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2. 뉴욕에서 아이가 좋아했던 것들

아이는 쉽게 울지만 쉽게 웃는다. 뉴욕에서도 그랬다.

by yurikim


맨해튼에서 아이가 가장 좋아할 만한 걸로 자연사박물관을 예상했다. 거대한 공룡뼈! 정답에 가까웠다. 하지만 의외로 많은 것들을 아이는 즐겼다.



첫째로 자유의 여신상과 강을 둘러볼 수 있는 유람선 관광을 좋아했다. 남자아이라서 그랬을까? 운송기구에 대한 호감이 높았다. 유람선 탑승 시간을 기다릴 때도 즐거워했다. 선착장에서 오가는 배를 보며 기다렸고, (꽤 오랜 시간이었지만 짜증 없이 기다려주었다) 배를 타고 출발하고서는 바람을 즐겼다. 꽤 빠른 속도의 배는 아이의 마음에 쏙 들었고, 자유의 여신상이 가까워질수록 아이는 흥분했다! 거대한 것에 대한 로망이었을까, 공룡뼈만큼이나 자유의 여신상을 좋아했다. 아이가 보기에는 그저 큰 사람의 모양인데 의외로 많이 좋아했고 여신상을 따라 팔을 뻗으며 관광을 즐겼다. 맨해튼의 높고 멋진 건물들에 함께 감탄했고 (자유의 여신상이 놀라운 이유와 같은 이유일까) 다리 밑으로 배가 지나갈 때 역시 신기해하며 좋아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차가 동네의 육교 밑을 지날 때도 좋아했다. 여행 내내 자유의 여신상을 만날 일이 생기면 늘 '우와!'를 외쳤고 한국에 와서도 그림으로 자유의 여신상을 만날 때면 반가워했다.


둘째로 모든 기념품 가게를 즐겼다. 특히 m&m's의 초콜릿들과 그 이상한 동그란 캐릭터들을 모두 좋아했다. 당연히 다 사줄 수는 없었지만 우리와 아이가 만족할 수 있는 기념품을 많이 살 수 있었다. 우리가 가격 때문에 고민할 때도 <집에 가자>를 듣지 않고 함께 즐기며 쇼핑을 할 수 있었다. 미술관과 박물관의 기념품 가게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나라의 관광지와 비슷하게도 뉴욕의 많은 기념품 가게에는 아이를 사로잡기 위한 기념품들이 많았다. 예술을 장난감으로 표현해내고자 무던히도 애를 썼다. 덕분에 장난감 가게에 온 것처럼 쇼핑을 즐길 수 있었다.


셋째로 브루클린 브릿지를 좋아했다. 물론 유모차의 도움을 받았기에 가능했겠지만, 새로운 것을 보고 경험하는 일은 아이들에게 큰 기쁨이 된다는 걸 느꼈다. 우리에게는 유명한 관광지, 포토스폿인 브루클린 브릿지가 아이에겐 어떤 의미였을까. 아직도 의문이 남지만 걷고 사진 찍는 일을 좋아했다. 거대한 다리를 건너며 작아진 자동차들을 감상하는 게 즐거웠는지, 강을 건너는 게 즐거웠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꽤 신나 했다. 물론 우리는 수시로 유모차를 끌어야 했지만, 아이와 함께 한다는 기쁨이 더 컸던 것 같다.



넷째로 첼시마켓을 좋아했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샵들 중에서 아이는 귀신같이 자기 취향에 맞는 샵을 찾아냈다. 우리가 보기에는 그저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가득한 곳이었지만 아이의 눈에는 동화책이 들어왔고, 또 작은 기념품들이 있었다. 아이는 30분이 넘도록 샵에서 동화책을 살펴보고, 기념이 될 핀버튼을 고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쯤 되니 너무 우리만 생각한 여행 아닌가?라는 죄책감은 잊히고 없었다. 오히려 아이의 쾌적한 쇼핑을 위해 꽤 오랜 시간을 첼시마켓에서 보내야 했다.



다섯째로 뉴욕의 지하철을 즐겼다. 내가 보기엔 너무 더럽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에스컬레이터가 왜 없죠...?) 지하철이었지만 평소 못 보던 형태의 지하철이 또 아이는 마음에 들었다. 지하철 노선도를 꼼꼼히 살피고, 우리가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 묻고 본인과 다른 얼굴을 한 사람들을 관찰하기도 했다.



여섯째로 퀴퀴한 냄새가 나고 화장실 전등이 망가졌지만 1박에 250불이나 하는 비싼 호텔을 좋아했다. 정말 왜인지 모르겠지만 여행에 다녀오고 나서 지금까지도 뉴욕에서 머문 호텔에 다시 가고 싶다고 했다. 옆 건물 벽밖에 안 보이는 뷰가 좋았을까? 셋이 자기엔 조금 비좁은 침대가 좋았을까? 투니버스도 안 나오는 텔레비전이 좋았을까? 우리가 좁고 비싼 숙소에 대해 불평을 할 동안 지혜로운 아들은 즐거움을 찾아냈다. 밥때가 훨씬 지나서 식탁이 아닌 침대에 걸터앉아 컵라면을 먹는 일탈을 한 게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뉴욕의 먹거리를 정말 잘 즐겼다! 에필로그 1에서 썼다시피, 뉴욕엔 우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들로 가득 차 있다. 피자, 햄버거, 아이스크림, 감자튀김, 빵, 초콜릿, 쿠키... 물론 순두부도 먹었다. 할랄 가이즈도 매운 소스를 빼고 주니 정말 맛있게 먹어주었다. 왜 아이가 뉴욕의 음식들을 좋아했는지는 그만 설명해도 모두 알거라 생각한다.




이쯤 되면 내가 얼마나 아이를 과소평가했는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아이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했다. 아이는 어려서, 잘 몰라서, 기억도 못할 텐데, 뉴욕은 나중에 커서 데리고 가야지, 라는 생각은 나의 오만이었다. 물론 시간적 금전적 여유가 늘 있는 사람들은 나중에 뉴욕이고 유럽이고 언제든 맘만 먹으면 데려갈 수 있겠지만 우리는 아니었다. 이 글은 우리처럼 큰 마음을 먹어야 겨우 외국에 한번 나갈 수 있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를 위한 용기의 글이다.


아이는 내 생각만큼 끈기가 없지도 않았고, 이 거대한 뉴욕이 주는 매력을 느끼고 즐길 줄 아는 한 사람이었다. 새로운 음식을 즐거워하고, 거대한 자유여신상에 놀라도 하고, 부모와 함께 걷는 센트럴파크를 신나 하며 뛰어다녔다. 선입견과 허세로 가득 찬 어른들에겐 뉴욕의 센트럴파크가 보이는 그럴싸한 호텔에서만 즐거움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이에겐 그저 뛰어도 혼나지 않는 침대가, 늘 알 수 없는 언어로 떠들어대는 뉴스가 틀어져있는 텔레비전, 밥과 국이 아닌 빵과 코코아를 먹어도 되는 뉴욕의 식문화가 좋았을지도 모른다.


어려울 것 같았던 일은 의외로 쉽고, 쉬울 것 같았던 일이 어려웠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아이와의 여행이 그랬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둘도 아니다. 셋이고 그 이상이다. 그들은 당신에게 큰 힘이 될 것이요, 여행의 가장 큰 즐거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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