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는 언제나 변수가 가득하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누가 말한 걸 곧이곧대로 믿는 아이였다. 아빠가 한 날은 술을 마시고 들어와서 중학생 정도인 나에게 유학을 보내준다고 했다. 나는 철석같이 그 말을 믿었고, 들떠있었다. 언젠가는 당연히 유학 갈 거라고 믿고 있었기에 별말 없이 일상을 보내다가 아빠에게 확인차 물어봤다. "그래서, 나 유학 언제 보내줘?" 아빠는 당황스러워하며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냐?"라고 말했다. 오히려 억울해하는 눈빛이었다. 나는 무지무지 화가 난 채로, 엄청난 실망감을 가득 안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내가 모든 관계를 져버리고 스스로 동굴을 파고 들어가기 직전에 고등학생인 나는 해외연수를 갔었다. 중국어과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특이하게 영국, 그것도 수도인 런던도 옥스포드 대학이 있는 지역도 아닌 챌튼햄이라는 곳을 골라서 갔다(난 예나 지금이나 남들이 안 하는 걸 좋아하는 거 같다). 이미 나는 우리 반 아이들이 서로 시기 질투하는 거에 넌덜머리가 나있었던 거 같다. 그래서 반 아이들이 없는 영국으로 갔었는지도 모르겠다.
거기서 나는 또다시 힘들었다. 잘나가는 무리의 아이들은 한 아이를 싫어했고, 나는 그 아이와 무리 사이에서 갈팡질팡했고, 선생님들은 내가 남들보다 튀어 보이게 꾸미는 게 맘에 안 들었는지 대놓고 싫어하는 티를 냈다. 나는 그저 관심받고 싶었고, 친구들이랑 관계를 만들고 싶었던 건데, 뭐하나 되는 일이 없는 거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나라도 통제하고 싶었다. 숫자에 집착하고 싶었다. 시험은 결과가 있고, 몸은 체중이 있으니까. 내가 겪었던 좌절감이나 슬픔, 혼란스러움, 상실감은 도저히 내가 감당하기에는 어려운 것들이었다. 누구 하나 기댈 사람도 없었으니까. (물론, 내가 기대려 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내게 손을 내밀었던 사람들이 많았고, 나는 불안하다는 이유로 그들을 뿌리쳤다.)
감당하기 힘든 상실을 경험할 때면 나는 자꾸만 무언가를 찾으려 한다. 일도, 돈을 모으는 것도 그래서 더 몰두했을지 모른다. 상대방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감당하기가 두려웠으니까. 관계가 끊어진다는 것은 '어. 원래 아무것도 없었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거 같았다. 그럴 때 나는 '그치, 원래 그렇지 뭐. 인생은 혼자지.'라며 혼자만의 싸움을 시작하려 했을 것이다.
상실감을 경험하고 있는 나에게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말해 주었다. 없지 않았다고. 때로 행동은 마음을 다 대변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비록 떠나가더라도 관계를 위해 애썼던 순간만큼은 진심이었을 거라고. 그리고 내가 끝까지 마음을 다해서 전달한다면, 상대방이 어느 순간 알아서 돌아올 수도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내가 준 마음을 가지고 잘 살 거라고.
나는 그동안 눈에 보이지 않으면 없다고 믿었다. 무언가 정해지지 않으면, 아닌 거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건넨 무수한 마음들도 정작 결과물이 없으면, 그저 없었던 거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있다는 걸 믿어보기로 했다. 상대방의 마음은 분명 있었고, 나의 마음도 진심이었으니까. 더 이상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를 붙잡고 혼자 애쓰고 싶지는 않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