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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by 유수

지은은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에 열중하고 있는 신애를 보았다. 그녀가 도서관에서 신애를 관찰한 지는 30분가량 되었다. 신애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기 시작한 건 이삿날 이후부터 지금까지, 3년 하고도 1달 정도 되어갔다. 지은은 모두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신애를 신기해하면서도 부러워했다. 신애가 있는 곳이면 사람들의 시선이 머물렀다. 출중한 외모 덕에 신애는 어딜 가나 그녀와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지은 역시 그중 한 명이었다. 지은은 효성과 민지 다음으로 셰어하우스에 입주하게 되었다. 꼭 붙어 다니는 두 사람 사이에 소외감을 느끼던 찰나, 1층에 새로운 하우스메이트가 들어온다는 소식은 더할 나위 없이 반가웠다. 기다리던 신애의 이삿날. 반갑게 인사를 하며 현관문을 활짝 열어준 지은은 찰랑이는 긴 머리를 쓸어 올리며 환하게 웃는 신애의 모습에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아, 안녕. 반가워.” 지은은 자신의 입 밖으로 무슨 말이 나가고 있는지 전혀 인지할 수 없었다. “안녕! 나도 반가워!” 신애는 밝게 인사했다. 이어서 소리를 듣고 마중을 나온 효성과 민지도 신애의 미모에 놀라고 말았다. “너 되게 예쁘다.” 효성이 한 말이었다.


지은은 신애의 존재감을 학교에서도 실감했다. 당최 그녀를 모르는 학생은 없었다. 신애는 모든 사람들에게 인사나 눈길을 받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신애는 성적도 좋았다. 교수님들의 관심마저 듬뿍 받는 그녀는 지은에게 그야말로 완벽한 롤모델이었다. 지은은 언제나 관심을 갈구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관심을 끌만한 행동을 하는 건 아니었다. 갑자기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거나, 특이한 옷차림으로 강의실에 나타나거나, 보이는 사람들마다 하이파이브를 하는 그런 짓은 꾸미지 않았다. 지은은 가만히 있어도 이목을 집중시키는, 영화의 씬 스틸러와 같은 느낌을 추구했다. 안타깝게도 지은의 외모는 신애만큼 아름답지 않았고, 성적도 평균이었다. 지은의 이런 욕망의 시작은 그녀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은의 가족은 아버지와 여동생, 이렇게 세명이다. 어릴 적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세 사람은 서로를 의지하며 20년 가까이 살아왔다.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은의 아버지는 생활비 마련을 위해 늘 일을 해야 했고, 지은과 여동생은 항상 어디엔가 맡겨졌다. 옆집 아줌마, 친척집, 할머니댁을 전전긍긍하며 살아남은 것이다. 지은은 얹혀사는 집에서 동생과 아버지의 밥을 차려주고, 설거지, 청소와 빨래까지 했다. 소위말하는 ‘밥값’을 하는 거였다. 다행스럽게도 자신들의 호의에 대한 눈치를 주거나 그것을 무기 삼아 상처를 주는 사람들은 만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어딘가 모르게 위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존재감. 자아의 실현. 지은이 성인이 되기 전까지 꿈도 꾸지 못하는 사치였다. 그렇다고 욕심을 버리지는 않았다. 지은은 학업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 덕에 무사히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고, 때마침 아버지의 사업도 흑자를 내기 시작했다. 세 식구는 마침내 평범한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지은은 그 누구보다 자신을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겠노라 다짐했다. 어디서나 자신감 넘치는 태도를 가진, 지적이면서 위트 있는, 잘 나가는 잡지사의 편집장이 되는 그날만을 꿈꾸었다.


신애는 자신을 힐끔거리는 지은을 알아챘다. 그녀는 자리를 옮겨 지은과 마주 앉았다. 신애가 일어날 때,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지은은 주변을 살폈다. 갑자기 자기 앞에 앉은 신애 때문에 도서관 내 이목이 온통 자신에게 집중되는 것만 같았다. 지은의 얼굴이 점점 붉어졌다. “너 왜 그래?” 신애가 지은의 얼굴을 유심히 보며 물었다. 당황한 지은은 신애의 시선을 피하며 되물었다. "왜? 뭐?" "아, 아니야. 하던 거 마저 해." 신애는 민망한 듯 고개를 돌렸다. 지은은 더 이상 도서관에 있을 수 없었다. 자신이 신애를 관찰했다는 걸 들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창피함이 몰려왔다. 지은은 책상 위 펼쳐진 책들을 서둘러 덮었다. 하필 도서관이 조용했던 편이라 지은의 책 덮는 소리가 공간 내 울려 퍼졌다. 퍽. 퍽. 퍽. 신애는 주변을 의식하며 지은에게 속삭였다. “지금 가려고?” ”으응. “ 지은은 대답을 얼버무리며 가방을 챙겼다. ”이제 막 온 거 아니었어? “ 신애가 다시 한번 물었다. 지은은 대답을 하지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얼굴은 아직도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지은은 고개를 푹 숙이고 몸을 돌렸다. 그때, “어디 아파?” 신애가 지은의 어깨를 잡으며 물었다. 신애의 목소리가 조금 컸던 탓이었을까, 지은과 함께 앉아있던 학생들이 고개를 들어 모두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런 거 아니야!” 지은은 신애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이번엔 확실히 지은의 목소리가 컸다. "알았어, 조용히 좀 말해." 놀란 신애가 목소리를 낮추며 지은에게 말했다. "아, 미안!" 지은은 자신도 모르게 또 큰 소리를 내었다. 놀란 그녀는 다시 목을 가다듬고 신애에게 속삭였다. "미안."


신애와 지은은 그 길로 도서관을 나왔다. 학습 진도를 다 빼지 못한 신애는 집에 돌아가 나머지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은은 신애를 따라갔다. 신애의 빠른 걸음을 뒤쫓다 보니 어느새 학교 입구에 있는 자전거 보관소 앞에 있었다. 신애는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자전거에 묶인 자물쇠를 풀었다. "나 태워줄 수 있어?" 지은이 물었다. "안되는데. 이거 뒷 좌석이 없어." 신애가 난감한 듯 말했다. 신애의 자전거는 경주용 자전거였다. 그녀는 능숙하게 한쪽발로 페달을 밟고 반대쪽 다리를 들어 올려 안장에 앉았다. 그리곤 천천히 페달을 굴리며 지은에게 말했다. "먼저 갈게. 집에서 봐." "그래, 알았어." 지은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신애는 순식간에 출발했다. 검정 옷을 입고 검은색 자전거를 탄 그녀의 모습은 마치 총알 같았다. 지은은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신애는 어느덧 까만 점이 되었다.


"지은아!" 지은의 뒷모습을 알아본 윤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은은 뒤를 돌아보았다. "윤서야, 이제 집에 가?" 지은이 웃으며 물었다. "응. 마침 잘 만났다. 같이 가자." 윤서는 지은의 옆으로 가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지은은 가만히 서서 윤서를 기다렸다가 그녀와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버스 탈까?” 윤서가 물었다. 그 말에 지은은 고민하다 윤서에게 물었다. ”괜찮으면 걸어갈래? “ 윤서가 수줍게 웃으며 답했다. ”그래, 산책도 하고 좋지 뭐. “ 그렇게 두 사람은 나란히 걸었다. 셰어하우스까지는 걸어서 30분 정도가 걸렸다. 윤서와 지은은 서로 어떤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그저 각자의 생각에 잠겨 다리를 움직이고 있었다. 윤서는 새로운 만남으로 이어질지도 모를 동수를, 지은은 자신의 어깨에 손을 얹은 신애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때,


"어? 저거 신애 아니야?" 윤서가 셰어하우스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집에 먼저 도착한 신애가 마당에서 자전거를 걸레로 닦고 있었다. "어 맞아. 아까 도서관에서 자전거 타고 먼저 갔거든." 지은이 말했다. 걸레질을 마친 신애는 자전거를 현관 옆 울타리에 자물쇠로 묶었다. 윤서는 신애의 모습을 보며 혼자 말했다. "자전거를 타니까 집에 훨씬 빨리 도착하는구나." 지은은 굳이 대꾸하지 않았다. 할 일을 마친 신애는 손목으로 땀을 닦으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이마에 땀에 맺혀있었기 때문이다. 윤서는 말했다. “자전거 타면서 운동도 하고, 신애는 참 멋지다.” 그녀는 신애를 보며 감탄하는 중이었다. 지은은 그런 윤서를 보다 문득, 무언가 결심한 듯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윤서야, 너 자전거 탈 줄 알아?" "아니. 왜?" 윤서는 갑자기 멈춰 선 지은을 보며 되물었다. "그럼, 우리 같이 자전거 배워볼래?" 지은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래, 좋아.” 윤서는 크게 고민하지 않고 답했다. 남들은 10대 진입과 동시에 배우는 자전거 타기에 도전하기에는 지금이 딱 적당한 시기라고 생각했다. 지은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 “그럼 주말에 같이 자전거 사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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