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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log Oct 15. 2024

우리는 슈퍼히어로

여기 세상에서 가장 멋진 영웅들이 있다. 그들은 마블 영화에 나오는 히어로처럼 건물 사이를 날아다니고 악의 세력에 맞서 지구를 구하지는 않지만 모두가 인정하는 용감무쌍하고 대담한 사람들이다.




2년 전 나는 <스쿨 오브 히어로즈>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한화생명과 박피디와 황배우라는 사회적 기업이 주관한 2030 젊은 암환자들을 위한 통합치유 커뮤니티 프로그램이었다. 우리는 '암치유 평등 학교'라는 슬로건 아래 같은 경험을 한 또래들과 소통하고, 심리상담, 직업 및 취업 교육, 쿠킹 클래스, 독서모임 등 고립이 아닌 연대와 소통을 나누었다.


유난히 어렵고 힘들었던 치료 중에 만난 <스쿨 오브 히어로즈>는 절망의 터널을 빨리 빠져나올 수 있게 도와준 유일한 빛이었다.


프로그램을 알게 된 것은 '암환자 뽀삐'라는 유튜버를 통해서였다. 그녀의 영상은 암치료의 고통이나 어떤 부작용에 시달렸는지에 포커스를 맞추기보다 밝고 유쾌하게 본인의 일상을 담은 것들이라 재미있었고, 부담이 없었다. 병원에 다녀온 이야기, 재발해서 치료하면서 겪었던 이야기도 있었지만 영상을 보고 나면 걱정 근심 대신 친한 친구와 한바탕 같이 웃고 떠든 느낌이랄까.

어느 날 그녀가 <스쿨 오브 히어로즈>라는 프로그램에 대한 소개를 해주었고, 며칠 망설인 끝에 지원서를 제출했다.


사실 처음 암에 걸리고 나서 환우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었다. 함께 정보도 공유하고, 위로와 응원을 나누며 오랜 친구보다 더 끈끈한 우정을 나누기도 했다. 하지만 정이 막 들었을 때 날아드는 부고 소식과 누군가 위독하다는 이야기들은 마음을 잡기 어렵게 만들었다. 다시 모임에 나가는 일을 쉽게 결정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나이도 더 들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도 조금은 의연해져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우리는 발대식 이후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만남을 지속하며 함께 운동을 하고, 사회복귀에 필요한 교육을 듣고, 여행도 갔다. 매일 주어지는 미션을 통해 일상을 공유하고, 자유롭게 소통하며 서로의 아픔과 어려움을 이해하고 공감했다. 가족도, 친구도 모르는 겪어본 사람만 아는 일이었기에 좋은 일은 더 많이, 슬픈 일은 한 마음으로 다독이며 힘든 시간을 이겨나갔다.


지금은 프로그램이 종료된 지 2년이 지났고 사회로 복귀하신 분, 새롭게 창업에 도전하신 분, 결혼을 하거나 출산을 하신 분도 있다. 우리는 '암'이라는 불청객 앞에 잠시 '쉼'을 선택해야 했지만, 우리의 삶과 도전은 거기서 끝난 것이 결코 아니었다.


나는 모든 프로그램과 전체 미션에 단 한 번도 빠짐없이 참석을 했고, 적극적이고 우수한 참여로 장학생으로 선발되었다. 제주도로 떠난 졸업여행에서 수료식이 있었는데, 졸업생 대표로 동기들에게 했던 이야기를 덧붙인다.






먼저 이런 좋은 프로그램을 기획해 주시고,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한화생명 관계자분들과 박피디와 황배우 모든 스태프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여러 번 치료와 수술을 반복하면서 어느 순간부터 그 화살을 제 자신에게 돌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내가 참을걸. 과자를 먹어서 그런가? 내가 햄버거를 한번 먹어서 그런가?
귀찮다고 운동을 며칠 쉬어서 그런가?
하면서 스스로를 책망했고, 친구들과 나의 삶을 비교하며 한없이 작아졌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이 프로그램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스쿨 오브 프로그램>을 하면서 암에 걸린 것이 내 탓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마음을 다스리는 법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외로웠던 길을 함께 걸어갈 든든한 여러분들을 만났습니다.

여러분, 제가 17년 동안 암과 동행하면서 확실하게 깨달은 한 가지가 있습니다.
내 상황은 변하지 않지만 내 마음은 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잘못으로, 내 잘못된 습관이나 내가 운이 나빠서 암에 걸린 거야.'
라고 생각하며 스스로 책망하고 있는 분이 있다면 절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우리는 남들보다 열심히 착하게 살다가 조금 일찍 암을 경험한 것뿐입니다.

이제 다시 일어서서 묵묵히 우리의 길을 갑시다! 사랑합니다.




바라건대, 이런 프로그램들이 더 많아져 상실과 고립에서 슬퍼하고 있는 환우들에게 힘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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