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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i Oct 29. 2024

씁쓸히 준비하는 식단의 기록

24/10/29 TUE. PM12:11

맛없는데 소중한 점심 식단의 준비과정을 기록하다. 

2024년 10월 29일 화요일 오후 12시 11분

배는 고프지만 최대한 버티면서 점심시간을 기다리는 중이다.

너무 빨리 먹으면 저녁식사 때까지 내 위장에서는 천둥이 칠 테니까.

우르르 쾅쾅.

냉동실에 있던 닭가슴살과 현미밥을 미리 꺼내 놓는다.

오늘은 '스파이시 커리' 맛.

사실 이 맛이나 저 맛이나 맛없는 건 똑같다.

이번엔 냉장실 문을 활짝 열어 야채칸을 탈탈 털기 시작.

그나마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게 야채뿐이란 사실에 눈물이 찔끔 난다.

오늘은 양파, 버섯, 브로콜리를 왕창 꺼낸다.

많이 꺼내봤자 배가 차겠냐만은 이 마저도 너무나 소중한 거지.

그리고 꺼내든 건 바로 나의 사랑 너의 사랑 '스리라차 소스'.

여전히 식단 사진엔 없지만 매 끼 등장하는 소스이다.

없으면 큰일 나 진짜.

소량의 올리브유를 넣고 야채들을 굽는다.

소금, 후추를 팍팍 넣고 구우면 나름 냄새가 그럴싸하다.

앞면이 익어 야채를 뒤집을 때쯤 닭가슴살을 전자레인지에 돌린다.

뭐 이렇게 계획적이냐고?

안 그래도 맛없는 거 따뜻하게라도 먹으면 그나마 나으니까.

물을 충분히 넣고 지은 현미밥을 데워 차리면 오늘의 식단 완성.

이렇게 맛없는 걸 먹는데도 우리 붕어씨들은 또 구경 중이다.

나 말고 다른 거 구경하라고. 왜 맨날 밥 먹을 때만 구경하냐고.

그래도 옆에서 쳐다봐주니 같이 먹는 것 같고 그렇다.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한 숟갈 먹는데 내 입에선 나트륨을 간절히 외친다.

안 되겠다. 오늘은 짭짤한 김 하나 뜯어야지. 

식단을 하게 되면 좋은 점은 한 가지 있다.

작은 음식에도 아주 엄청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

말이야 방구야.

어제 간식시간에 뺏어먹은 과자 1개는 정말이지 꿀맛이었다.

간식 먹으려고 식단 하는 사람 같고 그렇네.

다 똑같겠지? 나만 그런 거 아닐 거야.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1개만 뺏어먹을까? 

생각만 해도 즐겁다.

스스로가 조금 불쌍하고.

맛없는 밥이나 먹어야겠다. 

모두들 점심 맛있게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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