나’는 다른 인력으로 대체될 수 있고 나의 존재 가치가 큰 사회의 시스템에 있어도
없어도 되는 톱니바퀴의 먼지 정도가 되는 것 같은 절망. 그런 절망과 체념 속에서도 작은 의미와
작지만 큰 즐거움을 얻으려……..오늘도…….
그 안에서도 인간 존재 그 자체를 고민하게 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