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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by 유수

“아, 아무것도 아니야!” 효성의 불호령에 동수는 허둥대며 가방을 들고 주방을 나갔다. 효성은 동수의 뒤통수를 째려보다 윤서와 눈이 마주쳤다. 윤서는 어색한 듯 고개를 돌려 도시락을 마저 쌌다. 효성도 곧바로 동수를 뒤따랐다. 당분간은 윤서와 말을 섞는 것조차 어려울 것 같았다. 홀로 주방에 남겨진 윤서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사과까지는 아니더라도 효성이 자신을 어려워하길 바랐기 때문이다. 윤서는 이 정도로 자존심을 세우는 자신이 싫었다. 이렇게까지 밑바닥이고 싶진 않았다. 쾅! 윤서는 현관문을 세게 닫고 집을 나섰다.


동수의 차 안의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효성은 창밖을 보며 날씨를 감상했다. 그녀는 조용히 운전하는 동수의 옆모습을 슬쩍 쳐다보며 물었다. "아까 뭐냐?" "응? 뭐가? “ 동수는 당황한 듯 답했다."너 왜 윤서를 뚫어져라 보고 있는데?" 효성이 다시 한번 날카롭게 물었다. “걔 이름이 윤서야?" 동수가 되물었다. "어, 방학 때 우리 집에 이사 온 애야." 효성은 곧바로 다시 물었다. "걔랑 인사도 안 했어?" "아, 어. 그냥 바로 부엌으로 들어가길래 말은 못 걸었지." 동수는 양쪽을 살피며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었다. 그는 못지않은 집중력을 발휘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계속 바라봤다고?" 효성이 물었다. "그, 그렇게 부담스럽게 봤나?" 동수가 당황한 듯 말했다. 마침 학교 주차장에 도착한 그는 차를 세워두고 말을 이어갔다. "사실 내 이상형이긴 하거든." "뭐?" 효성이 기가 찬 듯 말했다. 그리곤 단호하게 동수를 타일렀다. "걘 안돼. 최근에 남자친구랑 헤어졌어." 효성의 말에 동수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오히려 잘된 일 아니야? 나도 소개해줘! “ 동수가 웃으며 말했다. ”됐어. 넌 어차피 안돼." 그의 말에 효성은 딱 잘라 말했다.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동수는 마음이 상한 듯, 언성을 높이며 물었다."그냥 알아."효성은 짜증 섞인 말투로 답하며 차 밖으로 나갔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강의 시작까지 20분 정도가 남았다. 동수는 효성을 따라 차에서 내렸다. 그리곤 다시 한번 그녀에게 조르기 시작했다.


“부탁 좀 하자. 나 성인 되고 연애를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단 말이야.” 동수는 효성과 발을 맞추며 걸었다. “거 귀찮게 왜 이래? 윤서가 거절할 거라니까?” 효성은 슬슬 짜증이 났다. 동수는 그녀의 얼굴을 살피고는 씩 웃으며 말했다. ”알았어, 알았어. 그럼 지금 전화로 한 번만 물어봐주라. 응? “ 동수는 효성의 기분에 따라 그녀에게 떼를 써야 할지, 그녀를 달래줘야 할지를 잘 알고 있었다. 나름대로의 우정을 유지한 지 1년 만에 터득한 내공이었다. 효성은 동수가 한심한 듯 눈을 흘기며 말했다. “알았어.”


효성은 휴대폰을 꺼내 윤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가더니 윤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윤서는 다소 차갑게 전화를 받았다. “어, 나야.” 효성도 지지 않고 무뚝뚝하게 답했다. “무슨 일이야?"윤서가 다시 차갑게 물었다. ”아 그게,“ 효성은 뜸을 들이며 옆에 서 있는 동수를 봤다. 두 손을 꼭 모으고 기대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동수의 얼굴은 길게 볼 것이 못되었다. 효성은 등을 돌려 말을 마저 이어갔다. “우리 과에 한동수라는 애가 있는데, 오늘 아침에 널 봤다고 하더라고. 걔가 너한테 관심이 좀 있다는데 한번 만나볼래?" 말을 마친 효성은 속으로 간절히 바랐다. ”아..." 윤서는 외마디 감탄사를 내뱉고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말이 없었다. 침묵이 이어지자 효성이 다시 말을 꺼냈다. “지금 당장 결정하지 않아도 돼. 나도 갑자기 부탁받은 거라 부담 갖지 마."


“그래 만나볼게.” 효성의 말이 끝나자마자 윤서가 답했다. “어? 뭐라고?” 효성은 당황한 나머지 큰 소리로 물었다. 그 소리에 동수는 눈을 크게 뜨고 효성의 얼굴을 보며 입모양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뭐-래? 효성은 한쪽 손으로 동수의 얼굴을 치우며 윤서의 대답에 집중했다. “만나겠다고. 소개해줘.” 윤서는 다시 한번 말했다. 이번엔 조금 더 또박또박 발음하도록 신경을 쓰며 말했다. “아, 어… 그렇구나.” 효성은 우물쭈물거리다 다신도 모르게 계속 말을 내뱉고 말았다. “그래. 아직은 때가 아니지. 다음에 너 마음 다 추스르고 난 뒤에 보자. 동수가 아니더라도! 그래, 집에서 봐.” 효성은 서둘러 전화를 끊고 동수를 바라보았다. 동수는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다는 듯, 상실한 표정을 하고 뒤돌아 강의실을 향해 걸었다. 효성은 말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효성도 자신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그녀는 절대 친구를 잃고 싶지 않았다.


“여보세요? “ 윤서는 당황한 얼굴로 휴대폰에 대고 연신 말을 했다. 자신의 대답에 효성은 자꾸만 다른 소리를 하고 있었다. “아니, 만나보겠다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윤서는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그녀의 말에도 효성은 개의치 않았다. “다음에 네 마음 다 추스르고 난 뒤에 보자. 동수가 아니더라도!” 윤서는 기가 찼다. ”무슨 소리야?” 윤서가 한마디 더 덧붙이려는 때, 효성은 이미 전화를 끊은 뒤였다. 뚜- 뚜-. 윤서는 전화가 끊어진 휴대폰의 까만 화면을 내려다봤다. 까만 화면에 자신의 얼굴이 비쳤다. 퀭한 눈, 질끈 묶은 머리에 이마 위로 삐죽 나온 잔머리들이 부스스하게 날렸다. 윤서는 이런 자신을 만나고 싶어 한다는 동수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다, 동수가 착각을 한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우연히 신애를 마주쳤던지, 민지나 지은일 수도 있다. 지금의 자신에게 호감을 가질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윤서는 다시 작업실로 향했다. 윤서에게는 또 다른 중요한 일이 있었다. 회화과인 그녀는 마지막 학년을 졸업 전시를 위한 작품 제작에 매진하기로 했다. 오히려 이별을 동기삼아 더욱 자기 계발에 투자하기로 다짐했다.


작업실에 도착한 윤서는 곧바로 커다란 캔버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공방에 들어가 남아도는 나무 조각들을 모아 목공용 풀과 스테이플러를 이용해 틀을 만들었다. 다음으로 넓은 광목천을 준비해 물에 적셨다. 천이 마르기 전에 나무틀 위를 덮었다. 그리고 천을 틀에 맞춰 팽팽하게 늘려가며 스테이플러를 박아 고정시켰다. 윤서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혼자 하기엔 조금은 힘든 일이었다. 윤서는 완성된 캔버스를 들고 자신의 작업 테이블로 갔다. 테이블 위에 세워진 캔버스는 하얀 벽을 가득 채웠다. 윤서는 캔버스가 마른 것을 확인하고 큰 붓을 이용해 프라이머를 칠했다. 작업을 마무리하고 창 밖을 보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꼬르르륵. 배에서 소리가 났다. 윤서는 그제야 자신이 가방에 도시락이 있었음을 깨달았다. 점심도 먹지 않은 채 일을 한 것이다. 윤서는 가방을 열어 도시락통을 꺼냈다. 조심스럽게 뚜껑을 열어보니 눅눅해진 샌드위치가 그녀를 반겼다. 윤서는 서둘러 샌드위치를 입에 욱여넣었다. 창 밖으로 석양이 지고 있었다.


같은 시각 민지가 셰어하우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민지는 현관에서 이어지는 복도로 걸어갔다. 오른쪽에는 가장 넓은 신애의 방이 있었다. 신애의 방을 지나면 거실이 나온다. 그리고 거실 왼편에는 가벽으로 구분해 놓은 작은 주방이 있다. 민지는 거실과 주방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돌아섰다. 신애의 방에서도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민지는 현관 옆에 있는 계단을 올랐다. 계단을 올라 2층으로 가면 나머지 방들과 공용 화장실이 있다. 계단으로부터 이어지는 복도의 가장 첫 번째 방은 민지의 것이었다. 민지는 호텔경영학과를 전공했다. 건축가인 아버지를 따라 완공된 한 호텔을 보러 갔는데, 되려 호텔업 자체에 반하게 되었다. 그녀는 언젠가 자신의 호텔을 운영할 것이고, 건축은 꼭 아버지에게 맡기겠노라 다짐했다. 아, 그리고 경험상 화장실은 무조건 크게 짓겠다 생각하기도 했다. 5명의 여자 사람이 한 화장실을 공유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내성적인 민지는 대학 동기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그녀는 왜인지 여러 사람들과의 만남에 피곤함을 느꼈다. 민지는 늘 수업이 끝난 후 곧장 집으로 돌아갔다. 도서관에 있는 것도 버거울 때가 있었다. 방에 도착한 민지는 순식간에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엎드려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최근 읽기 시작한 인테리어 잡지를 펼쳤다. 그녀는 훗날 아름다운 모습으로 등장할 자신만의 호텔 객실 인테리어를 연구하는 중이었다. 누군가는 너무 먼 미래의 일이라며 핀잔을 줄 테지만, 민지에게는 오히려 과제보다 흥미롭고 건설적인 일이었다. 실제로 과제의 의미를 찾고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라는 의문을 매일같이 던지며 민지는 해야 하는 일 보다 하고 싶은 일을 우선으로 두었다.


위잉- 위잉-. 한참을 인테리어 잡지에 얼굴을 묻고 있던 민지의 휴대폰이 울렸다. 민지는 몸을 일으켜 발신자를 확인하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아주 긴 날숨을 내쉬고, 침을 한번 삼키고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민지의 목소리는 차분한 듯 무심했다. "딸, 잘 지내니?" 수화기 너머 민지의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잘 지내죠. 이제 수업 끝나서 집에 왔어요." 민지는 무미건조하게 답했다. "수업이 너무 일찍 끝난 것 아니니? 학점은 잘 관리하고 있는 거야?" 그녀의 답변에 민지의 엄마는 바로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네, 그럼요. 다른 날에 강의가 몰려서 오늘이 여유로운 거예요." 민지는 차분히 답했다. "그래, 수업이 없더라도 공부 게을리하지 말고. 자격증 시험도 찾아보거라." 엄마의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민지는 생각했다. "네." 민지의 짧은 대답에도 그녀의 엄마는 계속해서 물었다. "효성이랑은 잘 지내니?"


효성과 민지는 사실 같은 학과에 진학했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우연히 옆자리에 앉게 된 계기로 둘은 친구가 되었고, 함께 집을 알아보다 셰어하우스에 오게 되었다. 2학년이 끝날 때까지 민지는 효성과 늘 함께했다. 강의실, 도서관, 식당까지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붙어 다니던 두 사람의 일상은 효성의 전과로 인해 변화를 맞이했다. 효성은 식당일을 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영감을 받아 경영학과로 전향하기로 결심했다. 요식업이 아니더라도 ‘사장님‘이 되는 꿈을 키우게 된 것이다. 전과를 결심한 효성은 그 길로 신청서를 접수했다. 물론, 민지에게도 이 사실을 알렸으나, 통보와 같던 그녀의 결정은 그저 당혹스러웠다. 한편으로 자신의 목표에 확신이 있는 효성이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민지 역시 자신의 꿈을 위한 준비를 하는 중이었지만, 효성은 막연한 장래희망을 확실한 계획으로 만들고 있었다. 효성의 그런 당찬 행보는 민지를 뒷전으로 만들었다. 이제 민지는 셰어하우스 밖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혼자 하게 되었다. 수업을 혼자 듣고, 도서관에서 혼자 공부를 하고, 밥도 혼자 먹었다. "네. 잘 지내요." 민지는 힘 없이 답했다. 그녀는 홀로서기에 적응 중이었다. "효성이처럼 경영학과로 전과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다. 호텔경영은 너무 세부적...." 민지의 엄마는 이때다 싶어 말을 늘어놓았지만, "제가 알아서 해요." 민지는 엄마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 알았다. 쉬어라."


민지는 전화가 끊긴 휴대폰을 침대 위로 내동댕이쳤다. 그녀는 자신의 꿈이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민지의 엄마는 자식에 대한 기대가 큰 만큼, 그녀의 앞날에 대한 계획에 적극 관여했다. 효성은 부모의 관심을 받는 민지를 부러워했다. 하지만 민지의 입장은 달랐다. 그녀는 엄마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책장을 가득 채우다 못해 넘쳐나는 호텔 경영학에 관한 서적, 스크랩북, 건축 도면 스케치들은 그녀의 엄마를 설득할 수 없는 것 같았다. 민지는 음악을 끄고 보고 있던 인테리어 잡지를 덮어버렸다. 그리곤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과제를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그 순간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똑. 똑. 똑. "집에 있었네?"효성이 민지의 방문을 열며 말했다. "응, 들어와." 민지는 의자에 앉은 채 효성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녀의 과제는 앞으로 두 시간 정도 더 미뤄질 예정이었다. 효성은 민지의 방에 들어가 뒤에서 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익숙한 듯 민지의 침대에 곧바로 뛰어들었다. "아, 푹신하니 좋다." 효성은 민지의 이불 위로 얼굴을 파묻었다. "야, 그래도 외출복인데." 민지가 애써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특히 효성의 진한 아이라인이 베개에 묻을까 걱정했다. "오늘따라 예민하네. 무슨 일 있어?" 효성이 민지에게 물었다. 민지의 방에 들어오자마자 침대로 뛰어든 게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니, 뭐..." 민지는 말 끝을 흐렸다.


"혹시 엄마랑 통화했어?" 효성이 물었다. "어..." 민지가 약간은 놀란 얼굴로 답했다. 민지는 효성이 점집을 해도 성공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거 같더라." 효성이 일어나 앉으며 말을 이어갔다. "잊어버려. 그냥 너 걱정돼서 하신 말씀이잖아." "걱정돼서 한 말을 어떻게 그냥 잊어?" 민지가 되물었다. 효성은 아무렇지 않은 듯 답했다. "걱정돼서 하는 말은 그 마음만 전달되면 그만이지 않을까? 무슨 내용이건 그게 네 마음에 와닿지 않으면, 그냥 어머님의 '관심'과 '사랑'만이라도 네 머릿속에 남기라고." 효성의 말을 들은 민지는 그녀를 한참 바라보았다. 효성은 마치 모든 문제에 대한 정답을 가지고 사는 아이 같았다. 전과를 할 때도 그녀는 그런 확신이 있었다. 민지의 시선에서 효성은 어떠한 고민도 가지고 있지 않은 어른과도 같았다. 잠시 말을 멈춘 효성은 민지의 눈치를 보다 다시 말했다. “원래 그래. 마음의 여유가 없거나 준비가 부족하면, 아무리 좋은 조언도 새겨지지 않는 법이야.”


두 사람 사이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민지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패배감이 올라왔다. 그녀는 언제쯤 엄마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리고 언제쯤 효성의 그 똑 부러짐에 맞설 수 있을까, 분했다. 친구가 자신보다 월등히 어른스럽다면, 그건 자존심의 문제가 되었다. 그러다 민지는 무언가 떠오른 듯, 효성에게 물었다. "아 참, 오늘 아침에 동수 왔었어?" "아, 응. 내가 문 열어줘서 거실에 있었어." 효성이 대수롭지 않은 듯 답했다. "애들이 불편해할 거 같아. 아무리 그래도 집 안에 들어오는 건 좀 그래." 민지는 곧바로 효성의 말에 반박했다. 그녀의 말을 들은 효성의 표정이 썩 밝지 않았다. "여자애들만 사는 곳이잖아. 윤서도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서 놀랐을 것 같은데." 민지는 이때다 싶어 효성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아니 방을 엿보는 것도 아닌데...!" 효성은 자신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짐을 알아채고 말을 아끼기로 했다. 민지는 지지 않고 효성에게 말했다. “과에서 친한 친구가 남자라는 게 문제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지켜야 할 선이 있잖아. 재혁이도 그게….” "아, 정말. 그냥 친구 한 명 집에 오는 건데 왜 이렇게 신경 쓸게 많은지...." 효성이 민지의 말을 끊으며 한숨 쉬듯 말했다.


"왜? 무슨 일 있었어?" 민지는 곧바로 효성에게 물었다. 그녀의 말투에서 알게 모르게 설렘이 묻어있었다. "몰라. 그런 일이 있어." 효성이 짜증스럽게 답했다. 기분이 언짢아진 그녀는 몸을 돌려 민지를 등졌다. 민지는 멈추지 않았다. "뻔하네. 재혁이가 동수 오는 거 알았구나?" 그녀는 아주 의기양양하게 물었다. 지금의 대화에 있어 그녀는 마침내 효성보다 우위에 있었다. "아니, 뭐..." 이제 대화의 승패를 가를 마지막 기회가 남아있었다. "재혁이를 위해서라도 앞으로 동수보고 집 앞에서 기다리라고 해." 민지는 대화의 종료를 알리며 명령조로 말했다. "아, 알겠어.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어." 효성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방 밖으로 나가버렸다. 민지는 다시 노트북을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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