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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만즈하우젠 포도주 들고 귀국

비탈진 밭에서 자란 포도가 더 달고 맛있다

by 오드리

'영국에서 취준 중인 딸과 럭키비키' 연재 마지막 글을 써 봅니다. 영국에서 돌아오는 길에 독일에서 2박3일 머문 이야기입니다.



독일 아스만즈하우젠이라는 곳에 친구가 한 명 살고 있어요. 그녀의 이름은 버티나이고 30년 전 룸메이트였습니다. 미국 코네티컷주 뉴브리턴에서 만났지요. 둘이 하우스 셰어를 했구요. 처음 만나면서부터 잘 통했던 친구였어요. 마주 앉아 옛날이야기를 해보니 함께 나눈 추억을 그녀가 훨씬 더 많이 기억하고 있었어요. 갓 30이 된 젊은 처자들의 무모하고 자유롭고 거침없었던 그 시절이 애틋하게 그리워지더군요.


아스만즈하우젠은 프랑크푸르트 남쪽, 라인강을 따라 자동차로 1시간 거리에 있어요. 작은 마을인데 주로 포도를 키워 포도주 사업을 하며 산데요. 라인강이 내려다 보이는 가파른 언덕에 줄지어 포도나무들이 서 있어요. 어찌나 가파른지 그 언덕을 '아스만즈하우저휄렌베르그' 즉 '아스만즈하우젠의 지옥산'이라고 부른데요.



들은 이야긴데, 평지가 아닌 비탈길에서 자란 포도들이 살기 위해 뿌리를 더 깊이 내리면서 더 튼튼하고 맛도 훨씬 좋대요. 고난은 인간에게도 그렇듯이 포도에게도 삶의 깊이를 주나 봐요. 비탈길이라 수확도 일일이 손으로 해야 해서 이곳 포도주가 더 비싸다고 합니다. 아는 사람만 찾고 아는 사람만 즐긴다고 하는데, 백포도주는 술을 잘 모르는 저도 반할 정도였어요. 나이 들면서 한 잔도 제대로 못하게 되었는데 밤마다 세 잔씩을 마셨으니까요. 척박한 환경을 이겨내고 자란 포도주라 생각하니 온몸으로 그 기운이 퍼지는 것도 같았구요. 술이 다 같은 게 아니었어요. 맛이 좋은 술도 있더군요.


이곳은 프랑스와 가까워(예전에 강 건너편은 프랑스땅이었다고 해요) 맥주보다는 포도주에 진심이었어요. 맥주는 아예 술 취급을 하지 않더군요. 버티나의 남편 악셀은 재택을 하면서 사업을 하는 사람인데 어찌나 포도주를 사랑하는지 대화의 대부분이 포도주 이야기였어요. 지하 창고에 그 지역에서 나온 포도주를 쌓아 두고 식사시간마다 우리가 딤채에서 김치를 꺼내 먹듯이 지하실에서 한 병씩 꺼내 마신다고 합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도 이곳 구경을 하려면 일단 포도주부터 마시라고 인사할 정도이니 알만하지요.


친구의 집은 커튼을 걷으면 라인강이 바로 코 앞에 흐르는, 오래된 호텔 건물입니다. 현재는 2층을 모두 사용하는데 손님을 위한 방도 두 개 있어요. 19년 전 여름에 딸과 함께 방문해서 묵었던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그 옆방에서 혼자 잤어요. 내 인생 모든 여행을 통틀어 최고급 스위트룸이었어요. (늘 호스텔에서 자는 수준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요) 이틀을 그 아늑한 방에서 창너머 라인강을 바라보며 여행의 피로를 다 풀었답니다.



산책을 좋아하는 버티나와 함께 포도밭 사이로 난 언덕길을 이틀간 걸었어요. 옛 친구와 끊임없이 담소를 나누며. 완벽한 힐링의 시간이었지요. 확 트인 하늘아래 도도히 흐르는 강을 따라 오르내리는 기다란 배들, 그 배로부터 통행료를 받았다는 잔재만 남은 낡은 성, 구름 사이로 빗살처럼 퍼져내리는 햇살, 새로운 봄을 기다리며 비탈길에 줄지어 서있는 포도나무줄기들. 나무로 세워 놓은 포도주 자판기옆 나무 의자, 라인강을 지키는 여신의 거대한 동상, 꼬불꼬불 올라가는 산비탈길, 버티나 부모님이 잠들어 계신 햇살 좋은 공동묘지. 중세에 지은 건물, 기찻길,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유쾌한 총각. 이제는 다 커버린 버티나의 젊은 아들들, 쥴리어스와 콘스탄틴.





돌아오는 날 악셀이 포도주 한 병을 선물로 주었어요. 생산자의 이름이 포도주 이름이고 (이 분은 산책하다 만난 적이 있어요) 아래에 생산지가 아스만즈하우젠으로 적혀 있어요. 위에 붙은 은색 라벨은 이 지역에서 맛으로 은상을 받은 표시랍니다. 더 깊이 뿌리를 내려 대지의 달콤함을 빨아들이고 하늘을 향해 더 활짝 가슴을 열어 태양의 에너지를 녹여 넣었을 붉은 맛이 궁금하네요. 그 포도주는 싱크대 깊이 보관중입니다. 딸이 귀국하는 날 딸 겁니다. 아스만즈하우젠 지옥산에서 자란 포도처럼 영국이라는 비탈진 밭에서 단단하고 멋지게 살아남은 기념으로! 우리 모두의 럭키비키한 삶을 위하여!!




에필로그 : 처음으로 연재라는 것을 해보았습니다. 역시 배수진을 쳐야 앞으로 나아가나 봅니다. 데드라인이 글을 쓰게 만들었어요. 연재하지 않았으면 12편의 이야기는 내 머릿속을 몇 번 들락거리다 사라졌을 겁니다. 글은 여행하면서 윤곽을 잡았고 내용은 돌아와서 손가락이 채웠어요. 적당한 사진이 없어 아쉽기도 했어요. 일단 이것저것 많이 찍고 보는 게 좋겠다는 결론입니다. 특히 포도주를 많이 찍지 못했어요. 알딸딸한 분위기에 빠져 잊었나 봐요. 연초에 카톡으로 날아온 덕담에 '올해도 럭키비키!'가 있었어요. 첨 들어보는 표현에 찾아보았죠. 썩 마음에 들었어요. 장원영도 그때사 처음 알았는데 긍정적 마인드가 인상적이더군요. 그래서 여기저기 써먹다가 제목으로 썼어요. 마음에 들어요. 여행을 마치고 생각하니 어쨌거나 저쨌거나 럭키비키입니다.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든 분들의 럭키비키한 하루하루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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