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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나리 Oct 21. 2023

[서른수집기] 섬으로 들어간 안전관리자 도현의 서른

사람이 없어 평화롭고, 사람이 없어 외로운 섬 생활


도현이는 서울에서 나고 자란 서울 토박이로, 서울 사람 특유의 상냥한 말투의 소유자다. 지금은 한 섬에 있는 회사에서 안전관리자로 근무하고 있는데, 평일에는 사람이 많지 않고 육지까지 나오려면 차로 1시간가량이 걸린다고 한다. 신소재공학도 도현이는 졸업하고 취업준비 기간이 길었다. 말은 안 했지만 꽤나 힘든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서른 살 도현이가 어떻게 섬 안의 안전관리자가 되었는지, 섬에서의 생활은 어떤지 인터뷰를 통해 들어보았다.


- 자기소개 부탁해~
30살 김도현(가명)입니다. 남들보다 좀 늦게 취업을 해서 안전관리자로 일을 하고 있고요. 외딴섬에서 홀로 지내고 있습니다.


섬에서 근무하는 안전관리자 

- 섬에서 살고 있는 거야?

응. 주중에는 출근해야 되는데 통근이 어려워서 섬에서 지내고 있어.


도현이는 키가 180이다.

- 일을 좀 늦게 시작했다고 했는데 그럼 일한 지는 얼마나 된 거야?

3월 말에 왔으니까 7개월째네.


- 안전관리자라는 게 어떤 건지 설명 좀 해줘.
대외적으로는 근로자가 안전하게 근로하고 몸 상한 곳 없이 집으로 보내기 위해서 존재하는 게 안전 관리자야. 그리고 안전관리자랑 세트인 게 보건 관리자인데, 질병이라든지 소음에 의한 난청, 각종 유해  화학물질 이런 걸 관리하고, 더운 날 추운 날 열사병이나 한랭 질환 같은 걸 발생하지 않게 관리하는 게 보건 관리자야. 안전보건은 거의 세트로 같이 한다고 보면 돼.


- 많은 일을 하고 있네.

응. 매일매일 점검 일지도 써야 돼. 안전은 서류가 가장 중요하다는 말도 있어.

 

- 전공하고는 다른 분야인데, 안전관리자를 하게 된 이유가 있어?

대학 졸업하고 다른 친구들처럼 반도체니 2차 전지니 이런 제조업 대기업들 많이 넣었는데 안 됐어. 서류를 몇 십 군데, 많으면 100군데 넘게도 넣었어야 되는데 사실 한 20군데도 안 넣었던 것 같아. 서류 시즌은 항상 서류를 이것저것 넣긴 했는데, 인적성이 되면 서류를 안 넣고 독서실 틀어 박혀서 인적성만 무지하게 풀어대고, 면접이 잡히면 그 기간 동안에는 또 서류 안 넣고 이러다 보니까 그게 부족하지 않았나 그런 생각도 들어.


취업준비기간이 길어지니까 너무 힘들더라고, 나는 운이 안 좋아서라기보다는 성격적인 문제로 잘 안 됐던 것 같아. 잘 안 됐을 때 후유증도 심하게 겪고 하다가 아예 새로운 걸 준비해보자 싶더라고. 중대재해 처벌법이니 이런 게 나오니까 새로 공부를 해보면 어떨까 싶었어. 이쪽에 사람도 많이 필요할 것 같아서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고 나서 일을 시작하게 됐어.

 

- 취업 준비생 때 좀 힘들었나 보다.

힘들었어. 우리 항상 그런 생각을 하잖아. 어렸을 때는 서울대학교 갈 줄 알고, 졸업하면 자동으로 삼성전자 같은데 취업할 줄 알잖아. 근데 그렇게 쉬운 세상이 아니더라고.
 
- 지금 회사 들어가기 전에도 일을 좀 했었지?
응. 졸업하고 바로 취업이 될 줄 알았는데 안 돼서 약국에서 알바를 한 2년 하면서 취업 준비를 했었어. 그러다 한 중소기업에서 일을 하게 됐는데 한 6개월 있다가 나왔어. 사장님이 너무 성격이 급한 사람이었어. 너무 화내고 짜증 내고 하니까 스트레스가 나한테까지 넘어오더라고. 그러고 나서 안전 관련 자격증을 취득한 다음에 한 공공기관에서 9개월가량 계약직으로 일을 했었어.

 

- 고생을 많이 했네.
나는 그래도 이제 탈출을 했는데, 아직 탈출하지 못한 청년분들이 아직 많을 거라 생각해. 그 친구들도 탈출할 수 있기를 바라.

 

뒤통수 너무 제 눈앞에 있는 거 아니에요?

- 섬에서 지내는 것의 장단점이 궁금해.

사실 다 양날의 검이야. 사람이 없어서 길이 조용해서 좋아. 그리고 사람이 없어서 외로워. 지역사회여서 다들 아는 형님의 아는 누나의 아는 할머니여서 말을 조심해야 돼. 대신 좋은 점은 사람들이 정이 많아. 다들 회사 일 말고도 개인적으로 농사를 짓고 횟집을 해서 이것저것 챙겨주는 게 많아. 그건 정말 감사하지.
 

- 어떤 것들을 좀 챙겨주셔?
애호박도 받고, 꽃게 잡았다고 꽃게도 주시고, 새우도 주시고, 옥수수도 좀 갖다 주시고. 또 여기가 농촌이다 보니까 점심에 같이 밤나무에서 밤 따러 가고, 재밌는 거 많이 하고 있어.
 

좀 힘든 부분은, 이 섬에서 나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다 보니까 주중에는 사실상 고립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 할 것도 없고. 요즘에는 공부나 운동을 하려고 노력 중이야. '하루에 만보라도 채워야겠다' 그런 생각으로 하고 있어. 친구들도 내가 자의로 안 만나는 거랑 상황적인 여건 때문에 못 만나는 거랑은 큰 차이가 있다고 느껴.

 

- 그렇구나. 서른 살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평화롭게 보내고 있는 것 같네. 서른이 되면서 고민하게 되는 것들이 있어?
일을 하게 되면 안정을 찾게 될 줄 알았는데 끝이 없더라고. 아직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야. 그리고 살이 많이 쪄가지고 살을 빼야겠다는 생각도 들어.
 

- 살이 거기서 근무하면서 찐 거야?
근무를 해서 쪘다기보다는 운동도 안 하고 많이 먹고 하니까 쪘겠지. 이거는 이 글을 읽는 사람 모두가 공감을 할 거야. 내가 먹고 내가 안 움직여서 찐 거지. 청바지도 입고 그래야 되는데 맨날 트레이닝 복, 밴딩 슬랙스 이런 것만 입으니까 점점 살이 찌는 것 같아. 청바지를 입기 위해서 운동 열심히 하려고 생각 중이야. 건강을 위해서도 그렇고. 하하하.


결혼을 생각하기엔 없어도 너무 없는 게 아닌가

- 오래 만난 여자친구가 있는 걸로 아는데 연애 사업은 잘되고 있어?

처음 사귈 때는 하나도 안 싸워가지고 '나는 안 싸울 수 있겠구나' 싶었어. 싸우는 사람들이 이해가 안 갔고 '여자친구랑 왜 싸우지?' 그랬지. 근데 요즘에는 좀 트러블이 좀 잦아진 것 같아. 내가 잘못한 부분들이 좀 많기도 한데 그래서 좀 미안해.


- 싸움이 좀 잦아졌나 보네. 만난 지가 얼마나 됐다고?

18년부터니까 6년 차네.

 

- 지금 섬에 있으면 롱디(장거리 커플)겠다. 주말에 와서 여자친구 만나고 하는 건 힘들지 않아?

조금? 근데 여자친구를 만나서 힘든 게 아니라 그냥 섬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게 힘들어. 이거는 확실하게 다른 거지. 들어갔다 나갔다 하는 거 자체가 힘들어. 하하.


- 연애 6년 차면 결혼에 대한 주변의 어떤 얘기도 좀 있을 것 같은데 결혼에 대한 생각은 좀 어때?
집에서는 별 얘기 없는데, 여자친구가 얘기를 좀 해. 올해 되고 나서 좀 잦아졌어. 여자친구랑 동갑인데, 빨리 준비를 해야지 되지 않냐고도 하고. 요새 결혼식장 잡으려면 1년 전에 계약해야 한다고도 하고.
 

- 그렇구나. 네 생각은 어떤데?

내가 늦게 일을 시작했다는 핑계로 사실 아직 모아놓은 돈이 별로 없어. 그러면 여자친구가 또 이렇게 얘기하지. "돈은 결혼을 했을 때 더 빨리 모은다". 주변에서도 그런 얘기를 많이들 하더라고. 근데 좀 없어도 너무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가장 중요하긴 한데 현실적으로 이게 맞나 그런 생각이 자꾸 드는 거지. 인생은 실전인데, 서로가 괜찮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인가?
  

- 여자친구가 결혼 얘기를 하는 게 좀 부담이 되기도 하겠다.

그건 맞아. 사실 미안한 마음이 부담감 안에 포함돼 있어. 여자친구는 좀 서두르고 싶은데 나는 미루고 싶어 하니까. 서두르고 싶어 하는 마음을 못 알아줘서 미안함이 있지. 지금은 서로 거리도 너무 멀고. 그렇다고 주말 부부 하기에는 또 약간 서운한 감이 있잖아?
 

날렵했던 대학시절 도현

성인병 걱정을 시작하다

- 서른이 되면서 예전하고 좀 달라진 게 있어?
건강에 대해서 진심으로 걱정이 되기 시작했어. (어떻게?) 체력은 아직 괜찮은데 살이 너무 많이 찌니까 건강이 우려가 되더라고. 흔히들 말하는 고혈압, 고지혈증, 뇌심혈관 질환, 당뇨 같은 게 올 것 같은 느낌인 거지. 가족력은 없는데 이런 식으로 자꾸 살찌면은 문제가 될 것 같아서 스스로 우려가 돼. 당장 빼야겠다 생각이 들어. 요즘에는 구내식당 가서도 밥을 4분의 1만 받아서 먹고 있어.

 

- 훌륭하네. 10년 뒤에 마흔 정도 되면 좀 어떻게 살고 있을 것 같아?

애를 낳았다면 초등학교에 입학했겠네 이제.

 

- 10년 뒤에 애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려면 지금 얼마 안 남았는데?

하하. 아니면 유치원 졸업쯤이 되겠네. 주변에서 얘기하는 거 들어보면 애들 키우는 게 너무 힘들다고 하더라고. 그러다가 애들이 커지면 잃어버렸던 내 삶을 조금씩 찾는 거에 행복감을 느낀대. 나도 마흔 쯤 되면 주위에서 "다 키웠네" 할 것 같고, 그러면 나도 '이제 좀 내 삶을 좀 찾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까? 육아 지옥에서 조금 벗어나지 않을까?
 

- 육아에 되게 적극적으로 참여할 건가 보다. 

적극적으로가 아니라 요새는 참여가 당연한 거지. 집안일 하는 게 당연한 것이다. 도와준다는 개념은 이제 없어졌잖아. 당연히 해야 된다라는 걸로 바뀌었잖아.
 

- 일적인 부분에서는 마흔이면 어떻게 돼 있을 것 같아?

일적으로는 좀 노하우가 생겨서 이제 설렁설렁 일하고 돈은 좀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 (좋은 목표네) 요새 MZ세대들 사이에서 하는 '적게 일하고 많이 벌자', '꿈은 없고요 놀고 싶습니다' 뭐 이런 거지.
 

- 마흔 살의 나에게 한마디 해준다면?

방금 한 말을 이뤄서 살고 있길 바란다. 적게 일하고 많이 벌고. 결혼 생활 육아 뭐 이런 거 하면서 너무 스트레스도 받지 말고 행복해라.

 

- 하하. 그 꿈 꼭 이루길 바랄게!



도현이가 섬에서 근무를 하게 됐다며 섬 이름을 얘기해 줬을 때, 나는 그 섬의 이름을 처음 들었다. 그리고 섬에서 일을 하는 도현이가 참 용감하다고 생각했다. 도현이가 섬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궁금했는데, 회사 사람들에게 각종 농산물도 지원받고 밤도 따러 다닌다니 아주 잘 적응하고 있는 모양이다.

도현이는 졸업을 한 후에도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찾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긴 취업준비기간 동안 도현이는 안전관리자라는 직업을 택했다. 차분하고 성실한 도현이에게 안전관리자는 정말 잘 어울리는 직업이다. 적게 일하고 많이 벌고 싶다고 했지만, 내가 아는 도현이는 일을 대충 할 성격이 못된다. 동아리 활동을 할 때에도 연습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나와 개근상을 탔던 친구이다. 분명히 엄청 열심히 자기 일을 해내려고 할 것이다. 길고 어두운 시간을 지나온 도현이가 자신의 분야에서 원하는 것을 모두 달성해 나가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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