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 재생산되는 기억들
연간 250일 일한다고 쳐도 4년이면 1,000일을 본 사람임에도 순간 떠오르는 기억은 나와 갈등을 빚던 그 며칠간의 순간들뿐이다. 문자로 차마 옮기기도 어려운 험담을 담아 불만을 표출했던 상대의 모습이 또렷하고 뭘 하라고 하면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툴툴대던 그날의 모습뿐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처음엔 그 사람도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그렇게 요상스럽게 만들어버린건 아닌지 하는 죄책감에 한동안 내 자신을 무척이나 괴롭히기도 했고, 그런 마음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조금만 따뜻하게 말했더라면, 조금만 상세하게 설명을 곁들였더라면, 우리 관계가 그토록 막장으로 치닿진 않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이 무심코 뱉은 말 한마디에 상처받는 내 영혼을 마주한 적이 있다. 주로 핵심이 아닌 곁다리를 건들며 자신들에게 필요한 정보나 내용을 주지 않는다는 식으로 읽히니, 내가 혹시 핵심을 모르는 건 아닌가 싶어 내 능력을 의심하는 지경으로까지 생각은 뻗쳐간다.
상대가 기선을 제압하거나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기 위한, 그마저도 아니면 명분을 쌓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깨닫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음에도 그런 생각은 쉬이 떨쳐지질 않는다. 이미 판명난 사안임에도 그런 대접을 받은 순간의 수모가 오랫동안 스스로를 괴롭히기까지 한다. 믿으면 안된다. 믿은 네 잘못이지 하면서. 이 정도면 멘탈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모든 사람에게 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와 욕심이 만들어낸 상처가 곧 멘탈이 되어버린 순간이다.
사람은 누구나 약한 구석이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다른 사람의 말에 신경쓰거나 행동따위에 주눅들지 않는 성격이라 자부하는 나 역시도 가끔 멘탈이 흔들릴 때가 있는데 주로 일하는 사람과의 관계속에서 그렇다.
겉으로 강한 척하는 편인지라 사람들이 눈치를 채지 못하도록 방어기제가 더욱 발동하곤 한다.
나는 결코 상처 받지 않는다고 주문을 외우고 나면 한결 그렇지 않은 느낌이 들지만, 금새 유사한 상황이 되면 다시금 흔들리는 나를 발견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주로 흔들리는 지점은, 나와 같지 않은 생각을 접할 때였던 것 같다. 나와 생각이 전혀 같을 수도 없고 같지 않은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일진데, 내 생각을 믿고 따를 것이라는 강한 신념같은 거라도 무의속에 있는건지, 그런 경우 일단 반감부터 들면서 흔들렸고 상대의 생각을 요목조목 반박하곤 했다.
말로만 다양한 생각을 포용한다고 하면서도 실은 디렉션이 있고, 그 디렉션이 옳다고 여기는 이상한 강박이 내겐 있다. 뭘까.
최근 한 이십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안을 수렴해야 하는 회의체를 운영한 적이 있다.
생각과 방향이 뚜렷한 사람들이 모였기에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난관은 예상했지만 너무나 힘든 과정이었다. 서로 얼굴을 붉히는 경우도 있었고, 점점 회의를 나오지 않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나까지 거들었다가는 죽도 밥도 안되는 상황이 뻔했다. 나는 몇 가지 원칙을 내 나름 생각했다. 맥락을 보자. 핵심을 가려내자. 대세에 지장이 없는 주장에 대해서는 부드럽게 설명하자. 수용할 수 없지만 너무 좋은 제안이어서 반드시 기록으로 남겨놓겠노라고.
그러다 보니, 사람들의 주장이 아주 궤를 달리하는 주장이 아니라는 점이 보였다. 말은 저렇게 해도 실상은 비슷한 얘기를 표현만 달리할 뿐이라는 점이었다. 표현이 격해지는 건, 주장을 관찰하고 싶은 욕구때문이라는 점도 눈에 보였다.
나 또한 저런 모습이었다고 본다.
강하게 표현해야 그나마 관철이 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많았고, 내 생각이 옳다고 여기고 말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 역시 동조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보니 발언권을 놓치 않으려고 했고 다른 사람의 주장을 반박하는 일에 익숙해졌다.
자연스레 사람들은 나를 강하고 카리스마가 있는 사람으로 평가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독선적이며 주장이 강하다고 여기게 했다.
무엇을 득하고 실했을까.
추진력은 있다고 평가 받았을지 몰라도,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이끌어내는 공감능력은 그리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을 게 뻔하다.
확대 재생산되는 좋지 않은 기억들 역시, 내 주장을 관철시키고픈 마음때문이라는 점.
결국 다른사람을 인정하는 멘탈이 없어, 결국 내면이 강하지 못해 생긴 결과였다.