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치열하게 아름다운 시기
어른들의 애환과 그리움을 담은 노래는 '서른 즈음에'라고 생각한다.
어른들이라고 칭한 이유는 아직 내가 30살을 겪어보지 못했고,
이 노래를 슬프게 흥얼거리는 부모님이 기억에 남아서이다.
그렇다면 20대의 쓸쓸함과 외로움을 표현하는 노래는 단연코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아닐까.
마치 영원할 줄 알았던 그때의 어린 나, 서투르게 일하고 사랑하고 상처받았던 나.
그 어렸던 스물다섯의 나는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년의 취업 준비 끝에 신입사원으로 첫 발을 내디뎠다.
이 날이 오지 않을 것만 같았는데, 하나의 인생 숙제를 끝내니 속이 후련했다.
하지만 낮은 연봉, 높은 일의 강도, 회사의 암울한 비전으로 회의감을 느꼈고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직 준비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직장인과 취준생의 이중생활로 고통받는 날은 늘어갔다.
심지어 타지생활의 어려움을 나눌 이도 곁에 없었다.
가족과 친구 없는 외로움 속에 혼자 견뎌내는 수험생과 직장인의 삶이 버거웠던 것이다.
스트레스 관리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예전의 해소 방식으로 회귀하려 했다.
가장 쉽고, 빠르고, 싼 방법인 먹는 것이었다.
그래, 먹는 것까지는 좋다. 잘 먹어야 공부할 때 에너지도 돌고,
그 힘으로 업무도 수행할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문제는 쌀 한 톨도 들어가지 않은 식사였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빠르게 독서실에서 식빵 2개에 잼을 발라 먹고,
약 3시간 정도 공부하고 나면 부리나케 회사로 달려갔으며,
점심시간엔 편의점에서 파는 빵과 우유를 먹으면서 공부 그리고 6시 퇴근.
저녁 먹고 졸면 안 되니까 최대한 배부르지 않게 서브웨이에 아메리카노,
11시까지 공부하고 귀갓길 하루를 아이스크림으로 마무리했다.
이 패턴으로 생활하다 보니 점점 소화기관에 무리 가는 것이 느껴졌다.
앉아있으면 더부룩했고, 몸이 차가워졌다.
'나 이직할 때까지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에 막막하고 외로웠다.
고통을 길게 느끼고 싶지 않아 최대한 빠르게 성과를 내려했고,
이중생활 6개월 만에 원하는 회사로 이직할 수 있었다.
'합격을 축하합니다.'라는 글귀를 보자마자 갑자기 삼겹살에 볶음밥, 김치찌개에 냉면까지 먹고 싶었다.
마음속 깊이 자리하고 있던 불안함이 해소되자마자 내 몸의 소리에 귀 기울였던 것이다.
살다 보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원하는 일을 하면서 만족스러운 대우를 받고,
스트레스받으면 좋아하는 취미로 해소하고,
건강한 신체를 위해 운동하고 때로는 소울푸드로 위로하는,
그런 완벽한 삶을 살 수 있다면 어느 누가 걱정이 있을까.
하지만 인생을 돌아봤을 때, 가장 치열하게 아름다웠던 시기를 뽑자면 이직 준비를 했던 스물다섯이었다.
한 치 앞도 몰랐지만, 그 하루를 보내려 노력했던 모습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자양분이 되었다.
'나 이렇게 해냈잖아.', '어려워도 할 수 있잖아.'라며
쉽지 않은 일에도 도전하는 나를 발견한다.
영원히 불안할 줄 알았던 스물다섯,
미성숙해서 찬란했던 그때를 회상하며
또 다른 도전을 할 힘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