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에서 모집한 ‘자연과 한 달 살기’라는 프로그램에 운 좋게 참여할 수 있었다. 자연을 좋아하는 회원들과 함께 4주 동안 자연을 체험하며 배우는 귀한 시간이다. 첫 번째 시간은 ‘잡초는 약초다’의 저자가 살고 있는 원주를 방문하였다. 잡초가 얼마나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 절실하게 깨달을 수 있는 기회였다.
세 번째 모임인 오늘은 회원 중 한 분이 운영하는 ‘맹추농장’을 견학하는 날이다.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맹추’라는 우스꽝스러운 이름이 붙은 이유는 도대체 뭘까? 못 생겼거나 아니면 똘똘하지 않고 실속이 없어 붙여진 이름일 텐데. 차로 서울을 빠져나가니 공기부터 다르게 느껴졌다. 넓은 도로를 달리다가 갑자기 좁은 길로 꺾어들면서 숲이 보이기 시작했다. 숲을 지나자마자 보이는 아담한 벌판에 비밀 요새처럼 숨어있던 ‘맹추’라는 푯말이 서 있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뜻밖의 장소에 위치한 소박하고도 예쁜 농장이었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밭에는 초록 식물들이 해맑은 얼굴을 쏙쏙 내밀며 낯선 이들을 맞이했다. 특이하게도 재배식물보다 잡초로 보이는 것들이 더 많이 눈에 들어왔다. 잡초를 일부러 재배하는 것일까? 아니면 일손이 모자라 그대로 방치시켰나? 할 정도였다. 만일 농사를 전문으로 하는 이들이 보았더라면 혀를 끌끌 차고도 남을 터였다. 아마 내가 농부였어도 그런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아, 이 사람아. 밭에 풀을 심은 건가, 농작물을 심을 건가?’
‘그려, 저토록 무성한 것을 그대로 놔두면 어떡하려고? 쯧쯧!’
‘글쎄, 냉큼 저 풀들을 모조로 뽑아 버리라고!’
농막에서 농장주의 강의가 펼쳐졌다. 가족의 건강을 책임지기 위해 농장을 시작했다고 한다. 모든 식물 재배는 화학비료 없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옛 농법을 따르며 생긴 그대로 경작하자는 게 그의 철학이었다. 비록 수확량은 적어지겠지만 우리 토양을 살려야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할 수 있다는 의지가 확고했다. 화학비료로 인해 우리의 토양이 얼마나 심각하게 오염됐는지 실상을 듣고나니 밥상을 위협하는 현실이 두려워지기도 했다.
비로소 ‘맹추농장’이라는 이름에 담긴 정확한 뜻이 이해되었다. 농약을 치지 않고, 일부러 뽑아내지 않으니 잡초는 더욱 튼튼하게 자랄 수밖에 없었다. 강의를 들은 회원들은 일찌감치 밀짚모자와 앞치마에 작업용 장화까지 신고 제법 농부의 흉내를 내며 밭으로 나갔다.
변소에서 나오는 오물을 활용하여 거름으로 만드는 과정을 눈으로 보고 자연퇴비 만드는 법도 직접 체험했다. 토마토 모종을 줄 맞춰 심은 다음 듬성듬성 돋아난 식물 구경을 했다. 우리나라 전국을 다니며 찾아낸 토종 식물들이었는데 파, 양파, 마늘 등 우리 토종은 크기가 아주 작아 신기했다.
점심때가 되어 잡초부침개를 만들 준비를 서둘렀다. ‘잡초는 약초다’라는 강의에서 5월까지의 잡초는 몸에 보약이 된다고 들었기에 낯설지 않았다. 단, 건강한 토양에서 자란 잡초일 경우에만 해당이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소리쟁이, 지칭개, 민들레, 질경이, 고들빼기 등 잡초라 불리는 온갖 풀들을 뜯었다. 그것들을 깨끗이 씻어서 밀가루를 약간 넣고 조물조물 반죽하여 프라이팬에 한 국자를 퍼 올렸다. 기름과 만나자마자 지지직 소리를 내며 금세 노릇한 부침개 한 장이 구워졌다.
한 입 떼어 맛을 보는데 이게 웬일인가? 쌉싸름하면서도 고소함까지 갖춘 독특한 맛의 극치가 입안에 퍼졌다. 합창하듯 탄성을 지르는 회원들 얼굴에도 만족스러움이 번졌다.
“와우, 정말 약초네. 기가 막힌 맛이야.”
얼마나 맛이 특별했으면 감정표현에 인색한 남편까지도 탄성을 지르며 평가단에 합류했을까?
“와, 진짜 보약이네요. 몸이 건강해지는 것 같아요.”
맛에 대한 느낌을 이 정도로 길게 표현했다는 것은 가히 일품요리라 인정한다는 뜻이다.
무분별한 농약 사용으로 산성화 된 토양을 바로 잡아야만 우리 먹거리가 건강해질 수 있다는 것을 이번 강의에서 알게 되었다. 소중한 개인 공간을 대가 없이 공개해 준 농장주의 베풂이 더없이 고마웠다. 조금이라도 나누고자 하는 주인장의 넉넉한 마음으로 토종 파 한 뿌리, 양파 한 개, 마늘 한쪽, 고추장아찌를 받아 들었다. 농장을 나서며 나는 마음속으로 주문했다. 주변의 온갖 유혹에도 초심을 잃지 말고 무농약 재배를 끝까지 이어나가기를. 또한 우리 토양을 순화시키는 계몽운동에도 적극 앞장서 주기를 바란다고.
고들빼기처럼 쓴맛을 즐기는 아버지를 위해 얻은 잡초 꾸러미를 들고 당장 친정으로 향했다. 요즘 기력이 많이 떨어진 아버지께 보약을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급했기 때문이었다.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잡초 구경부터 시켜드렸다.
“자, 기대하세요. 지금부터 제가 몸보신 음식을 해드리겠어요.”
꾸러미를 펼치자 신문지를 이불 삼아 누워있던 쑥부쟁이를 비롯한 완전 무공해 잡초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 힐끗 들여다보던 아버지는 이내 실망하는 눈치였다. 별 대수롭지도 않은 걸 가지고 와서 웬 수선인가 하는 표정을 지었다.
‘뭘 이런 걸 가지고 부침개를?’
결국 아버지는 참지 못 하고 속내를 비치셨다. 보신이라 하니까 더덕이나 인삼을 생각하셨을까. 아니, 인삼은 아니더라도 도라지 정도쯤은 기대하신 모양이었다.
드디어 윤기 자르르 도는 부침개를 식탁에 올렸다. 마지못해 젓가락질을 시작한 아버지는 오히려 밥그릇을 멀찍이 제쳐두고 부침개를 두 쪽이나 드셨다.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건강한 땅에서 씩씩하게 자라난 보약을 잡수신 아버지가 지금보다 더 건강하셨으면 하고 바랐다.
“얘야, 약초부침개가 아주 신통방통하네. 몸이 아주 거뜬해졌어. 그 어떤 보약보다 몸에 잘 맞는 것 같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