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의 질투 (은나무)
데이트가 익숙해지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너무 익숙해지면 연애가 심심해질까 봐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그 반대였다.
익숙함 속에서 도환 씨는 더 선명해졌고, 더 편안해졌고, 그리고 조금씩… 더 좋아졌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창가에 앉아 메뉴판을 뒤적이며 도환 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평범한 데이트.
평범한데, 좋은.
그런데 그 평범함을 흔든 ‘사건’이 하나 터졌다.
“어? 지은하 선배님 아니세요?”
낯선 목소리가 들리길래 고개를 들었더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만인의 남사친’ 비주얼을 장착한 민호가 서 있었다.
순간, 반가움 + 놀라움 + 추억의 폭격이 동시에 일어났다.
그 흥분이 고스란히 얼굴에 드러났는지, 내가 너무 크게 웃어버린 모양이다.
그런데 문득 옆에서 느껴지는 묘한 기류.
도환 씨 쪽으로 슬쩍 고개를 돌렸는데
어… 표정이 왜 저렇지?
나는 반갑다고 웃은 건데,
도환 씨는 지금… 고기 굽다 잘못 뒤집힌 사람 얼굴처럼 굳어 있었다.
그리고 민호가 돌아가자마자,
그 굳은 표정으로 물컵을 돌리기 시작했다.
빙글—
빙글—
컵이 돌 때마다
아주 조용한 폭풍이 도환 씨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 같았다.
웃기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살짝… 설레기도 했다.
‘어? 질투하나 보다.’
맞다.
딱 봐도 100% 질투였다.
그걸 확인하고 나니, 왠지 기분이 간질간질해졌다.
그런데 상황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의 휴대전화가 울렸고,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최 수지대리님”…?
“푹 쉬어요”…?
이거… 약간 톤이 부드럽지 않은가?
내 포크가 자동으로 멈췄다.
“누구예요…? 여자분이신가?”
말투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했는데,
내 목소리가 살짝 떨린 걸 나도 느꼈다.
그리고 더 치사한 건
왜 이렇게 기분이 묘하게 싫지.
나도 모르게 샐러드만 뒤적거리게 되는 걸 보니,
속이 훤히 보였을 거다.
그때 도환 씨가 나를 빤히 보더니 물었다.
“은하 씨… 질투해요?”
“…네?? 무슨 질투요? 참나, 그냥 물어본 건데?"
거짓말이라는 걸 나도 알고,
도환 씨도 알았고,
샐러드 속 방울토마토도 알았을 것이다.
잠시 후, 서로가 서로를 빤히 바라보다가
둘 다 동시에 피식하고 웃음이 터졌다.
도환 씨가 먼저 고백했다.
“저… 민호 씨 잘생겨서 좀 긴장했어요. 은하 씨 너무 예쁘게 웃길래 질투 났어요.”
하.
이 사람 참…
이렇게 솔직하게 말하면 반칙이지.
나는 빨대를 입에 물고 괜히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 저도요. 최 수지 대리님인지 뭔지 목소리가 너무 예뻐서 짜증 났어요....."
나도 솔직하게 말했다.
그 말에 도환 씨 얼굴이 갑자기 환해졌다.
그 빛을 보는데
질투가 아니라…
이 사람한테 ‘내 마음을 들킨 기쁨’이 더 커졌다.
“앞으로는 딴 남자 보고 그렇게 웃지 마요.”
그가 장난스러운 눈으로 말했다.
나는 팔짱을 낀 채 시크하게 대답했다.
“도환 씨도 주말에 딴 여자 전화 너무 다정하게 받지 마요.”
그리고 나도 모르게
정말 자연스럽게
테이블 위에서 그의 손을 잡았다.
깍지를 낀 손이 뜨겁게 닿았다.
질투는 어느새 사라지고 마음만 남았다.
아…
우리는 정말 연애 중이구나.
그것도… 서로 많이 좋아하는 연애.
질투조차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