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과 대구 여행 중이었다. 차가 빨간 신호에 멈춰 섰고, 재미있는 간판 하나가 눈에 띄었다.
“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팻말이 붙어있는 건물을 찬찬히 올려다본 후에야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곳은 교회였고, 전광판 속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는 문구에서 ‘하’ 자만 불이 꺼진 상태였다.
‘재밌네.’
차는 다시 속력을 내며 달리기 시작했고, 나는 그제야 피식 웃음이 났다.
문득 '하느님도 나를 사랑한다는데, 정작 ‘나님’은 ‘나’를 사랑하는가?'
마음속에 물음표가 떴다.
그러고 보면 내가 나를 사랑하기 힘든 세상이다. 우리는 인생의 시기별로 이루어야 할 과업들을 정해 놓고, 그 경로를 조금만 벗어나거나 늦기라도 하면 주눅 들게 만드는분위기가 있다. 여기에는 대중매체나 소셜 미디어도 한몫하는데, 우리는 꽤 자주 타인의 관심을 갈구하며 남의 시선에 스스로를 가두기도 하고 그에 따른비교, 질투, 걱정, 근심, 불안 등으로 공허해한다. 특히 티브이나 SNS 속에는 잘나고 근사한 사람들이 많은데, 몇 번 을 다시 태어나야 그런 갓생이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우스갯소리로 친구가 자주 하던 말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처음 만나면 딱 세 가지를 물어본다고 한다.
이름, 나이, 직업
자신은 이름 빼고 나머지 두 개가 자신이 없어 새로운 모임에 잘 안 가게 된다고 했다. 나 역시 이름 하나만 자신 있던 시절이라 그 말에 백 번 공감이 갔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나를 좋아하지 않을 이유는 많았다. 나이는 점점 차는데 건강상의 문제로 공들여 일군 것들은 모두 도로아미타불이 되었고, 앞날을 장담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나를 사랑할 이유도 몇 개쯤 찾을 수 있었다. 바람 앞에 등불이지만 여전히 굳건히 버티고 있고, 아슬아슬 외줄 타는 인생이라 생각했는데 외홍잽이*, 허궁잽이*, 칠보 다래치기* 등 온갖 기술을 선보이며 그럭저럭 살아내고 있었다.
무엇보다 아무리 하찮고 초라해 보여도,하루 종일 생산적인 일 없이 숨만 쉬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탈하게 오늘을 잘 넘긴 ‘내’가 아니겠는가?
이불 밖은 위험하다는데,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기나긴 인생 살아가기 힘들 것 같다.
대지를 박차고 두 다리로 우뚝 서 있는 것은 중력을 거스르는 놀라운 일이다. 밤새 안녕한 일도 더 이상 당연하지 않다. 매일 나오는 뉴스만 하더라도 무서운 사건 사고들로 가득하지 않은가.
어떠한 장치에도 의존하지 않고 자유롭게 호흡하고 내뱉을 수 있는 일, 멀쩡히 손과 발을 사용하며 생활할 수 있는 일은 어쩌면 가장 평범한 기적일지도 모른다.
인생을 살아갈수록 세상에 당연한 일은 없다고 느낀다. 나도 아무렇게나 우연히 이 세상에 태어난 게 아니다.
한번 본 적도 없는 신, 만물을 창조했고 세상을 구한 전지전능한 구세주도 나를 사랑한다.
'그런데 나는? 나는 이 세상 누구보다 나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가?'
조용히 물어본다.
* 외홍잽이: 줄 위에 선 상태에서 한쪽 다리를 줄 아래로 내렸다가 다시 위로 올리는 동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