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환의 시선 (유블리안)
눈물(?)의 프러포즈 대성공 이후, 우리는 속전속결로 결혼식을 치르고 떠난 신혼여행,
나의 삼촌이 여행사를 운영하시면서 3박 4일은 풀코스로 무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
축의금 대신 받은 신혼여행 패키지. 어찌 보면 최고의 신혼여행이었다.
싱가포르에서 사는 사람들은 여유로워 보였고 우리처럼 아등바등 살지 않는 것 같다.
그래도 우리말이 통하는 대한민국이 좋긴 하다. 은하 씨 하고 함께 사는 세상은 더욱 그렇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신혼생활을 시작한 지구커플 은하 씨와 나는 ‘반동거’ 시절과는 차원이 다른,
진짜 ‘한 집 살림’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신혼 일주일 만에 중대한 사실을 깨달았다. 인류는 두 종류로 나뉜다는 것을.
바로 아침형 인간과 야행성 인간이다.
불행히도 나는 뼛속까지 ‘K-직장인’으로 세팅된 아침형 인간(종달새)이었고,
은하 씨는 마감 시간이 늦은 미용실 원장님답게 완벽한 야행성 인간(올빼미)이었다.
“으음... 도환 씨, 불 좀...”
아침 7시. 나는 출근 준비로 분주하게 움직이며 커튼을 걷었다.
밝은 햇살이 창문을 통해 들어왔고 침대 위에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거대한 애벌레 한 마리가 꿈틀대고 있었다.
“자기야, 아침이야. 이제 일어나야지?”
“으으응... 5분만... 아니, 10년만 더 잘래...”
은하 씨는 웅얼거리며 내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베개 자국이 선명한 볼,
그리고 살짝 벌어진 입. 결혼 전에는 ‘완벽한 여신’인 줄 알았는데,
잠자는 숲 속의 공주는커녕 잠자는 숲 속의 곰인형이 따로 없다.
그런데 이상하다. 저렇게 무방비하게 퍼져 있는 모습이 왜 이렇게 귀여운 걸까?
나는 침대 맡에 걸터앉아 그녀의 볼을 검지로 콕콕 찔렀다.
“일어나세요, 원장님. 돈 벌러 가셔야죠.”
“으으... 도환 씨 나빠... 자는데 깨우는 사람이 제일 나빠...”
그녀가 잠투정을 부리며 내 허리를 와락 끌어안았다. 따뜻한 체온과 보들보들한 감촉.
이 맛에 아침마다 그녀를 깨우는 루틴이 생겨버렸다. 나는 출근 시간이 늦어지는 줄도
모르고 한참이나 그녀의 등을 토닥거렸다.
하지만 밤이 되면 상황은 역전된다. 밤 11시. 나는 슬슬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거워져
하품을 쩍쩍하는데, 은하 씨의 눈은 그때부터 말똥말똥 빛나기 시작한다.
“도환 씨! 우리 넷플릭스 보면서 야식 먹을까? 매콤한 닭발 어때?”
“으음... 지금? 내일 출근 안 해?”
“아잉, 딱 한 편만 보고 자자. 응?”
평소라면 “안 돼, 자야 해”라고 딱 잘라 말했겠지만,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는 아내를 거절할 수 있는 남편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목숨이 한두 개 정도 더 있으면 가능할지도(?) ㅎㅎ
‘그래, 내가 좀 더 피곤하면 되지.’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억지로 정신을 차렸다. 그녀의 생활 패턴에 맞춰보려고,
밤늦게까지 졸음을 참아가며 함께 TV를 보고 맥주잔을 기울였다.
꾸벅꾸벅 조는 내 어깨에 기대어 깔깔거리는 은하 씨를 보면, 피로가 싹 가시는 기분이었다.
주말 아침, 나는 식탁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거실을 둘러보았다.
싱크대에는 내가 마신 모닝커피 잔과 그녀가 새벽에 마신 물컵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현관에는 나의 출근용 구두와 그녀의 편안한 운동화가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놓여 있었다.
아주 작은 생활의 차이들. 연애할 때는 미처 몰랐던 사소한 리듬의 엇박자들.
예전 같았으면
“왜 이렇게 안 맞아?”
라고 불평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그 엇박자가 우리만의 독특한 화음처럼 느껴졌다.
내가 잠든 밤을 그녀가 지켜주고, 그녀가 잠든 아침을 내가 깨워주는 삶.
우리는 서로 다른 시간을 살고 있지만, 결국 같은 공간에서 서로를 향해 흐르고 있었다.
“도환 씨. 모닝커피 냄새 좋다...”
부스스한 머리의 은하 씨가 비틀거리며 방에서 걸어 나왔다. 나는 웃으며 따뜻한 커피 한 잔을 그녀에게 건넸다.
“잘 잤어? 우리 올빼미 부인.”
“응... 잘 잤어, 종달새 남편.”
우리는 마주 보고 웃으며 가볍게 입을 맞췄다. 커피 향과 샴푸 향이 섞이고,
아침 햇살과 늦잠의 나른함이 공존하는 거실.
완벽하게 똑같지 않아서 더 재미있는 매일매일. 서로의 다름이 귀엽게 느껴지는 신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