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이려고 속인 게 아니에요...
평소 남편의 헤어스타일은 상투 머리였다. 자영업을 하는 사람이라 직장인처럼 평범한 스타일은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가게에서도 꽁지머리 사장님으로 불렸다. 그렇게 길게 기른 머리를, 항암을 하면서 잘라야 했다. 긴 머리를 고수해 왔으니 이제 짧은 머리도 나쁘지 않았다. 다행히 남편은 얼굴보다 두상이 고왔다. 머리를 빡빡 밀고 병실에 오면서 남편이 자신의 민둥머리를 쓰담쓰담하더니 애들 어릴 때 생각난다고 했다. 나도 그때가 생각나서 서로 한참을 그 이야기로 하루를 보냈다.
큰애가 다섯 살 쯤이었다. 평화로운 일요일 아침 늦잠을 느긋하게 자고 있었다. 애들이 거실에서 소꿉놀이하고 있는 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둘이 연년생이라 짝짜꿍 잘도 놀았다. 그 평화로운 일요일, 침대에서 뒹굴고 있을 때, 큰애가 안방으로 들어왔다. 내 얼굴을 양손으로 잡고 엄마를 불렀다. 나는 너무 놀랐다.
“앗아아아아아아아!”
큰애 얼굴을 보고 나는 비명을 질렀다. 남편은 침대에서 데굴데굴 구르면서 웃었다. 이게 웃을 일인가. 큰애 머리가 듬성듬성했다. 쥐가 뜯어먹어도 그렇게 듬성듬성하지 않을 정도였다. 현대미술 같은 아방가르드한 큰애 머리였다. 뒤이어 둘째도 안방에 들어왔는데 둘째도 가관이었다. 앞머리는 있으나 마나였고 뒷머리는 왼쪽 반만 있었다. 둘이 거울 앞에서 미용실 놀이를 했다는 것이다. 가위는 문방구 가위로 서로 잘라줬다고 했다. 두 딸은 서로 바라보면서 웃었다. 한참을 웃고 의기양양하게 엄마를 쳐다봤다. 팬티에 난닝구만 입은 두 자매. 머리가 쑥대머리가 된 채 내 앞에 있었다. 남편은 우리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은 게 어디냐며 나를 위로했다.
평화로운 일요일 아침은 개나 주고 서둘러 두 딸을 데리고 미용실에 갔다. 미용실에서 삐져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큰애 머리는 살리기 어렵다고 삭발해야 한다고 했다. 팔월 초파일에 애들 머리를 삭발해야 이쁘게 잘 자란다고 친정엄마가 삭발을 강요했었다. 그런 미신을 뿌리치며 애들 머리를 삭발하지 않았다. 배냇머리 그대로 기르던 머리였다. 이런 일로 여자아이 머리를 삭발하게 될 줄 몰랐다. 그나마 둘째는 짧은 단발로 머리를 다듬었다. 큰애는 삭발하더니 더 씩씩해졌다. 난 울었다.
어린이집에서 감기가 유행했다. 씩씩해진 큰애도 결국 감기에 걸렸다. 그냥 감기약만 먹으면 나을 줄 알았는데 기관지 염증이 있다고 며칠 입원해서 상태를 살펴보자고 했다. 큰 병은 아니지만 입원할 정도인가 싶어 걱정이 앞섰다. 6인실 병실에서 환자복을 입은 큰애를 보니 안쓰러웠다. 기관지 치료를 위해 투명 플라스틱 마스크를 쓰고 누워 있었다. 병실 옆 침대에서 할머니가 커튼을 걷으며 나를 불렀다.
“애기엄마... 힘내. 살다 보면 다 지나가고 그래.”
나는 할머니의 위로에 그냥 대답만 했다. 그런데 지나가는 어린 환자 엄마들도 다들 힘내라고 엄마가 버텨야 한다며 강해지라고 했다. 어리둥절했다. 다들 ‘왜 나안테 따뜻하게 위로하지?’라고 생각했다. 한참 후 병실에 누워있는 큰애를 보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삭발을 한 애가 호흡기를 끼고 자리에 누워 있는 모습이 누가 봐도 소아암 환자였다. 그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다 아니라고 변명할 수도 없었다. 환자 보호자들이 가져다주는 귤이며 오렌지 주스며 박카스를 낼름낼름 다 받아먹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설명할 수 없었다. 그들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을 보고 있으면 더 사실대로 말하기가 어려웠다. 3일 뒤에 큰애 감기가 많이 호전되어 퇴원했다. 야반도주하듯 아침에 일찍 짐 싸 들고 튀었다.
부쩍 건강해진 큰애는 삭발한 머리가 부끄럽지도 않은지 힘센 형으로 동네 놀이터를 평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