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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나리 Oct 18. 2023

[서른수집기] 테니스 러버, 5년 차 기자 혜원의 서른

결혼생각이 없는데 엄청난 이유가 필요한가?


중학교 시절 혜원이의 별명은 기린이었다. 키가 150 언저리였던 우리보다 월등히 컸던 것이 그 이유였고, 지금도 중학교 친구들 중 가장 키가 크다. 경제지 기자 혜원이는 최근 행복주택에 당첨되어 혼자 지내는 것에 열심히 적응하는 중이다.


혜원이는 어릴 때부터 결혼 생각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요즘은 결혼에 대한 입장이 워낙 다양하다는 걸 잘 알지만, 나와는 다른 혜원이의 마음에 궁금증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인터뷰를 통해 혜원이의 서른에는 어떤 마음들이 있는지 들여다보았다.


- 자기소개 부탁해~

5년 차 직장인이자 경제지 기자이고, 일을 하면서 즐거움을 찾기 위해서 취미를 탐구하고 있는 서른 살 혜원(가명)입니다. IT, 게임 그리고 기업 전반에 대해서 취재하고 기사를 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외부로 취재 나가는 중인 혜원

흘러가는 일과에 취미 한 스푼

- 기자로서의 하루 일과는 보통 어떻게 돼?
보통 주말 동안에 내가 일주일 동안 어떤 기사를 작성할 건지에 대해서 기획안을 만들어. 그러면 월요일 아침 회의에서 기획안에 대해서 나누고, 그 주에는 내가 기획안 올렸던 기사들을 처리해. 그리고 그날 오전에 중요한 일이 있다거나 발표하는 것들이 있으면 언제 올라가야 되는지 정리해서 기사 올리고 이런 식이야.
 

- 주말에 기획을 해야 돼?  

그렇지. 월요일에 회의인데 생각보다 토요일 일요일이라는 시간이 되게 길고 그 사이에 변동이 너무 커. 그래서 보통 일요일 저녁쯤에 기획안을 짜고 월요일에 올리는데도 목요일 금요일 정도에는 또 그게 막 바뀌기 기도 해.
 

- 일하는 건 좀 어때? 잘 맞아?

기사를 쓰고, 사람들 만나서 인터뷰하고 하는 건 잘 맞는 것 같아. 근데 전화를 하는 게 좀 어려워. 예를 들어 빨리 사실 확인을 해야 되는데 지금 당장 만나달라고 할 수는 없으니 전화로 드리는 경우가 있어. 근데 보통 그런 경우에는 좋은 일보단 안 좋은 일이 대부분이야. 그럼 상대방이 어떤 표정인지 모르는데 그런 말을 전화해서 냅다 꺼내기가 좀 어려워. 근데 그렇다고 목적이 분명한 전화를 쓸데없는 말만 계속할 수도 없고. 본론만 얘기해야 되니까.

 

- 일을 하면서 다른 재밌는 것들을 많이 찾는다는 건 좀 어떤 의미야?
그냥 일이 좀 평범해. 특별히 크게 굴곡이 없달까? 계속 뭔가 그냥 흘러가는 것 같아. 그래서 좀 재밌는 것들을 찾게 되는 것 같아.


- 지금까지 흥미를 붙인 것들이 있어?

한동안 테니스에 엄청 재미를 붙여가지고 테니스를 한 2년 열심히 했고, 지금도 꾸준히 하고 있어. 요즘은 우리 집 앞에 수영 스포츠 센터가 있는데 다니고 싶어서 고민 중이야.


- 운동을 되게 좋아하는구나.

응. 좋은 것 같아. 확실히 람이 활기차진다고 해야 되나? 그전에는 사람이 되게 무기력했단 말이야. 그래서 좀 열심히 하려고 해. 그리고 올해 집에서 나와서 독립적인 공간이 생기면서 집안일하는 게 재밌다고 느껴. 청소도 좋아하고 그리고 가끔 요리도 하면 재밌고.


독립생활의 즐거움

- 이번에 행복주택 당첨 돼서 독립했지? 혼자 사는 건 좀 어때?

맞아. 이제 한 6개월 됐어. 처음에는 집이 고요한 게 적응이 안 되는 거야. 집에 있는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게 어색하고, 혼자 너무 적적하고 외로워서 계속 엄마 집에 가서 있고 그랬어. 그러다 익숙해지니까 혼자 있는 게 너무 좋더라고. 지금은 완전히 적응해서 이제 부모님 집 갔다 오려면 벌써 피곤해.
 
- 집안일이 재밌다는 게 신기하다! 

그냥 재밌어. 내가 혼자서 사니까 아무리 조금 하려고 해도 1인분을 하기가 쉽지가 않아. 아무리 조금 하려고 해도 세 끼는 먹을게 나와버리니까. 그래서 혼자 한 끼에 먹을 수 있는 걸 주로 해. 김밥 말아서 먹는 걸 되게 좋아해. 김밥은 재료들만 사놓으면 이번 주에는 이만큼 말아서 먹고, 다음 주도 말아서 먹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음식물 쓰레기도 안 나와서 너무 좋아. 김밥 마는 게 재밌어. 그게 아무 생각 없이 말기 좋아.

 

- 행복주택을 되게 열심히 넣었었잖아. 독립을 하고 싶었던 거야?
원래는 차로 출퇴근을 했는데 출퇴근 길에 몇 번 데인 적이 있었어. 눈이나 비가 너무 많이 오면 그때마다 회사 근처에 있는 숙소에서 잤단 말이지. 근데 여자 혼자 자는데 위험한 데서 자기는 좀 그렇잖아. 그러니까 한 번 자는데 10만 원은 들어. 한 달에 막 눈이 두 번 오고 그러면 20만 원이야. 집 하나 있으면은 눈 오거나 비 오거나 있을 때 거기서 자면 너무 좋겠다 싶어서 넣었던 거지. 그래서 만약에 내가 이게 안 되더라도 월세나 전세를 해서 집을 얻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고 그냥 행복주택 한번 넣어보고 되면 들어가고 안 되면 어쩔 수 없고 그랬던 거야.

 

- 너무 잘 된 거네. 행복주택 당첨되기도 쉽지 않다던데.
사실 내가 계속 넣다가 포기할 때쯤에 됐어. 한 3년 넣었는데 이게 너무 안 되니까 포기가 되더라고. 그래서 마지막엔 내가 넣은지도 모르고 까먹었었어. 너무 많이 넣어서 기억은 안 나지만 20번 이상 넣은 것 같아.

 

- 서른이 되면서 새롭게 하는 고민 같은 게 있어?
나이가 들면서 씀씀이가 너무 커지는 것 같아. 하하하. 자꾸 막 합리화를 해. '내가 이러려고 돈 벌지'라고. 하하. 뭐 쇼핑을 많이 하거나 이런 건 아닌데 '내가 이걸 지금 안 해보면 또 언제 해보겠어?' '갈 수 있을 때 많이 가야지' 약간 이런 느낌. 그래서 뭔가 여행에 생각이 좀 많아진 것 같아. 더 젊을 때 많이 가봐야 될 것 같은 거지. 재정 상황은 신경 안 쓰고. 하하. 그리고 남자친구랑 데이트할 때도 기본적인 비용이 올라가. 어제도 워터파크 갔다가 한우 먹고. 강원도 갔는데 또 한우 안 먹고 올 수 없잖아. 하하.
 

- 경험에 소비를 하는 거네. 젊을 때 해보고 싶은 것에 대해서.

응. 그런 것 같아. 예전에 예전에는 옷 사는 걸 좀 좋아했는데 요새는 쇼핑 거의 안 하고 그 돈으로 여행을 가거나 영화도 자주 보고. 아직 젊으니까 젊을 때 하자고 생각하지. 올해도 강릉을 한 세 번 갔다 왔나? 원래 여행을 좋아하는 편이라서. 가뜩이나 독립해서 나와서 돈 나갈 곳도 많은데 씀씀이가 커졌지.


결혼에 대한 큰 기대는 없어

테니스 대회도 나갈 만큼 테니스에 열정적인 혜원

- 너는 어릴 때부터 결혼에 대한 생각이 없다고 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좀 어때?

나는 내가 결혼을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 좋은 사람이 있으면 만나고 연애하는 건 좋은데, 결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거나 미래에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아직은 없는 것 같아.

 

- 혹시 이유가 있어?

결혼을 하고 싶지 않은 명확한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혼자 사는 것보다 결혼해서 사는 것의 이점을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어. 결혼을 하면 더 좋을 것 같은 지점이 있어야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텐데 나 혼자 사는 게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니까 그런 것 같아.

 

- 주변 어른들이나 친척 만나면 얘기가 좀 나오지 않아?

그렇지. 결혼식 가면 이제 친척들이 "다음 너 차례다", "언제 밥 먹으러 갈 수 있냐" 이런 말씀하시지. 그러면 기대하지 마시라고 하는데 그래도 기대를 하시는 것 같아. 사실 아직 결혼을 남들이 다 하고 나만 안 한 건 아니라 크게 스트레스는 아닌데, 나중에 나이가 더 들면 좀 스트레스받을 수도 있을 것 같아. 남들 다 하는데 너는 혼자 안 가고 지금 뭐 하니. 이런 거. 엄마도 별말 안 하는데 결혼하길 바라고 있지.

 
- 정말 포기하신 건 아니구나.

포기는 안 했어. 진짜 그 일말의 가능성을 늘 열어두고 있지.


- 그럼 혹시 '좋은 사람이 있다면 결혼할 수도 있지'라는 생각을 퍼센트로 나타내면 몇 퍼센트야?

10% 이하야. 한자리 수인 것 같아. 하하. 친구들이 "근데 나중 되면 결혼하고 싶어 지거나 막 마음이 바뀔 수도 있지 않아?" 이렇게 얘기하면 나는 꼭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도 될 것 같다고 해.

 

- 하하. 주변에서 가능성을 좀 열어놓고 싶은가 보다.

나는 가끔 왜 내가 결혼하고 싶지 않은지에 대해서 증명을 해야 되는지 잘 모르겠어. 하하. 왜 이해할 만한,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지. 그냥 결혼이 하고 싶고 빨리 결혼해서 아기를 낳고 싶은 사람도 있잖아. 그런 것처럼 나는 그냥 결혼 생각이 없는 건데, 꼭 남들이 다 납득할 만한 결혼이 하기 싫은 이유를 만들어야 되는 것 같아서.


- 결혼 생각이 없는 중요한 이유가 있어야 될 것 같은 부담이 있나 보다.

맞아. '일생일대의 중요한 사건이 있어서, 그걸 계기로 결혼을 하고 싶지 않다' 이런 게 있어야 될 것 같아. 그래서 예전에는 그냥 비혼주의라고 했는데 이제는 딱히 결혼 생각이 없다고 해. 비혼주의자면 서사가 있어야 돼. 내가 왜 비혼주의자가 되었는지. 하하. 고민도 한 적도 있다니까. 뭐 이유를 만들어야 되나? 하하. 그리고 친구들이 내 마음에 변화가 없는지 확인하려고 하고 희망을 찾으려고 하는 것도 있어. 하하.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삶

-  서른이라는 시기는 너한텐 좀 어떤 시기인 것 같아?
전에는 서른이 됐으니까 뭔가 해내야 된다는 그런 생각이 좀 있었거든. 근데 막상 돼 보니까 그냥 그런 것 같아. 작년에 나보다 더 나은 내가 되면 될 것 같아. 더 발전하는 내가 되면 그게 더 좋은 거지. 서른에 뭔가를 이뤄야 되겠다고 생각하면 힘든 것 같아. 예를 들어서 '서른에 얼마를 모아야 해' 같은 목표를 정해놨을 때에는 다른 사람들보다 내가 좀 뒤처지는 건 아닐까 생각을 했는데 그런 생각보단 기준점을 나로 삼아서 '그 전의 나보다는 더 나은 내가 된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면 괜찮은 것 같아.

 

- 더 나은 나는 어떤 난데?

일단 건강한 거. 그리고 작년부터 이제 조금 중요하게 생각했던 게 이게 시간 활용에 대한 거. 내가 몇 달 전에 인스타를 없앴거든. 다른 사람들이 뭐 하고 사는지 이런 것들을 보는 거에도 꽤나 많은 시간을 할애하더라고.  계속 이렇게 인스타 보고 이런 게 너무 시간 낭비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웠는데 그러니까 그 시간에 다른 걸 할 수 있더라고. 책을 본다거나 영화를 본다거나. 그래서 요즘은 어떻게 하면 시간을 잘 쓸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아.
 

- 마흔 살에 너는 뭐 하고 있을 것 같아?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열심히 일하고 있을 것 같아. 열심히 일하면서 또 취미생활하면서. 마흔 살이라고 거창한 것보다는 앞으로도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하고 싶어. 사소한 것에도 지금까지 행복했으니까 앞으로도 이렇게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결혼 생각이 없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혜원이는 결혼에 대한 큰 기대가 없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나 역시 어떤 큰 이유를 궁금해했기에 '비혼주의자는 서사가 필요해'라는 혜원이의 말이 더 강하게 다가왔다. 어떤 이의 삶의 방향에 이유를 찾기보다는 그저 그렇게 바라봐 준다면 서로서로 편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언젠가 다른 방향으로 간다고 해도 그저 응원해 주면 그만이다.

혜원이의 서른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워라밸이 훌륭하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일을 할 땐 열심히 취재를 해 기사를 쓰고, 나머지 시간엔 자신이 좋아하는 운동을 하거나 여행을 간다. 인스타를 지우고, 인스타에서 타인의 삶을 보는 시간 대신 자신에게 할애하는 시간을 늘렸다. 바쁜 일상 속에서 나를 챙기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를 느끼는 요즘이다. '나'를 기준으로 단단하게 중심을 잡아가려는 혜원이의 서른에 무한한 지지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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