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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나리 Oct 12. 2023

[서른수집기] 계약직 보험심사간호사 경희의 서른

그녀가 병동 간호사를 그만두고 계약직 보험심사간호사가 된 이유


경희는 동네 친구들 중 가장 일찍 취업을 다. 간호학과를 졸업해서 바로 병동 간호사가 됐고, 3년 2개월간 일하다 퇴사하고 지금은 대학병원에서 보험심사간호사로 근무하고 있다. 경희는 언제나 자신의 일에 진심이었다. 병동간호사로 일할 때도 물론 그랬고, 퇴사한 후에는 코로나 병동에 자진해서 들어가 근무를 하기도 했었다. 체력도 어찌나 좋은지 자진해서 한 달 내내 야간근무만 할 때에도 남는 시간에 그렇게 여행을 다니는 걸 보고 그저 신기해했던 기억이 난다.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직업을 갖게 된 경희의 서른을 수집해 보았다.   


-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네가 제일 잘 알잖아요. 하하. 유나리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만난 서른 살 친구 경희(가명)입니다. 간호학과를 졸업해서 병동 간호사를 하다가 지금은 사무직이 하고 싶어서 보험심사 간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2019년, 병동에서 근무하던 경희의 모습

보험심사간호사가 하는 일

- 보험심사간호사에 대해서 설명 좀 해줘.

병원 진료 내용 중에 보험 급여가 되는 게 있고 비급여 항목이 있는데 이걸 급여 기준에 제대로 맞게 쓰고 있는지 심사하는 일을 하는 거야. 우리 병원에서는 원무부 소속으로 있어.

 

- 병원의 전체 기록을 보려고 하면 양이 꽤 많을 것 같은데.

응. 그래서 팀 내에서 과를 나눠서 보고 있고 나는 세 개 과를 보고 있어. 문제가 생길 때도 있어서 가끔은 좀 부담스러워.


-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있어?

우리가 먼저 봤을 때는 급여가 맞다고 해서 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에 보냈는데 심평원에서 '이거 안 맞는데 왜 썼어?'하고 삭감을 보내는 거야. 그럼 우리가 이의 신청을 하는데 인정이 안되면 병원이 다 손해인 거야. 환자가 20% 냈잖아. 그것도 다 돌려줘야 돼. 쓰면 안 되는 걸 썼으니까.
 

-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었네. 책임이 엄청 크다.

물론 그걸 우리 책임이라고 말하진 않는데, 그래도 부담스러워. 금액이 커지면 무서워. 그런 거 아니면 일하는 거는 사실 내 업무 하면 되니까 괜찮아.

 

병동에서 평생 일할 줄 알았지 뭐야

- 대학병원에서 병동 간호사 일을 꽤 오래 했었지?

응. 대학병원에서는 딱 3년 2개월 일했고 지금 일한 지 1년 반 됐지.


- 보험심사간호사로 진로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있어?

'보험 심사를 해야겠다' 보다 '그만둬야겠다'가 먼저였어. 사실 난 처음에 일을 시작을 했을 때 이 일이 너무 잘 맞아서 10년, 20년, 수선생님까지 하고 병동에만 있을 줄 알았어. 그러다가 내가 일한 지 만 2년이 지나자마자 근무표에서 같이 일하는 5명 중에 내가 제일 높은 사람이 됐어. 그걸 차지라고 해. 신규 애들 들어오면 1대 1로 교육해야 하고. 그러면서 갑자기 업무가 확 몰리면서 '아 못하겠다.' 싶었어. 그때가 제일 힘들었어.

 
- 중간연차가 없는 거네. 

진짜 중간이 없었어. 수 선생님 밑에 10년 차 선생님 한 명 있었거든. 내가 나갈 때 4년 차밖에 안 됐었는데 병동 인원 스물몇 명 중에 내가 네 번째였어. 그때 다들 다른 일을 하더라도 경력이 3년은 있어야 어딜 갈 수 있다고 하니까 그러면 내가 딱 3년만 채우고 그만둬야겠다고 생각을 했지. 나는 퇴사하겠다는 말을 6개월 전에 미리 말했었어. 그만두기로 했으니까 그만둔 거야.


- 보험심사간호사를 선택한 이유는 뭐야?

병동에서 일할 때 선배 중에 한 명이 보험심사간호사 시험을 준비해서 바로 이직을 했었어. 그분이 운이 좋았던 것 같아. 그게 병동에 쫙 알려졌고 다른 선생님들도 공부하고 그랬었고, 나도 그만두면 그거 하면 괜찮겠다 싶었어. 그래서 그만두고 공부를 하게 된 거지.
 
- 보험심사간호사는 신규로 들어가서 급여도 기존보다 낮고 계약직으로 들어간 걸로 아는데, 그런 부분은 어때? 그래도 지금이 나아?

3교대 하던 거에 비하면 그렇지. 3교대 하는 사람들이 로망이 있어. 내 자리에서 일하고, 점심시간 1시간 지키면서 밥 먹고, 카페 가서 커피 들고 들어오는 거. 그걸 지금 하고 있으니까.
 

한편으로는 고민되는 부분도 있지. 첫 직장에 들어갔을 때는 병동 팀장까지 할 줄 알았으니까 미래에 대한 걱정이 없었어. 그러다 그만두고 나니까 처음엔 좋았는데, 보험 심사를 하겠다고 자격증까지 땄는데 취직이 안 되는 거야. 그게 되게 스트레스였어. 노는 게 몸은 편한데  마음의 짐이 있더라고. 그래서 괜히 알바도 하고 다른 것들을 했던 거 같아. 그러다 취직이 돼서 좋긴 한데, 한편으로는 안정적인 직장에서 열심히 일을 할 줄 알았는데 아직도 내가 앞으로 어디서 일할지 모르는 상황이니까 그게 고민이야.

  

한창 코로나가 심할 시기 코로나병동에 자진해서 들어갔던 경희(오른쪽)

재밌는 걸 하고 싶어!

- 하루 일과는 어떻게 돼?
6시 10분에 알람이 올려. 10분 더 누워 있어. 20분에 또 알람이 울려. 화장실이 있는 방에 가. 또 누워. 하하.


- 뭐야 알람을 왜 10분에 맞춰 놓는 거야? 하하하.
그때부터 눈을 뜨는 거야. 화장실 가서 씻고 준비하고 집에서 7시 15분에 나가. 7시 30분에 지하철을 타야 안 늦어. 지하철 타면 8시 20분쯤 도착해. 그럼 일 하다가 5시 반에 퇴근. 집 도착하면 6시 40분쯤. 근데 사실 출퇴근길에 앉아서 가면 금방이거든. 근데 서서 가니까 힘들어. 아니 지하철에 사람이 점점 늘어. 미쳤어. 왜 그래? 하하.


일 다 하고 퇴근하면 가방 내려놓고 옷 갈아입고. 7시 넘잖아. TV 보면서 막 밥을 먹어. 10시 반에 려면 10시에 누워야 돼. 왜냐면 30분은 이제 유튜브 봐야 되거든. 하하.


- 크로스핏도 열심히 했었잖아!

맞아. 크로스핏 하면서 일주일에 두세 번 무조건 운동을 했었는데 몸이 너무 안 좋아져서 그만뒀어. 스트레칭을 충분히 하고 운동을 해야 되는데 안 하다 보니까 몸이 망가지더라고. 요즘은 운동을 안 하니까 남자친구랑 더 많이 먹고 더 많이 놀고 그러고 있어. 


그리고 골프를 조금 하고 있는데 너무 재미가 없어서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재밌는 거 하고 싶어. 수영을 하고 싶은데, 출퇴근하는 데 한 시간이 넘게 걸리니까 좀 어려워. 그래서 집을 나간다고 했다가 엄마한테 계속 까이는 중이야. 나는 30살이면 당연히 밖에서 살 줄 알았어. 하하. 회사 근처에서 자취하고 싶어. 럼 거의 2시간은 버는 거니까. 남자친구가 또 회사 근처 사니까 끝나고 운동도 같이 하고 싶은데 할 수가 없어서 아쉬워.

어릴 적 경희는 어떤 서른을 상상했을까?


계획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더라

- 남자친구랑 결혼 얘기가 좀 나오는 것 같던데  

나이가 드니까 좀 현실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 원래는 26살 때쯤 결혼하고 싶었어. 나 약간 결핍이 있나 봐. 정착하는 게 너무 좋아. 하하. 그래서  언저리에는 오히려 나이가 좀 있고 지금 당장 결혼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났어. 이미 갖춰줘 있으니까 될 줄 알았지. 근데 그렇게 연애를 해보니 재미가 없더라고. 근데 지금은 한 살 차이 나고 완전 또래잖아. 재밌어. 그때는 그냥 뭔가 안정적이어서 결혼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으면 지금은 평생 이렇게 살아도 너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어. 평생 살 거면 재밌게 살아야지. 

 

- 구체적으로도 얘기를 하고 있어?

얘기는 하는데 그냥 정말 막연한 미래인거지. 왜냐하면 둘 다 계약직이고 둘 다 뭣도 없고. 마음은 있지만 지금 당장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관계. 엄마는 자꾸 내년에 결혼하라는데 둘 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지금 당장 결혼을 얘기할 수는 없으니까. 요즘 결혼하는데 1년 넘게 걸린다는데. 그걸 아니까 그냥 맨날 막연하게 얘기하는 거지.


아직 구체적으로 뭘 할 단계는 아닌 것 같아. 오히려 어렸을 때는 결혼에 대한 생각이 약간 비현실적이었던 것 같아. 오히려 아무것도 없으니까 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 지금은 진짜 현실적으로 결혼을 생각하려고 하니까 어려워. 근데 그건 있어. 결혼해서 애를 나을 거면 고위험 임산부가 되기는 싫어. 만 35세 출산을 하면 고위험 임산부거든. 그러니까 10달 걸리니까 만 34세에는 애를 가져야지. 사실 내가 아무리 계획을 해봐도 마음대로 되는 부분이긴 하지만.

 

- 연애나 결혼이나 흘러가는 대로 좀 지켜봐야겠네.
응. 흘러가는 대로 살기로 했어. 내가 아무리 인생 계획을 세워봤자 계획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더라고. 내가 지금 이러고 있었을지 누가 알았겠냐고. 하하.

 
- 그러게. 병동팀장일 줄 알았는데 말이야. 하하. 어딘가로 잘 흘러가고 있을 마흔의 너한테 말을 해줄 수 있다면 어떤 얘기를 해주고 싶어?

마흔 살에 뭘 하고 있을까? 예측이 안 돼. 또 다른 거 하고 싶다고 다른 거 할 수도 있어. 그때도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다 하면서 조금 더 도전적으로 살면 좋겠어. 지금 약간 쫄보야. 그때는 조금 더 도전적으로. 하하. 근데 또 그때는 도전적으로 살면 안 되겠다. 그때는 안정적으로 살아야지. 작은 도전만 하면서.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면 좋겠어.




언제나 풍성한 머리숱과 밝은 웃음으로 나를 맞아주는 경희는 3년여간의 병동근무를 마치고 '내 자리에서 일하고', '점심시간 1시간을 채워서 쉬고', '카페에서 커피를 사서 들어올 수 있는' 근무환경을 선택했다. 경희의 말처럼 아무리 계획을 세워도 삶은 더 재밌는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다. 하지만 방향키만 내 손에 있다면 결국엔 내가 원하는 곳으로 도달하지 않을까? 경희가 10년 뒤, 20년 뒤에 어디로 흘러가있을지 기대가 된다. 어디로 가있든, 경희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기만을 바란다.

경희의 인터뷰 제목에 '계약직'을 넣을까 말까 고민했다. 경희에게 더 그럴싸한 타이틀을 붙여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나도 같은 계약직이며, 세상엔 너무나 많은 서른 살 계약직들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계약직이라는 단어를 넣고 싶었다. 경희와 인터뷰를 하며 미래를 예상할 수 없는 불안함에 많이 공감이 됐다. 청년들이 마음 놓고 편안하게 일을 할 수 있는 안정된 일자리가 더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을 함께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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