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男) 다른 아빠의 육아 도전기 - 1. 나는 노는 걸 좋아했다.
누구나 좋아하는 것 하나쯤은 있다. 어릴 때부터 좋아했거나 최근에 좋아하게 된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없다면 너무 삭막한 인생 아닌가) 나는 여전히 음악 듣는 걸 좋아한다. 만화책을 보는 것도 좋아한다. 축구는 풋살로 바뀌었다. 결혼 초기에는 좋아하는 놀이를 하는 것이 어려웠다. 회사를 다녀오면 아이와 놀아주고 아이와 함께 잠든 적이 많았다. 자연스레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할 시간은 거의 없었다. 출퇴근하면서 음악을 듣는 것이 걱정 없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놀이였다.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내가 원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음악을 듣는 것을 제외하면 좋아하는 놀이를 할 수 있는 시간은 주말에 아이가 낮잠을 잘 때, 또는 아이가 잠든 밤이었다.
아이가 잠들었을 때 가장 많이 했던 것은 웹툰 시청이었다. 아이를 재우려고 같이 누웠다가 잠들면 웹툰을 봤다. 웹툰은 매일 다른 장르의 만화가 업로드되어 질리지 않았다. 매주 새롭게 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지금은 웹툰을 안 본다. 시간을 너무 많이 뺏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매일 업로드되는 것을 보기 위해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잠들기 전까지도 웹툰을 보는 내 모습이 어느 순간 초라해 보였다. 웹툰을 끊고 나서 시간을 많이 아꼈다. 대신 단행본 만화책을 보곤 한다. 집에 있는 유일한 만화책은 ‘원피스’라는 일본 만화다. 고등학교 때부터 보던 만화인데, 만화방에서 빌려보다가 소장을 하려고 한 권씩 모으기 시작했다. 완결이 되지 않은 만화라서 새 책이 나올 때마다 설레면서 구매를 한다. 예전처럼 매일 보지 않고 가끔 보지만 그 순간만큼은 만화 속에 푹 빠지곤 한다. 그 시간이 참 소중하다.
매주 일요일 새벽 풋살을 한다. 아파트로 이사 오면서 아파트 풋살 동호회에 가입했다. 군대를 전역한 이후로 축구나 풋살을 할 기회가 없었다. 군대 전역할 때까지 축구를 하던 나였는데, 전역한 후로는 축구를 안 했다. 그 당시에는 축구보다 당구치고 춤추고 게임하는 게 더 신났다. 더 자극적인 것들이 나를 이끌었다. 축구를 할 기회가 없었던 게 아니라 기회를 만들 생각조차 안 한 것이 더 정확하다. 대학교에는 같이 축구를 할 친구가 없다는 핑계, 고등학교 친구들은 다 멀리 떨어져 있다는 핑계 등으로 생각조차 안 했다. 풋살을 하면서 예전 기억들도 많이 떠올랐다. 체력은 바닥을 쳤지만 땀을 흘리면 기분이 좋다. 매주 운동을 하면서 체력도 조금씩 좋아지고 삶에 활력이 생겼다.
본격적인 육아를 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냈다. 아이들을 어린이집과 학교에 보내고 집안을 정리하면 다시 아이들을 데려와서 저녁까지 함께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비슷한 일과를 보내고 주말이 되면 더 많은 시간을 놀아줘야 했다. 에너지가 바닥나고 힘들어도 매주 풋살을 하면 다시 에너지가 가득 찼다. 새벽 6시부터 8시까지 풋살을 했기에 마음도 편했다. 동호회 대부분은 기혼자다. 일요일 새벽 6시부터 8시는 눈치를 안 봐도 되는 시간이다. 토요일에 가정에 충실하고 일요일 새벽에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갖는다. 아침 8시면 끝나기 때문에 부담이 적다. 아내 눈치를 안 봐도 되고 운동까지 하니까 대부분 좋아한다. 나는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풋살은 계속할 것 같다.
결혼하고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많이 줄었다. 지금은 아이가 크면서 시간은 다시 늘어나고 있다. 지금도 좋아하고 있는 세 가지는 영원한 동반자가 될 것 같다. 몇 년 뒤에는 노는 것들이 하나씩 추가될 것이다. 열정과 흥미를 가지고 좋아하는 것들을 계속 만들 예정이다. 우리 아이들도 자라면서 좋아하는 것이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할 거다. 그런 시간 속에서 노력과 끈기, 흥미와 열정을 가지고 좋아하는 놀이를 하나의 업(業)으로 만들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일본어 ‘오타쿠’를 한국식으로 발음한 ‘오덕후’를 줄여 ‘덕후’라 부른다. 과거에는 집 안에만 있으면서 취미 생활을 하는 사람,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지금은 어떤 분야에 몰두하여 전문가 이상의 열정과 흥미를 가진 사람을 의미하며 긍정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덕업일치’라는 말이 있다. 간단하게 얘기하면 덕질(덕후의 취미생활을 표현한 말)과 직업이 일치했다는 의미다. 덕후 중에서도 관심사,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은 이들을 보고 ‘덕업일치 했다’고 얘기한다. 내가 대학교를 다닐 때까지만 해도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면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좋아하던 것도 싫어진다고 했다. 취미가 직업이 되는 순간 일이 되어 버린다. 취미는 하고 싶을 때 하고 쉬고 싶을 때는 쉴 수 있지만, 일은 좋고 싫고를 떠나 꾸준히 해야 한다. 이런 점만 봐도 덕업일치는 꿈도 못 꿨다. 주변에도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들을 못 봤다. 다들 취미는 취미일 때 취미라고 했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다르다.
덕업일치를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중 대표적인 사람들이 유튜버이다. 유튜버들 대다수는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을 방송하면서 자연스럽게 직업이 된 케이스다. 먹방, 게임, 음악, IT기기 리뷰, 뷰티 등 방송을 보면 그 콘텐츠가 좋아서 시작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페이스북 CEO인 마크 저커버그도 컴퓨터 덕후였다고 한다. 하버드 대학생만 이용할 수 있었던 페이스북은 사용자가 확대되면서 전 세계인이 사용하는 SNS가 되었다. 덕업일치를 이룬 대표적인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엄청난 노력, 프로 의식, 강인한 정신력이 필요하다.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성공을 할 수 없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결과일 뿐이다. 유튜버들도 많은 공부와 노력, 도전을 했을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그때는 어떤 시대가 도래할지 알 수 없다. 지금과는 다른 시대를 살고 있을 것이다. 내가 대학생 때와 지금 대학생들이 맞이하는 시대가 다른 것처럼 말이다. 우리 자녀들은 좋아하는 것을 많이 경험해보고 그 안에서 덕업일치를 하나쯤 가져보면 멋진 인생이 되지 않을까. 꼭 직업을 하나만 가질 필요는 없으니까. 이미 N잡러가 많은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